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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12월13일 일본군 남경대학살 감행
2015-12-11 16:26:15 cri

오늘은 12월13일입니다. 1937년의 오늘 일본군은 남경(南京)을 강점하고 인성을 상실한 대학살을 감행했습니다.

1937년12월13일 오전 남경을 점령한 일본군은 성안의 포로와 민간인을 상대로 6주 동안 대학살을 감행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극동국제군사법정은 "일본군은 남경 점령 후 6주 동안 남경과 인근지역에서 20만명 이상의 민간인과 포로를 학살했다", "이 숫자에는 일본군이 불에 태워 죽인 후 강에 버린 사람들과 다른 방법으로 시신이 처리된 사람들은 제외된다"고 검정했습니다. 중국 남경 전쟁범 심판 군사법정은 남경대학살의 주범 중의 한명인 다니히사오에 대한 판결문에서 "다니히사오 부대는 남경에 주둔하는 기간 중화문(中華門)외의 화신묘(花神廟)와 보탑교(寶塔橋), 석관음(石觀音), 하관초혜협(下關草鞋峽) 등지에서 선요정(單曜庭) 등 중국의 포로와 민간인 19만여명을 기관총으로 집단 사살한 후 시신을 불태웠다. 이밖에 산발적으로 학살 당한 뒤 자선기구들에서 수습하여 안장한 시신은 15만 여구로 피해자의 수가 모두 30만명을 넘어선다."로 기록하였습니다. 일본 역사학자 호라토미오는 "남경의 피해자 수가 30만명으로 알려졌다. 어쩌면 남경 지방법원이 밝힌 34만명이 실질적인 숫자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일본군이 감행한 대학살에서 일부는 집단학살입니다. 1937년12월15일 일본군은 한중문(漢中門)밖에서 기관총으로 소사하는 방법으로 피난민과 경찰 2000여명을 집단 학살한 후 땔감에 휘발유를 부어 시신을 불태웠습니다. 극동국제군사법정은 "판결문"에서 "일본군은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중국의 남녀와 어린이들을 무차별 학살하였다. 일본군이 남경을 점령한 첫 이삼일동안 적어도 12000명의 중국 남녀와 어린이 등 민간인이 피살되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일본군은 목 자르기, 머리 내리치기, 할복, 심장 도려내기, 익사, 방화, 생식기 자르기, 사지 자르기, 음부나 항문 찌르기 등 듣는 자체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인간성이 말살된 비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인을 감행했습니다. 일부 일본군은 살인을 재미로 삼아 중국 피난민의 몸에 휘발유를 부은 후 기관총으로 사격하여 온 몸에 불이 붙어 고통스러워하는 피난민들을 보며 박수를 치고 환호했으며 일부 일본군은 피난민들에게 옷을 전부 벗도록 명하고 얼음을 깨고 물 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도록 하면서 추위로 떠는 피난민들을 보고 즐거워 했습니다. 또한 목을 자른 후 머리를 창 끝에 꿰어 메고 거리에서 웃고 떠드는 일본군도 있었습니다.

일본군의 남경대학살은 인류 문명의 역사에 지극히 야만적이고 잔인하며 암흑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남경대학살은 증거가 확실해 그 누구라도 부인할수 없는 세인이 공인하는 만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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