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7 10:48:32 | c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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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1월 17일입니다. 1940년의 오늘, 화중(華中)신사군(新四軍)팔로군(八路軍)총지휘부가 강소(江蘇) 해안(海安)에서 설립됐습니다.
1940년 5월, 화중지역의 신사군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화북지역의 팔로군 주력 2만명을 화중지역으로 지원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팔로군 지원부대는 수개월동안의 강행군을 거쳐 지속적인 작전을 하면서 회해(淮海)지역에 진입해 선후로 팔로군 제4,제5종대(縱隊)로 발전했습니다.
11월 상순, 류소기(劉少奇), 황극성(黃克誠)이 염성(鹽城)으로부터 해안(海安)신사군 소북(蘇北)지휘부에 도착해 진의(陳毅)와 신사군, 팔로군 총지휘부 설립 등 문제를 토론했습니다.
11월 17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비준을 거쳐 강소성 해안에 화중신사군팔로군 총지휘부를 설립했습니다. 약칭이 화중총지휘부인 이 지휘부에서 엽정(葉挺)이 총지휘를 맡고 류소기가 정치위원, 진의가 부총지휘 겸 대리 총지휘, 뢰전주(賴傳珠)가 참모장을 맡아 롱해(陇海)철도 이남과 장강 이북의 신사군과 팔로군 부대를 지휘했습니다.
진의가 지휘를 겸하고 속유(粟裕)가 부지휘, 류염(劉炎)이 정치부 주임을 맡은 신사군 소북지휘부 산하에는 제1,제2,제3 종대가 있었습니다.
신사군 강북지휘부에서는 장운일(張雲逸)이 지휘를 겸하고 서해동(徐海東), 라병휘(羅炳輝)가 부지휘를 맡았으며 뢰전주가 참모장을 맡고 등자회(鄧子恢)가 정치부주임을 겸했으며 산하에 제4,제5분대(支隊)와 강북유격종대를 두었습니다.
신사군의 호남 및 하남성 전진종대는 이선념(李先念)이 사령관을 맡고 임질빈(任質斌)이 대리정치위원 겸 정치부 주임, 류소경(劉少卿)이 참모장을 맡고 산하에 제1,제2분대와 제5,제6,제7연대를 두었습니다.
팔로군 제4종대는 팽설풍(彭雪楓)이 사령관, 장진(張震)이 참모장, 소망동(蕭望東)이 정치부주임을 맡았으며 산하의 제4,제5,제6여단과 하남안휘강소 변경지역 보안사령부도 지휘했습니다. 그뒤로 보안사령부를 해제한 후 제1,제2,제3군구와 소현(蕭縣)독립여단을 세웠습니다.
팔로군 제5종대는 황극성(黃克誠)이 사령관 겸 정치위원 및 정치부 주임을 맡고 한진기(韓振紀)가 참모장을 맡아 제1,제2,제3분대를 지휘했습니다.
11월 24일, 화중 신사군팔로군 총지휘부는 해안에서 강소성 염성으로 이주했습니다.
1941년 1월 환남(晥南)사변 발생 후 화중 신사군팔로군 총지휘부 및 소속 부대를 기반으로 신사군 군부를 재구성했으며 신사군 소속부대를 재편성했습니다.
화중 신사군팔로군 총지휘부는 비록 한달 남짓한 시간밖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 기간 환남사변이 발생한 관건적인 시각에 화중신사군팔로군 총지휘부는 중요한 역할을 발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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