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16 10:18:42 | c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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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9월 16일입니다. 1939년의 오늘은 모택동이 국민당 통치구의 세 명의 기자들을 접견하고 중국 공산당의 항일 전쟁과 정치 주장을 논술한 날입니다.
1938년 10월, 광주(廣州), 무한(武漢)이 함락된 후 항일전쟁은 전략의 대치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국민 정부 내외의 정책에도 중대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항일은 날따라 소극적으로 변해가는 반면 반공의 정세는 점차 드세지기 시작했습니다.
중앙사(中央社) 유존기(劉尊棋) 기자, 《소탕보(掃蕩報)》의 경견백(耿堅白) 기자 그리고 《신민보(新民報)》의 장서낙(張西洛)》기자 등 세 명은 '항일 전쟁의 미래'와 '국공 양당의 관계'라는 당시 대두되는 두가지의 문제를 안고 연안으로 가 중국 공산당 영도자인 모택동을 인터뷰하였습니다.
기자들이 항일전쟁의 대치 단계가 이미 도래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모택동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치단계가 조건부있게 도래했습니다.""이러한 대치단계에서 중국은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향후 닥칠 반공 세력에 대비할 준비를 갖춰야 합니다."
모택동은 새로운 단계에서의 중국의 임무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적들의 후방에서는 반드시 유격전쟁을 견지하여 적들의 '소탕'을 쳐부수고 적들의 경제핵심을 공략하여 파괴해야 합니다. 정면에서는 반드시 군사방어를 공고히 하고 적들의 침입을 물릴칠 준비를 해야 하며 후방에서는 주로 정치 개혁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기자는 또 국공 양당의 갈등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이에 모택동은 각 지역의 모순의 근원인 이른바"다른 당의 활동을 제한하는 방법"을 비밀리에 유행시키는 것을 취소할 데 대해 이미 장개석과 국민 정부에 제기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모택동은 또 "국민당, 공산당이 정치면에서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항일'"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우리는 항일 당파 사이에 서로의 힘을 상쇄하는 갈등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막무가내의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고 정도가 심하고 압박이 가해진다면 이에 공산당은 반드시 엄정(嚴正)한 태도로 취할 것입니다. 엄정한 태도는 '남이 우리를 침범하지 않으면 우리도 남을 침범하지 않으며 남이 침범하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이는 모택동이 처음 공개 선언한 '중국 공산당의 자위원칙'이었습니다. 기자가 국공양당의 분열의 가능성에 대해 묻자 모택동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꼭 가능성을 묻는다면 단결과 분열의 두 가지 가능성이 모두 존재합니다.""우리는 장기적인 협력을 원하며 이런 협력을 노력하여 쟁취할 것입니다." 또 "장기 협력의 정치적 보증을 얻기 위해 우리는 아래와 같은 3대 정치적 구호를 내세웠습니다. 바로 '항전견지, 투항반대와 단결견지, 분열반대 그리고 진보견지, 후퇴반대'입니다."
"이렇게 해야만 중국이 망국을 면할 수 있고 적들을 물릴칠 수 있습니다. 그 외의 선택은 순탄치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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