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05 11:18:34 | c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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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월 5일입니다. 1941년의 오늘 일본 군용기의 폭격으로 중경의 방공터널안에서 집단 압사 및 질식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1923년의 국제공중전 규칙은 민간인에 대해 테러, 파괴를 조성하거나 비 군사성격의 개인재산에 손해를 주고 비전투인원 상해를 목적으로 하는 공중 폭격을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규칙은 또 지면부대 작전지역과 근접해 있지 않는 도시, 진, 마을, 주민구역 혹은 건축물에 대한 폭격도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침략군은 전면적인 중국 침략전쟁에서 빈번히 군용기를 출동해 중국의 도시와 향에 대해 군, 민용 목표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인 폭격을 퍼부었으며 특히 중경시를 전략폭격의 주요 목표로 삼고 무차별폭격을 연속 감행했습니다.
1939년 5월 3일, 일본 군용기 26대가 중경을 공습해 민간인 600여명이 숨졌습니다. 이튿날, 일본 군용기 27대가 재차 중경을 폭격했으며 시 구역 대부분 주요 도로가 페허로 되고 3분의 1의 건축이 잿더미로 변했으며 3천여명의 주민이 폭격으로 숨졌습니다. 또 영국, 프랑스, 독일 대사관도 폭격을 당했으며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일본 군용기 폭격으로 인해 조성된 손실을 예방하고 줄이기 위해 국민정부는 방공터널 건설을 전면 가동하고 방대한 지하 방공공사망을 펼쳤습니다. 당시 "중경시가 이미 현 세계 최고의 지하도시로 되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이는 일본 군용기 폭격에 시달린 중경시 시민들에게 일루의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1941년 6월 5일, 일본군이 대량의 군용기를 출동해 중경시에 대한 야간습격을감행함으로써 전 세계를 놀래운 "중경대터널참안"이 빚어졌습니다. 당시 상황은 이러합니다. 이날 저녁 9시 경, 수많은 일본 군용기가 중경시 상공에 진입해 무차별폭격을 가하기 시작했으며 삽시간에 폭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중경시는 삽시간에 불더미로 변했습니다. 이번 폭격은 연 몇시간 이어졌으며 중경시 도심 18제(梯) 근처에 있는 방공터널에 대량의 민간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수많은 피난민들이 하는 수 없이 장시간 통풍이 잘 안되는 지하터널에 붐비고 있었기 때문에 대량의 피난민들이 질식사를 했으며 시신이 산처럼 쌓였습니다. 이는 일본제국주의가 중국인민에게 진 또 하나의 피빚입니다.
일본침략군의 무차별폭격은 중국 인민의 생명재산에 중대한 손실을 끼쳤습니다. 불완전한 집계에 의하면 1938년부터 1943년까지 중경시 상공에 침입해 폭격을 가한 일본 군용기는 연 9천대에 달하며 폭격 목표는 모두 주민구역과 번화한 상업구역, 학교, 병원 등 비군사목표였습니다. 따라서 중경시는 후방에서 가장 엄중한 손실을 입은 도시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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