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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년 4월 16일 팔로군 장락촌 전투 개시
2015-04-16 10:09:21 cri

오늘은 4월 16일입니다. 1938년의 오늘, 팔로군은 산서에서 장락촌(長樂村)전투를 벌여 일본 침략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1938년 4월, 일본군은 저들의 후방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산서 동남부에 있는 팔로군 부대를 소멸하고저 산서동남지역을 "9갈래로 나뉘어 포위 공격"했습니다. 4월 16일 팔로군 제129사단과 제115사단 1부는 장락촌에서 일본왜적들을 기습해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장락촌은 산서성 무향현(武響縣) 동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1938년 4월15일 무향을 강점한 일본군 제108사단 제117연대와 그 배속 부대인 특공대 병사 등 도합 3천여명이 북으로 진공해 유사(楡社)침략에 실패하자 다시 무향으로 철수했으며 당일 저녁 무렵에 무향을 포기하고 탁장하(濁漳河)를 따라 동쪽으로 야밤 도주했습니다. 팔로군 제129사단은 두갈래로 나뉘어 제772연대와 제689연대는 좌측에서, 제771연대는 우측에서 탁장하를 따라 양안의 산간지역에서 평행추격을 진행했습니다.

4월 16일 동틀무렵, 팔로군의 좌우 두 갈래 부대는 모두 일본군을 추월해 장락촌지역에서 일본군에 협격을 가했습니다. 팔로군의 맹렬한 공격으로 일본군 부대는 몇토막으로 갈라지면서 부대 사이에 서로 협력할 수 없게 됐고 좁은 하곡에 갇혀 더 이상 전투를 벌일 수 없게 됐습니다. 이 때 일본군이 1천여명을 집결시켜 팔로군의 좌측 부대를 향해 맹렬한 진공을 벌였습니다. 좌측 부대 방어과업을 책임진 팔로군 제772연대의 제10중대는 대가뇌(戴家垴)진지를 고수하면서 적들과 4시간동안 싸움을 벌였지만 나중에는 한개 소대 병사들이 전부 희생되었으며 진지가 일본군에게 강점당했습니다. 점심 12시, 제689연대의 지원병이 진지에 도착해 일본군에게 맹렬한 반격을 가했고 반복적인 공격을 거쳐 마침내 잃어버린 진지를 도로 빼앗아왔습니다. 오후 2시 이후 일본군 제105연대의 천여명 병사가 요현(遼縣)을 거쳐 반룡(蟠龍)에 도착해 지원에 나섰지만 팔로군에 의해 격퇴당했습니다. 오후 5시 이후 일본군이 또 요현 방향으로부터 1천여명에 달하는 지원군을 증파했지만 포위된 일본군은 이미 전부 섬멸된 상태였습니다. 팔로군 제129사단 지휘관은 주동적으로 전투에서 물러나 운안촌(雲安村)과 합벽촌(合壁村) 등 지역에 은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번 전투에서 팔로군은 일본군 총 2천2백여명을 섬멸했으며 경기관총 2정, 카빈총 100여정 그리고 대량의 군용물자를 노획했습니다. 이번 전투에서 팔로군의 사상자수는 백여명에 달했으며 홍군의 장정시기 사단 정치위원이며 항일전쟁초기 제129사단과 제386여단 제772연대장을 역임했던 엽성환(葉成煥)이 영광스럽게 희생했습니다.

장락촌 전투는 일본군의 "9갈래 포위공격"을 물리치는 전쟁에서 아주 결정적인 전투였습니다. 팔로군은 돌연습격의 전술수단으로 일본왜적들에게 큰 타격을 안겼습니다. 그 후 여러 갈래의 일본군이 잇달아 철수했습니다. 팔로군과 결사대, 국민당 군대가 선후로 심원(沁源) 남쪽 지역, 그리고 요현에서 화순(和順)사이 지역에서 일본군 1부를 섬멸했습니다.

4월 27일 팔로군은 또 고평현(高平縣) 북쪽의 장점(張店) 등 지역에서 일본군 천여명을 섬멸함으로써 산서 동남지역에 대한 일본군의 "9갈래 포위공격"을 철저히 물리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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