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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6월29일, 신사군 제5사단 악동(鄂東) 반 '소탕' 개시
2015-06-29 14:57:17 cri

오늘은 6월29일입니다. 1942년의 오늘, 신사군 제5사단은 호북성 동부(鄂東) 반 '소탕'을 개시했습니다. 1942년, 중국침략 일본군은 화북의 항일근거지에서 가혹한 '소탕'과 '잠식', '숙청'을 감행했으며 '치안강화운동'(治安強化運動)을 극구 강행하고 화중지역에서 남경 왕정위(汪精衛) 괴뢰정권을 크게 부추기면서 화중적후 항일근거지에 대한 미친듯한 진공을 발동하였습니다.

일본 중국파견군 본부는 장강중하류지역에 위치한 도시와 수륙교통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제11군을 남경, 무한, 신양, 구강 지역에, 제13군을 장강하류의 소주, 안휘, 절강 등 성에 배치하였으며 베이징, 상해, 항주 지역에 대한 통제를 중점적으로 강화했습니다.

화중일본군이 신사군을 대처하는데 투입한 병력은 11만 명에 달했고 화중지역에 있던 괴뢰군 15만 명도 모두 화중지역의 항일근거지를 진공하는데 동원되여 항일근거지를 완파하고 항일무장을 소멸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상술한 정세하에 호북과 하남(鄂豫) 변경지역에서 싸우고 있던 신사군 제5사단의 상황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제5사단은 영웅적인 부대로서 장기간 일본군과 괴뢰군, 완고군(頑軍)의 포위 속에서도 전투를 계속했습니다.

일본군 제11군은 무한의 전략적인 중추와 구강(九江), 신양(信陽), 의창(宜昌), 악양(岳陽), 남창(南昌) 사이의 점령구를 확보하고 평한(平漢)철도와 장강 중류 항로를 통제하기 위해 1941년부터 1942년 사이 끊임없이 호북과 하남 변경지역에 대해 가혹한 '소탕'을 진행함으로써 신사군 제5사단을 소멸하고 호북 하남 변경지역의 항일근거지 완파를 시도했습니다.

1941년 4월초, 신사군 제5사단은 호북 하남 진격 종대를 개편해 산하에 3개 여단, 2개 지방유격 종대, 1개 호위대를 편성했으며 전 사단 소속 인원은 총 1만5천여명에 달했습니다. 개편 후 제5사단 제14여단 1부가 동쪽 호북 안휘(鄂皖) 변경지역 항일근거지를 개척하고 안휘 중남부(皖中) 항일근거지와의 연결을 실현했습니다.

1942년, 일본군은 호북, 하남, 안휘 등 일부 전략요충지의 점령을 확보하고 장강항로의 원활한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호북 하남 변경지역 항일근거지에 대한 '소탕'을 다그쳤습니다.

1942년 1월, 일본군 제39사단 소속의 600여명이 황강(黃岡)에서 출동해 악호북 동부 림산하(淋山河) 지역에서 '소탕'을 감행했지만 실패로 끝났습니다.

1942년 6월29일, 일본괴뢰군 2천여 명은 규합해 비행기의 엄호 하에 단풍(團風), 창자부(倉子埠), 신주(新洲) 등지에서 출발해 황강, 파안남(陂安南) 지역에서 미친 듯한 '소탕'과 '숙청'을 진행했습니다. 제5사단 등 항일군민들은 저항과 반격을 가했습니다. 3일간의 격전 끝에 일본 괴뢰군은 430여명이 사상하면서 일본 괴뢰군은 하는수없이 철퇴하였습니다. 7월2일, 제5사단 제15여단은 지방무장의 배합 하에 일본괴뢰군의 한 개 연대를 격퇴시켰습니다. 이로써 천한지역에서의 반 '소탕'이 승리를 거두었고 제5사단의 영향력이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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