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6 15:11:23 | cri |
[편지왔어요]
남: 편지왔어요, 이 코너에서는 여러분이 보내주신 따끈따끈한 사연들을 전해드리고 있는데요, 오늘은 먼저 조선의 문진용 청취자가 보내주신 사연부터 만나보겠습니다.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선생님들에게
여러분 안녕들 하셨습니까, 조선의 청취자들을 대표하여 그들의 마음까지 합해 인사를 드립니다.
올해는 날이 유난히도 가물고 더워 저는 집안에 누워 내내 앓다나니 방송도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요새 날씨가 좀 서늘해 지면서 바깥출입을 하고 정신도 좀거뜬해졌습니다. 펜을 잡은 손이 잘 놀지 않습니다.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외사처장 선생한테서 귀방송국에서 보내준 성의있는 물품들을 받고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기 위해 몇자 적습니다.
받은 선물들은 곧 우리 청취자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우리 청취자들을 위한 선생님들의 마음과 고무를 받고 힘을 얻었습니다. 모두가 더 자주 귀방송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럼 안녕히들 계십시오.
문진용
2015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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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그동안 많이 편찮으셨군요, 오래동안 소식이 없어 많이 궁금해하던 차였는데요, 건강관리 잘하셔서 하루속히 쾌차하시기 바랍니다.
여: 건강이 행복지수를 좌우지하는 가장 큰 요소인데요, 특히 환절기 건강관리에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편지 고맙습니다. 그럼 이어서 장춘의 김석찬 청취자가 보내주신 사연 만나보겠습니다.
남: 한창송,송휘선생님:그간안 녕들 하셨습니까?
오랜만에 필을 들게 되였습니다.오늘은 <변철호 서한집> 독후감을 보내드립니다.
<변철호 서한집>을 편집 출판하신 마경옥 선생은 편자의 말 에서 "변철호 선생은 중국 조선족사업을 위해 이름없이 한생을 분투해온 분이여서 중국조선족 사회에서 그리 생소한 분이 아닐 것이라며 변선생이 그간 차곡차곡 보관해 온 편지들을 읽으면서 민족사업을 위해 혼신을 불태우는 변선생의 고귀한 정신과 품성에 큰 감명을 받고 이 편지들을 책으로 묶으면 한권의 좋은 인생교과서가 되리라고 생각해 변선생한테 제안을 드렸더니 끝내 동의하셔서 200여통 편지 가운데 59통을 선정해 <변철호 서한집>을 묶었다"고 소개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올해 88세 고령인 변철호 선생은 1946년에 혁명에 참가하여 1947년에 입당했고 1989년에 정년 리직한 노당원, 노간부입니다.변철호선생은 한평생 조선족의 발전을 위하여 노고를 아끼지 않고 노심초사 하면서 묵묵히 많은 좋은 일들을 해 왔습니다. 중국국제방송국과 중앙인민방송국 그리고 "중국조선족 발자취", "로년생활","로인문고" 등 언론에서도 변철호 선생의 관련 사적을 언급한 적이 있고 지난해 변철호 선생의 생일에 즈음해 축하메시지를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변철호 선생의 쾌차를 진심으로 빕니다.
장춘애청자 애독자클럽 록원구 소조 김석찬 올림 2015.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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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지난해 윤영학, 마경옥 청취자 내외가 병문안차로 변철호 선생의 댁을 방문해 이와같은 제안을 하신걸로 알고 있는데요, 벌써 책으로 발간됐군요. 윤영학, 마경옥 청취자 내외분 수고많으셨구요, 책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 귀감이 되리라 믿습니다.
남: 녜, 그럼 이어서 길림성 훈춘시의 정동운 청취자가 보내주신 사연 만나보겠습니다.
여: 한국에서 초우의 첫돐 생일을 맞이한 소감
중국의 대외개방정책의 따사로운 햇빛 아래 인민들의 생활은 날로 풍요로워지고 있으며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중한 수교23년래 수백만 중한 양국 인민들이 대외개방정책의 혜택을 받아 치부의 길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
우리 정씨가문도 예외가 아닙니다 . 저 정동운 (58세)과 안해 김영란(56세)씨는 2000년에 한국에 진출해 일하면서 치부의 길에 들어선 길림성 연변 조선족자치주 훈춘시 근해가 장성촌의 촌민입니다. 아들 광걸이는 길림성농업대학을 졸업한 후 일본 류학길에 올랐습니다. 광걸이는 6년동안 일본동경시에서 아르바이트를 겸하면서 거기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여 일하는 과정에 길림야금공업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서 또 일본규슈베푸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화룡시 토산향의 임홍매를 만나 사랑을 키워 2012년에 결혼해 아들 초우를 보았습니다. 바로 저의 손자이죠. 저의 손자 초우가 지난 10월9일 첫돐을 맞이했는데요, 첫돌 잔치를 한국경기도 평택시의 한 예식장에서 치르게 됐습니다.
생일 잔치에 한국에 나와 있는 일가친척들과 또 고향마을친구들은 물론, 중국 길림성 훈춘시에서 생활하고 있는 장인과 장모님까지 비행기편으로 모셔왔습니다.
이렇듯 우리 손자 초우의 첫돐 생일파티는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한 일가친척 60여명이 모인가운데 멋지고 뜻깊게 치뤄졌습니다.
초우의 생일파티는 화려한 예식장에서 한국식 전통문화와 현대식 문화를 결부해 진행됐습니다.
초우의 생일은 우리 정씨 가문의 첫 외국식 생일파티였을 뿐만아니라 한국,일본,중국 세나라에서 일가친척이 모인 경사로운 생일 잔치였습니다.
이날 모임에 참가한 여러 친척과 친우들은 즐거운 만남을 갖고 회포와 덕담을 나누었을뿐만 아니라 진주성찬을 즐기면서 오랫동안 즐거운 만남을 만끽했스니다.
정동운 구술 정창선대필
길림성훈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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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녜, 그래요, 이젠 국적에 관계없이 어디서든 함께 모여 만남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됐습니다. 그야말로 지구촌이라는 말이 더더욱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여: 그렇습니다. 정씨가문의 첫 외국나들이 생일파티 늦게 나마 축하드리구요, 우리 초우군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다음 사연 만나보겠습니다. 장춘의 동이명 청취잡니다.
남: 한창송,송휘선생님:그간 안녕 하셨습니까?
제가 올해 5월 애청자클럽에 참가하여 변변치 못한 편지 2통을 보냈는데 한창송,송휘선생님께서 전파를 태워 주셨기에 저의 편지를 들은 많은 친구들이 축하의 전화를 걸어왔을 뿐만 아니라 특히 김수영 회장도 방송이 끝나자바람으로 아침 6시에 즉시 전화를 걸어 "내 금방 들었소,잘 썼습니다." 라고 고무 격려해 주었습니다. 수준 없는 편지 2통을 보내고 이렇게 많은 분들의 긍정과 칭찬을 받고 나니 참으로 쑥스럽기만 합니다.
중국어에는 "고향사람들이 만나면 서로의 두눈에 눈물이 고인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은 한 골안에서 나와 장춘에서 만난 내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바로 20년 전 녹원구 조선족 노인협회가 설립될 때 장춘에서 만난 나의 친구 정금자의 이야깁니다. 우리는 같은 말띠이고 모두 화룡현 복동의 깊은 산골짜기에서 살던 촌뜨기입니다.
금자의 소개에 의하면 집에서 밖을 내다 보면 사람들이 석탄 실은 밀차를 밀고 석탄 굴에서 나오는 문이 보인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 하건데 아주 좋은 기름진 석탄이 나오는 민광 부락인것 같습니다.
금자가 세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8살때 아버지 마저 병으로 세상뜨게 되니 고아로 된 그는 어린 나이에 남의 집에 가서 신부름도 하고 잡 일도 하면서 눈치 밥을 얻어 먹으며 살았 답니다. 어느때인지 딱히 기억은 할 수 없지만 어느날 한 아주머니가 (후에 생각 해보니 아마도 향 부녀주임 인겄갇다고 합니다.) 금자의 손을 잡고 "얘 너 엄마 아버지 이름을 알만 하니?"라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정두일, 엄마는 세살때 세상을 떴기에 이름마저 모른다고 답했답니다. 며칠 후 그분이 와서 "너의 큰아버지,큰엄마있는데로 가자" 면서 몰래 그를 데리고 이틀이나 걸쳐 목적지에 도착했답니다. 큰아버지 집에서 금자보다 14살 우인 오빠가 군대에 나갔다 희생돼 열사증이 나왔다는 것을 알았답니다. 그래서 금자가9살 되는 해 향정부에서 렬사 동생 이라고 룡정 고아학교에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1957년 고아학교를 졸업하고 길림성 복지원에서 일하다 길림의과대학 유치원에 배치되어 열심히 일을 한 덕분에 모범도 되었고 길림유사반에서 연수도 하고 부지런히 일하면서 나중에 중,소학교 고급 교사로 퇴직했습니다.
저는 처음 만날 때부터 성격이 쾌활하고 바른 말 잘하는 금자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건 아마도 한 복동 골안에 물을 오래 마신 두마리 같은 말 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다년간 노년협회 문오회장 직을 맡아 일하면서도 수시로 우리 말띠 파티를 조직 하군 했습니다. 아마도 같은 교육일터에서 퇴직해서인지 우리 둘은 파티 때마다 서로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딱친구가 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건강상황이 좋지 않아 오래 살 것 갖지 못하다고 농담삼아 말하군했지만 그래도 항상 웃음짓는 얼굴로 생활을 맞이했기에 여태 잘 살고 있으며 서로 마주 앉으면 덕담을 나누고 회포를 풀면서 "우리는 선량하고 마음이 넓고 악한 짖을 할줄 모르며 남 해치는 일을 하지 않기에 하늘이 내려다 보고 도와주어 오늘날까지 살고 있다" 고 말 하면서 서로 고무 격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건강과 행복을 위해 신나게 웃으면서 74살을 넘겼으니 계속 친자매 처럼 밝은 모습으로 넓은 흉금으로 84세를 건너뛰어 90세에 도전하리라 믿습니다.
언제나 웃음지으며 사는 사람은 건강하게 오래 살수 있으니깐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나와 금자 동생의 우정은 20년이 지나도 두번 변하기는 커녕 더욱 두텁고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장춘애청자애독자클럽 경제개발구소조 동이명 올림 201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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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두분의 웃음지으며 덕담 나누는 모습을 보는듯 싶습니다. 부럽군요. 마음이 즐거우면 몸도 가볍고 따라서 건강, 장수하실 수 있는데요, 두분이 항상 밝은 모습 유지하시면서 즐거운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남: 항상 응원해드릴께요, 건강하십시오. 이번엔 건공가두장림지역사회에서 보내주신 소식입니다.
여: 소년선봉대 깃발아래에서 성장하고 중국의 꿈을 실현하자
해마다 10월13일은 중국소년선봉대 설립 기념일입니다. 중국 소년선봉대 설립 66주년을 기념해 10월13일 장림지역사회에서는 특별히 실무인원과 《칠색무지개》자원봉사자들을 조직해 연길시 건곡소학교에서 6학년4반의 25명 학생들과 함께 《소선대 깃발아래에서 성장하고 중국의 꿈을 실현하자》는 주제기념행사를 진행했습니다.
활동 첫순서로 건공소학교 6학년4반 학생들은 반주임이 강의하는 소선대 발전역사를 청취했습니다. 흥미진진하게 선생님을 쳐다보는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은 마냥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의 순간속으로 되돌아간듯했습니다.
다음으로 장림지역사회의 자원봉사자들이 25명 학생들에게 붉은 넥타이를 매주고 학생들과 함께 선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중국소선대 대가》를 부르면서 소선대발전 역사와 소선대 대원 입대식을 다시 한번 돌이켰습니다.
마지막으로 장림지역사회에서는 생일 단설기를 학생들에서 선물해 중국소년선봉대 생일을 축하했습니다.
이번 활동을 통하여 소선대원들은 소선대 발전역사를 보다 깊이있게 알게되었고 소선대원인 그들의 자호감과 책임감을 높여주었으며 학생들의 애국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위대한 중국의 꿈을 실현하는데 한발 더 다가가게 됐습니다.
건공가두장림지역사회 2015년10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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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소식 보내주신 건강가두 장림지역사회 홍보팀에 감사드립니다. 뜻깊은 행사를 치뤘군요.
여: 그러게요. 저도 어릴때 소년선봉대에 가입하는 순간 참 많이 설렜었는데요, 언제 벌써 세월이 이렇게도 많이 흘렀네요. 2015년도 이젠 막바지, 10월도 중순 문턱을 지나고 있습니다.
남: 그렇습니다. 요즘 들어 일교차가 매우 심한데요,감기하지 않도록 여러분 환절기 건강관리 잘하시기 바랍니다.
여: 녜, 이외에도 연변의 김봉숙 김봉선 황룡술 신계숙 리청우 박일룡 김화순 박철원 청취자 등 많은 분들이 10월의 퀴즈 답안 보내주셨습니다. 정답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김대곤 청취자가 보내주신 모니터 보고도 잘 받아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남: 녜, 그럼 오늘의 사연 소개는 이만으로 줄이구요, 노래 한곡 듣고 나서 퀴즈 한마당에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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