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5 14:10:33 | c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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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월 15일입니다. 1933년의 오늘, 차하르(察哈尔) 민중 항일동맹군이 제1차 군민대표대회를 소집했으며 61명이 대표가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1931년 9월 18일,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공공연히 "9.18" 사변을 발동했으며 중국을 무장 침입하고 동북 3성을 재빨리 강점했습니다. 그리고 1933년 3월 초, 일본군은 열하(热河)를 강점하고 4,5월에는 장성지역을 침범한 동시에 괴뢰군을 끌어모아 선후로 차르흐 동쪽의 중요한 도시인 둬룬(多伦)과 고원(沽源)을 강점했습니다. 이리하여 차하르 전 경내를 보존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일본 군국주의가 침략에 박차를 가함으로하여 중화민족이 위기에 처한 관건적인 시각에 국민당의 저명한 애국장령인 풍옥상(冯玉祥)은 중국공산당과 합작하고 항일의 기치를 높이 들었으며 차하르 항일전쟁을 일으켰습니다.
1933년 5월 하순, 장가구(张家口)에 모인 각 부대와 각 계층 대표는 풍옥상이 소집한 차하르성 민중구국 대회에 참석했으며 차하르 민중항일동맹군을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풍옥상을 사령관으로 추대했습니다. 5월 26일, 풍옥상은 "차하르민중항일동맹군 사령관 취임 통전"에서 "전국 민중이 함께 일떠나 왜구를 물리치며 민족의 생사존망을 담보하고 영토완정을 회복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그는 또한 "뜻을 함께 하는 전사와 민중들을 인솔하여 항일전선을 구축하고 차하르성을 무장으로 보위하며 나아가 잃은 땅을 수복하고 중국의 독립과 자유를 얻고자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리하여 짧은 기간내에 부대는 10만여명으로 발전되었습니다.
6월 상순, 차하르의 정세가 한층 위급해졌습니다. 6월 15일, 중국공산당의 지지와 영향하에 동맹군은 제1차 군민대표대회를 소집했습니다. 대회는 동맹군 강령 결의안을 통과하고 항일동맹군의 성격은 혁명군민의 연합전선이며 외부로는 일본군에 항격하고 내부로는 나라의 역적을 제거하는 것을 취지로 삼으며 무력으로 잃은 땅을 수복한다고 선포하고 뜻을 품은 항일구국의 군민 단체들이 용약 가입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대회는 차하르민중항일동맹군 군사위원회의 설립을 선포하고 풍옥상, 방진무(方振武) ,공산당원 길홍창(吉鸿昌) 등 11명을 상무위원으로 추대했으며 풍옥상이 상무위원회 주석 겸 사령관을 맡아 차하르 동쪽 수복전역을 조직한다고 선포했습니다.
6월 20일, 풍옥상은 길홍창을 북로 전선 총 지휘로 임명하고 군대를 인솔하여 북상하도록 했습니다. 길홍창은 동맹군 주력병을 세 갈래로 나누었습니다. 7월초까지 동맹군은 선후로 차하르 동쪽 강보(康保), 고원(沽源), 보창(宝昌) 등 세 현을 수복하고 7월 7일에는 승세를 타서 둬룬을 진공했습니다. 9일 새벽, 동맹군은 성밖의 거점을 공략했습니다. 3일간의 격전을 거친 후 12일 밤, 길홍창은 정예병들을 괴뢰군으로 가장시켜 성내에 잠입하게 해 내응을 하도록 했습니다. 결과 3시간 남짓한 육박전을 거쳐 마침내 둬룬을 수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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