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13 15:05:11 | c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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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7월13일입니다. 1936년의 오늘, 모택동은 처음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 에드가 스노우(Edgar Parks Snow)를 회견했습니다.
1931년 9.18 사변이 발발했을 당시 스노우는 상해(上海)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일본제국주의가 1932년에 상해를 침략하고 1933년에 열하(熱河)를 침략하는 것을 친히 목격했고 일본제국주의의 야만적인 폭행에 분노를 품었습니다.
1936년 6월, 스노우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섬감(섬서성과 감숙성) 근거지를 찾아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7월13일, 모택동은 보안(保安)에서 처음 스노우를 회견했습니다. 그 후 모택동은 스노우와 중국공산당의 항일민족통일전선정책 등 문제와 관련해 여러 차례 긴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당면의 중국인민의 근본 문제는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모택동은 스노우와 중국항일전쟁의 정세와 방침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택동은 중국이 일본제국주의를 전승하려면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로는 중국의 항일통일전선을 완성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국제적인 항일통일전선을 완성하는 것이며 세 번째로는 일본 국내의 민중들과 일본식민지 민중들의 혁명운동의 흥기라고 말했습니다. 모택동은 이 세 가지 조건 중에서 중국인민의 대연합이 주요한 부분이며 중국항일전쟁의 결과는 일본이 반드시 실패하고 중국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 외에도 그는 중국의 현 임무는 빼앗긴 땅을 되찾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모택동은 중국군대가 이기려면 넓은 전쟁터에서 고도의 운동전을 벌이는 것이라며 신속히 전진하고 신속히 후퇴하며 신속히 집중하고 신속히 분산해야지 견고한 방어시설을 설치하고 그것에 의지해 진지전을 벌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모택동의 견정한 항일결심과 기필코의 항일신념, 분명한 항일 전략은 스노우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모택동은 또 개인적인 경력과 중국공농홍군의 역사문제에 대한 질문에도 대답했는데 그 과정에 스노우는 중국공산당과 그가 영도하는 광대한 군민에 대한 진지한 감정이 생기게 됐습니다. 스노우는 북평에 돌아온 후 영국과 미국의 신문잡지에 여러 편의 세계를 뒤흔든 기사를 발표했습니다. 그는 그 후 계속해 발표한 기사들을 정리해 1937년 10월에 런던의 빅터 골란츠(Victor Gollancz) 출판사를 통해 '중국의 붉은 별'이라는 책을 출판 발행했습니다. 책은 중국공산당의 완강한 투쟁을 진실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해 유럽과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로 되었고 국내외에서 중국혁명의 영향력을 크게 확대하였습니다. 1938년 2월, 스노우의 동의를 거친 '중국의 붉은 별'의 중국어 번역본 '서행만필'(西行漫記)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은 국내외에서 중국문제를 연구하는 중요한 저작으로 되었습니다.
그 후 스노우는 중국인민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스노우가 세상 뜬 후 그의 일부 유골은 베이징대학 미명호숫가에 안장되었습니다. 베이징대학은 그의 서북탐험의 출발지이며 또한 그가 자료를 정리하고 '서행만필'을 집필한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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