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25 09:46:04 | c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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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9월 24일입니다. 1939년의 오늘, 중국국민정부 군사위원회는 일본침략군의 장사(長沙)진공에 맞선 작전방안을 세웠습니다. 당시 제1차 장사전역은 이미 10일간 진행되었습니다.
일본군은 월한로(粤漢路) 연선에 있는 중국 제9전구 주력을 타격하여 중국의 항전의지를 한층 꺾으려 했습니다. 일본군은 무한과 그 주변지역에 대한 통제를 확보하기 위해 호남 북부(湘北)의 중국군대에 대한 진공을 발동했습니다. 중국 제9전구 사령관 진성(陳誠)은 24만명의 병력을 동원에 진공에 맞섰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1차 장사전역입니다.
9월 14일 밤, 일본군 1부는 강서 북부(赣北)에서 서쪽으로 견제성적인 진공을 발동했지만 중국군대의 저항과 측면공격을 받았습니다. 9월 18일, 일본주력군은 또 호남 북부에서 진공을 발동했으나 중국군대의 완강한 저항하에 23일에야 신장하(新牆河)를 건넜습니다. 23일 일본군은 동정호(洞廷湖)를 거쳐 록각(鹿角)과 영전(營田)에 상륙했고 중국군대 주력군은 하는 수 없이 신장하 제1방어선으로부터 멱라강(汨羅江) 제2방어선까지 철수했습니다.
9월 24일 저녁, 호남 북부의 전세가 긴장한데 비추어 군민정부 군사위원회는 최고막료회의를 소집했습니다. 회의는 제9전구에서 막부산(幕阜山)근거지를 보존하고 철도방면에서 점진적인 저항으로 적의 세력을 소모하며 시간을 벌어 적이 장사근처에 왔을 때를 기다려 유력한 병력으로 타격을 가하고 제4군으로 상담(湘潭)방면을 통제하고 상(湘-호남), 계(桂-광서), 검(黔-귀주) 의 각 도로를 엄호하기로 확정했습니다.
9월 24일과 25일, 일본군은 멱라강을 건넜습니다. 중국 제9전구 부대는 국민정부 군사위원회의 작전방안을 시행해 부분 병력을 남겨 일본군의 측면과 후방에서 반공의 기회를 노리도록 한 외에 주력군은 전투를 하면서 장사, 류양(瀏陽) 일대의 제3방어선까지 철퇴하도록 했습니다. 9월 28일과 29일, 일본군은 장사 서쪽에 있는 영안(永安)근처까지 진격했으며 월한(粤漢)선을 따라 남하한 일본군도 장사 북쪽에 있는 교두역(橋頭驛)을 점령했습니다. 전선이 너무 길고 병력이 분산되었기에 일본군은 진공태세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중국군대는 점차 주동을 장악해 금정(金井)매복전, 영안포위전에서 연속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곳곳에서 공격을 당하는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군은 9월 29일 명령을 내려 여러 부대를 철수시켰습니다. 중국 제9전구 부대는 즉시 추격을 가해 10월 9일 신장하 일선까지 진격함으로써 전역전의 태세를 회복했습니다.
이번 전투에서 중국군대는 선혈과 생명을 대가로 일본침략군의 진공을 격퇴시켰고 일본군국주의의 작전시도를 짓부셨으며 전역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작전에서 일본침략군의 사상자는 2만여명, 중국군대의 사상자는 3만여명에 달했습니다. 일본군은 "이번 전투를 남창(南昌), 양동(襄東) 두차례 전투와 비길 때 결전의 태세였다"고 승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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