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0 09:34:33 | c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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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0월 20일입니다. 1938년 오늘은 동북항일연합군의 여전사 여덟 명이 적군의 배수작전과 단진양절의 상황에서 죽음에 굴하지 않고 집단투강하여 순국한 날입니다. 이 사적은 항일 역사상 천고의 절창으로 불립니다.
1937년 말, 2만 5천여 명의 일본군은 하강(下江) 지역의 동북항일연합군 부대를 향해 대규모 토벌을 감행하였습니다. 1938년 4월, 동북항일연합군 제2로군 총지휘부는 일본군의 토벌에 대항하는 작전을 세웠습니다. 작전에 따라 1부대는 보청(寶淸), 요하(饒河) 등지에서 전투를 견지하고 제4, 5군의 주력군은 두 갈래로 나뉘어 서쪽으로 진군했습니다. 일본군이 중부와 동부 연장선에 대한 봉쇄를 강화함으로 하여 서진부대는 일시적인 저애를 받기도 했습니다. 6월 말, 동북항일연합군 제2로군은 두 노선의 서진부대를 집결해 오상(五常), 서란(舒蘭)방향으로 진군하였으며 7월 중순과 하순에 이르러 위하진(葦河鎭)을 함락하고 주하현(珠河縣) 원보진(元寶鎭)을 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8월 초, 일본군은 할빈(哈爾濱), 장춘(長春) 등지에 막강한 공수부대를 긴급 파견해 동북항일연합군 제2로군 서진부대를 봉쇄하였습니다. 9월 초, 서진부대는 간신히 일본군의 저애를 뚫고 오상현에 진입했지만 일본군의 포위와 추격 하에 수개월간 고된 전쟁을 치뤄야했습니다. 이에 따른 손실도 막심하였습니다. 제5군 제1사단은 백 여명의 병사만 남게 되었고 이들은 분산하여 활동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0월 중순, 서진부대 제5군 제1사단 등은 목단강 지역에 되돌아올 무렵 오사혼하(烏斯渾河) 입구에서 일본의 습격을 받았지만 신속하게 군사력을 동원하여 반격을 가했습니다.
이때 부녀단에는 지도원 냉운(冷雲)을 비롯해 반장 양귀진(楊貴珍), 호수지(胡秀芝), 전 제4군 이불옷공장의 안순복(安順福) 공장장과 이봉선(李鳳善), 곽계금(郭桂琴), 황계청(黃桂淸), 왕혜민(王惠民) 등 전사만 남았습니다. 그들 중 최고령자는 23살, 최연소자는 13살이었습니다. 부대의 주력 돌파를 엄호하기 위해 부녀단은 주동적으로 적들을 향해 돌격하며 맹렬하게 사격하였습니다. 이로써 적들의 주의력을 끌며 맹렬한 공격을 격파했고 대부대가 안전하게 이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끌었습니다. 10월 20일 부녀군은 탄약과 수류탄이 모두 떨어진 상황에서 벌떼처럼 달려드는 흉악한 적들을 맞닥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지도원 냉운이 결연히 말하였습니다. "동지들, 우리는 공산당원입니다. 항일연합 전사입니다. 적들 앞에서 죽을지언정 포로가 되지는 맙시다!"그녀들은 손에 남은 마지막 수류탄을 꺼내 들어 적을 향해 투척하였습니다. 적들이 엎드린 기회를 틈타 여덟 명의 여전사들은 총가목을 부수고 부상당한 전우를 업고 국제가 "노예들이여 일떠서라!"를 높이 부르며 함께 물살이 거센 오사혼하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습니다. 동북항일연합군의 여덟 명의 여전사들은 항일전쟁에서 희생된 영웅이자 적들의 폭력을 굴하지 않고 순국한 중국인민의 걸출한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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