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16 10:30:08 | c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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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7월 16일입니다. 1939년의 오늘, 등소평이 중경 "군중" 일요일 간행물에 "팔로군, 화북항일전쟁 견지"란 제하의 글을 발표했습니다. 글은 팔로군이 2년래 화북전쟁터에서 열약한 무기로 일본군을 섬멸하고 국토를 수복하는 휘황한 전적을 거두었으며 유력한 사실로 팔로군 "유이불격(遊而不擊)"에 대한 국민당 완고파의 공격을 물리쳤다고 썼습니다. 이 글은 중국 항일전쟁이 큰 곤난에 직면한 시기에 발표되었습니다.
1938년 10월, 일본군은 무한(武漢)과 광주(廣州)를 점령한 후 속전속결전략을 포기하고 장기전에 돌입했으며 군사진공의 중점을 적후전장에 있는 팔로군과 신사군에로 돌렸습니다. 일본 화북방면군은 작전중점을 화북치안유지와 교통선 확보로 전환했으며 항일근거지에 대한 "소탕"과 "숙청", "토벌"을 연속 진행하면서 깡그리 태우고 깡그리 죽이고 깡그리 강탈하는 잔혹한 "3광"정책을 실시해 팔로군과 화북적후 항일전쟁의 정세가 매우 준엄해졌습니다.
글은 2년래 팔로군은 화북전쟁터를 누비면서 무기가 제일 낙후하고 생활이 제일 간고했지만 중국침략 일본군 병력 4분의 1에 달하는 중국 침략 일본군 9개 사단을 탄압하고 그들에게 엄중한 타격을 안겨주었으며 우군(友軍)을 도와 광범한 국토를 수복했으며 여러 항일근거지를 세웠다고 지적했습니다.
글은 팔로군의 영용한 작전은 민족의 자존심과 자신심을 불러일으켜주었고 화북항일전쟁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했으며 전국 여러 전선을 크게 도왔고 서북을 보위하는데 큰 역할을 일으켰다고 썼습니다. 글은 사실이 증명하다싶이 팔로군은 민족의 중대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으며 역사의 책임에 먹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글은 2년래 화북항일전쟁을 견지하면서 팔로군은 가장 어려운 조건에서 열약한 무기로 일본군과 싸워 이길수 있음을 증명했으며 항일전쟁의 과정은 장기적이고 간고하고 밝은 미래가 있으며 항일전쟁을 견지하기만 하면 적의 세력을 점차 약화시킬수 있고 종국적으로 일본 강도들을 전승할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특별히 지적했습니다.
글은 또한 팔로군이 2년래 화북항일전쟁을 견지한 것은 단결을 공고히 하고 충분하게 조직, 동원하며 민중들을 의거해야만 항일전쟁의 승리를 거둘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글은 팔로군이 가장 어려운 조건에서 화북항일전쟁을 견지하고 적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은 것은 팔로군이 고도의 민족의식을 소유하고 있고 충성심이 가득하며 명령에 복종하고 완강하고 간고분투하여 수많은 전투와 수만명 장병들의 피로 팔로군은 "유이불격"하다는 망언을 분쇄했기 때문이라고 표시했습니다.
이 글은 발표된 후 중경 나아가 국민당 통치지역에서 광범한 영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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