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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석굴: 바위의 북위왕조
2015-09-13 14:43:32 cri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굴 10중 다섯번째인 공현석굴(巩縣石窟)은 바위에 쓰여진 북위(北魏)왕조의 역사를 읽을수 있다. 중국의 불교석각예술에서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공현석굴은 인적이 닿지 않는 심산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

중국 제2의 하천인 황하(黃河)강의 지천인 낙하(洛河)강은 하남(河南)의 산천을 흐른다. 낙하강은 아찔한 산봉과 깊은 계곡을 형성하지도 않고 푸른 파도 출렁이지도 않지만 핏줄처럼 두 시기의 불교석굴예술을 하나로 연결시킨다.

낙하강 상류에 위치한, 북위에 축조를 시작해 장장 반천년동안 지속한 용문(龍門)석굴은 벌써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지만 낙하강 하류에 위치한 공현석굴은 여전히 소리소문없이 1500여년동안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소리소문없다는 것은 나쁜일만은 아닌것 같다. 용문석굴의 예불도(禮佛圖)가 미국의 박물관에서 외롭게 눈물 지을때 공현석굴의 예불도는 자신의 탄생지에서 천여년의 세월을 안온하게 보내고 있다.

중국 불교석각예술의 공로자라면 역사의 흐름속에 묻혀버린 선비족을 언급하지 않을수 없다. 운강(雲岡)석굴에서 용문석굴에 이르기까지, 다시 공현석굴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선비족이 세운 북위왕조가 남긴 보물이기 때문이다.

공현석굴은 북위 선무제(宣武帝)때인 500년에서 503년사이에 축조를 시작해 동위(東魏)와 서위(西魏), 북제(北齊), 당(唐), 송(宋), 금(金), 명(明), 청(淸)조까지 축조를 계속해왔다.

오늘날 공현석굴의 문화재 중 불상은 대부분 북위때 축조한 것이고 석각은 북제와 당조때의 것이 많다. 공현의 문화재는 운강석굴과 용문석굴의 특색을 이어받아 북위왕조 후반의 심플한 특징을 지닌다.

동시에 석각물은 북제와 수(隨)조 석각예술의 특징을 엿보이기도 해서 공현석굴은 중국의 불교석각예술이 북조로부터 당조로 넘어가는 과도기 예술풍을 보여준다.

중국의 국보인 공현석굴이지만 명청풍의 건물을 지나 한 눈에 보이는 석굴사를 마주하면 손바닥크기의 석굴에 저도 모르게 실망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첫번째 석굴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벌써 천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듯착각하면서 어젯날의 불교예술에 매료되어 과연 헛 걸음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 석굴에 들어서면 맞은켠 불단에 불조와 두 보살, 두 제자가 조각되어 있다. 불상은 청수하고 날씬한 운강석굴의 불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풍만하고 얼굴도 보다 둥글며 표정은 고요하면서도 단정해 보인다.

석굴의 천정을 떠인 힘장수들은 기둥하단에 조각되어 있는데 하나같이 근육이 튀어나오고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석굴의 내벽에는 빈틈없이 불단을 조성하고 작은 불상을 공양하고 있는데 정연하고 질서있게 배열해 번성함과 고상함을 두루 갖추고 있다.

불상을 보고 몸을 돌리면 석굴의 양쪽 내벽에 공현석굴의 정수인 "제후예불도(帝後禮佛圖)"가 북위황제가 사원에서 향을 피우고 예불하던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범상하기 그지없는 바위가 1500여년전의 화려한 어느 한 순간을 기록한 필림으로 변한 것이다. 제일 앞에는 가사를 입은 스님들이 길을 인도하고 온화하면서도 점잖은 황제와 황후가 그 뒤를 따른다.

황제의 뒤를 따르는 귀족들도 하나같이 높은 관모를 쓰고 늠름한 풍채를 자랑한다. 시중드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몸집도 작고 틀어올린 머리에 관도 쓰지 않고 있다.

혹은 커다란 부채나 향로를 든 그들은 머리를 숙이고 겸손한 자세를 가져 자신만만한 황실과 대조적이다. 그리고 모두들 한결같이 몸을 앞쪽으로 기울여 불조를 향한 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가끔 몸을 돌려 뒤쪽에 무언가를 전달하는 하녀들이 끼어 예불대오에 생동감을 가미하기도 한다.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화면에 음률감을 부여하고 엄밀한 구도가 질서있고 층차가 분명하게 보인다. 공현석굴은 황실의 주도하게 축조한 석굴로 사서에 의하면 북위의 황제는 여러 차례 이 곳에 이르러 예불했다고 한다.

당조의 황제도 이 곳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어느 황제든 의장대에 둘러싸여 예불행사를 가졌다. 하지만 오늘날은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어젯날 황제에게 미소를 보냈던 그 불조를 홀로 마주할수 있다.

세번째 석굴의 기묘한 점은 주인공인 아닌 보조역이다. 석굴문을 마주한 불단상단에 가벼운 몸매에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머리에 연꽃관을 쓰고 손에 연꽃을 든 선녀들이 춤추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춤추는데 음악이 없을리 없다. 동쪽의 내벽에 악사들이 모여 비파와 북 등 온갖 악기를 뜯고 두드리면서 열심히 음악을 연주한다. 그 모습을 보노라면 장엄하기 그지없는 불교의 나라가 갑자기 즐거운 천국으로 바뀐듯 하다.

다섯번째 석굴은 공현석굴에서 규모가 가장 작은 석굴이지만 천정이 명물이다. 석굴천정 중앙에 연꽃을 조각하고 여섯명의 선녀들이 그 주변을 날으는데 선녀들의 옷깃은 바람에 날리는 듯 하고 몸매는 물찬 제비이다.

정적인 연꽃과 동적인 선녀가 율동적이면서도 질서정연해 보인다. 전한데 의하면 베이징 인민대회당(人民大會堂) 강당의 천정에 있는 연꽃무늬가 이 천정을 본딴 것이라고 한다.

공현석굴은 규모도 크지 않고 불상도 많지 않지만 모두가 정수이다. 힘있어 보이는 장수와 경건한 스님, 우아한 천정, 날씬한 선녀, 웅장한 황실의 예불대오…이 모든것은 그 한 자리를 1500여년을 지켜온다.

은은한 과거의 운치속에 불교의 분위기를 품은 공현석굴을 보고난 사람들은 모두 중국 불교석각예술사에서 중요한 한 자리를 차지하는 심산속의 그 석굴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공현석굴 내부는 조명이 좋지 못하다. 특히 제후예불도는 석굴문의 양쪽에 위치해 더욱 어둡다. 따라서 석굴의 생동한 장면을 잘 보려면 스스로 손전등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공현석굴에서는 기념촬영도 가능하다. 단, 문화재의 보호를 위해 라이트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그리고 역시 보존을 위해 석각물을 손으로 만지지 못하게 되어 있다.

공현석굴은 중국 하남성 공의(巩義)시 남하도(南河渡)진에 위치해 있다. 다양한 교통편으로 공의시에 이른 다음 영소능(永昭陵) 남문 버스 터미널에서 관광버스를 이용한다. 혹은 공의시에서 택시를 대절해도 된다. 공의시에서 공현석굴까지는 약 8km 정도거리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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