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9 11:30:26 | c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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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2월9일입니다. 1935년의 오늘 북평(北平)에서 12.9운동이 발발했습니다.
1935년 하반기, 일본은 중국침략의 발걸음을 다그쳤으며 화북 정세는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애국적인 북평 학생들은 비분에 넘쳐 큰 화북에 조용히 책 읽을 수 있는 책상 하나 놓을 자리 없다고 통탄했습니다. 12월9일, 중국공산당 북평 임시사업위원회의 영도하에 북평학생연합회는 전 시의 수천명의 애국학생들을 동원해 신화문 앞에 모여 국민당 북평당국에 청원을 올렸습니다. 학생들은 저들이 제기한 "방공자치"(防共自治) 반대 등 항일민주 요구가 거절당하자 청원을 그만두고 시위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 "화북자치를 반대한다","내전을 중단하고 일치하게 항일하자" 는 구호를 높이 웨쳤습니다. 시위는 국민당 군경들의 야만적인 진입을 받아 수백명이 다치고 30여명이 체포되었습니다. 이틑날, 북평 학생연합회는 각 학교 학생 총 휴교를 단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2월14일 북평신문은 12월16일에 국민당국이 기찰(冀察)정무위원회를 설립하게 된다는 소식을 실었습니다. 하여 학생연합회는 16일 더 큰 규모의 시위를 단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6일 새벽, 북평 각 학교 학생들은 사면팔방에서 천교(天橋) 광장에 몰려 3만여명의 시민대회를 진행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기찰정무위원회를 승인하지 않으며", "화북괴뢰조직을 반대"한다는 등 결의안을 통과했습니다. 회의 후 학생과 시민들이 수만명의 대 시위를 단행했지만 또 다시 군경들의 진압을 받아 수십명이 체포되고 300여명이 다쳤습니다.
북평학생들의 항일구국 운동은 신속히 장성앞팎과 장강 남북을 휩쓸었으며 사회각계의 광범위한 호응과 지지를 얻었습니다. 12월18일 중화전국총공회는 노동자들을 조직해 북평학생들의 구국운동을 성원할 것을 중화전국총공회에 촉구했습니다. 뒷이어 많은 지방의 공장들도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각지 애국인사와 애국단체도 잇달아 선언을 발표하고 통전을 내어 내전을 중단하고 출병해 항일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12월20일 중국공산당은 공청단 중앙이 발표한 <항일구국을 위해 전국 각교 학생과 각계 동포들에게 고하는 선언>을 발표해 노동자와 농민과 한 길로 나아가 반일 구국운동을 확대하고 노동자들과 농민, 상인, 군대와 함께 싸울 것을 청년 학생들에게 촉구했습니다. 12월26일 북평과 천진 학생연합회가 설립되었으며 그후 학생연합회는 남하해 선전팀을 조직하고 하북 농촌에 가 항일구국을 선전하기도 했습니다. 선전팀을 토대로 후에 중화민족해방선봉대가 설립되었습니다. 상해 등 지의 학생들도 공장과 농촌에 가 선전을 했습니다. 학생운동과 공농운동의 결부는 항일구국운동의 발전을 추진했습니다.
12.9운동은 전민족 항일전쟁을 동원한 운동으로서 항전의 사상 준비를 하고 항전의 인심을 비축했으며 항전의 간부를 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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