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24 17:20:37 | cri |
카타키리 세이자부로의 1954년 8월17일 자백서 따르면 그는 1915년 일본 니가타현에서 출생했다. 1936년 중국침략전쟁 참가, 1945년 8월 포로가 되었다.
주요 만행:1936년 6월, 할빈(哈爾濱) 육군병원에서 "의학 및 신병 교육을 이유"로 다른 일본군과 함께 40세 좌우의 중국 남성을 '생체해부'했다. "인체구조를 연구하기 위해 수술대에서 내장을 꺼내 직접 해부함으로써 피해자를 살해했다".
1936년 12월 ~1937년1월 사이, 무단장 육군병원에서 일행과 함께 "독가스 효력을 실험하기 위해" 3명의 30세 좌우 남성을 "외과 실험실에 감금한 뒤 가스를 피해자(손을 뒤로 묶은 상타)의 온몸에 바른 뒤 확산 상황과 시간을 측정하고 살해했다".
1937년 9월, 찰합이(察哈爾)성 천진현(天鎭縣)에서 "부대가 현성을 공격한 후 칼창과 기총 소사로 1000여명 평민을 사살했다".
1937년8월~11월, "조선여성을 유인하여 감금한 후 열하성(熱河省) 승덕(承德)에서 1명을 강간, 산서성(山西省) 대동(大同)에서 2명을 강간했다".
1942년6월~12월, 산동성(山東省) 래무(萊蕪)에서 "감금 중인 조선여성 1명을 20차례 강간했다".
1943년9월, "12군59사단 고위급의 계획에 따라 노서(魯西) 지역에서 콜레라균을 퍼뜨렸다. 유포 후 전염효과를 확대하기 위해 임청(臨淸) 부근의 위하(衛河) 댐을 3곳 파헤치고 2만 여명(44대대가 조사한 피해자 수, 확실한 피해자 수는 이를 초과함)을 살해했다".
1942년12월~1944년10월, 산동성 태안(泰安)에서 "감금된 조선여성 1명을 80차례 강간했다".
1944년11월, 산동성 청수백(淸水泊) 부근에서 "30, 40세 좌우의 남자가 마을에 접근했다". 그때 2명의 일행과 함께 "말에 앉아 농민을 뒤쫓은 뒤 찔러 죽였다".
1944년11월, 산동성 한 마을에서 일행과 함께 "군도의 칼날을 실험한답시고 잡아 온 농민 1명의 목을 잘랐다".
1944년12월-1945년3월, 태안현에서 '감금 중인 중국 여성 3명을 4차례 강간했다".
중국 침략기간, "무기로 가정 주부 12명을 협박한 뒤 강간했다". "감금중인 중국 여성 5명을 강간했다". "감금 중인 조선 여성 9명을 강간했다". 모두 26명을 강간했다.
번역:김선화, 감수:전영매 [CCTV.com한국어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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