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3 10:58:43 | c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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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0월13일입니다. 1937년의 오늘 중국군은 흔구(忻口)진지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흔구는 태원(太原)북쪽의 거흔현(居忻縣)과 곽현(崞懸), 정향현(定響縣)의 인접 지역에 위치하고 동으로는 오대산(五臺山), 서로는 운중산(雲中山)과 가까이에 있으며 두 산 사이로 호타하(滹沱河)가 흘러 지납니다. 흔구는 동포(同蒲:大同-蒲州)철도와 강변 도로가 남북을 관통하는 태원의 관문으로 예로부터 군사상 필히 쟁탈하는 지역입니다.
하루빨리 태원을 손에 넣고저 1937년10월4일 일본군은 양명보(陽明堡)를 점령하고 곽현과 원평(原平)을 공격해 10월7일 곽현 현성을 점령했습니다. 11일, 일본군은 원평에 맹공격을 가했습니다. 중국 수비군은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전투에서 중국군의 제19군 제196여단 강옥정(姜玉貞)여단장이 장열히 순국하고 여단 장병 전원이 부상하거나 희생되면서 원평은 함락됐습니다.
10월13일 일본군 5000여명이 전투기 30여대와 탱크 50여대, 대포 50여문의 엄호를 받으며 중앙돌파전술로 흔구 진지를 공격했습니다. 중국군은 강하게 반격했으며 격전은 10시까지 계속 됐습니다. 일본군은 남회화(南懷化)의 강변 참호를 파괴하고 도하하여 남회화 진지를 돌파했습니다. 염장(閻庄)으로 진격하던 일본군은 저녁 무렵 3000여명으로 늘어 중국군의 전초진지를 돌파했습니다. 당일 중국군 제17군 제21사단의 2개 연대가 증원하여 1300고지를 탈환했습니다. 제14군의 제10사단과 제61군의 신편 제4여단이 돌입하는 일본군에 협공을 가해 일본군 3000여명을 사살하고 탱크 22대를 파괴했습니다. 10월14일 남회화 진지가 일본군에 점령당했습니다. 남회화는 흔구전역의 군사요충지로 흔구 전역의 안전이 달린 곳이였습니다. 제2 작전구역 위립황(衛立煌) 부사령관은 5개 여단의 병력을 모아 남회화지역의 일본군 섬멸전을 펼쳤습니다. 10월16일 남회화 반격전이 시작됐습니다. 낮에 밤을 이은 치열한 전투 끝에 중국군은 남회하 남쪽의 다수의 일본군을 섬멸하였습니다. 양군에 모수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최전방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중국군 제9군의 군단장 학몽령(郝夢齡)중장 등이 장열히 순국했습니다.
10월17일부터 19일까지 일본군은 지상과 공중에서 협동작전을 펼쳐 중국군의 진지를 맹공격하였습니다. 중국군은 일본군의 탱크와 장갑차를 각기 20여대 파괴하였습니다. 20일부터 일본군은 선후하여 중국군의 진지에 독가스를 방출하였습니다. 11월1일까지 중국군은 참혹한 희생을 치렀으나 진지는 여전히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병력을 모아 태원을 지키고저 제2작전구의 염석산 사령관은 11월2일 흔구 전역에서 중국 수비군을 철수시켰습니다. 그로써 태원회전의 흔구전투가 종료되었습니다.
흔구전투에서 8로군의 각 참전부대는 우군의 작전에 적극 협조해 일본군의 후방 운송선을 파괴하고 일본군을 소멸하여 일본군의 진공을 교란하였으며 국민당 군대의 정면방어 압력을 일부 해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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