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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의 벗] (2016년 9월 8일)
2016-09-07 11:05:00 cri






 [개시곡]

남: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금철입니다.

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창송입니다. 지난 7일은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절기상 '백로(白露)'였습니다. 백로는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기온점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 등에 이슬이 맺히는 시기를 말합니다.

남:백로를 맞아서인지 요즘 우리가 사는 여기 베이징은 아침과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도하며 초가을 분위기가 한창입니다.

여:특히 소중한 것은 최근 두주일 넘께 베이징은 초미세먼지 수치가 양호를 자랑하며 공기가 아주 맑아 시민들을 즐겁게 합니다. 이런 날씨가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남:한편 우리의 많은 청취자들이 계시는 연변지역이 지난주 태풍의 피해를 크게 입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하루빨리 재해를 복구하고 아름다운 고향을 재건할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여: 그럼 오늘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들을 간단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편지 왔어요" 코너에서는 연변과 장춘지역 청취자들의 상호 교류에 관한 내용들을 주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재미있는 편지들이 많아서 오늘 프로는 "청취자 핫라인"코너를 취소하고 대신으로 편지를 많이 읽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애청 기대합니다.

[간주]

[편지 왔어요]

남:오늘의 첫 주인공은 바로 장춘에서 연변으로 이사를 간 김철골 청취자입니다. 연변에 이주한지 수개월이 지나서 일전에 처음 저희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정말로 반갑습니다. 장춘 애청자들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했고 또한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했던 유람기도 보내주셨습니다.

지금 소개해드립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여행기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선생님들, 그간 안녕하십니까?

연길로 이사오면서 오래동안 편지를 보내지 못했는데 오늘은 연길로 이사온후 받은 느낌과 러시아여행 감상문을 사진과 함께 보냅니다.

연변에 와서 고향 평강벌을 한바퀴 돌고 연변애청자협회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복흥,명월진, 도문, 연길에서 광영원, 어려운 학생 돕기 등 많은 행사에 참가하면서 친구도 많이 사귀고 많은 것들을 학습했습니다.

최근에는 연길시 진학가두 흔흔노인낙원에 가입하여 83살에 북도 배울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차려져 부지런히 배우니 참 재미있습니다. 회가를 비롯해 노래도 배우고 있으니 항상 기쁨 심정으로 새로운 지식을 배워가면서 사회를 위해 봉사하니 늙을 시간도 없어 남들은 나의 낯에 주름살이 적고 죽은깨가 적은 것을 보고 70살 정도로 여깁니다.

선생님들의 건강을 축원하면서 또 모든 청취자분들의 건강을 축원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애청자 김철골 연길에서

여: 계속하여 김철골 청취자의 러시아 여행기를 소개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여행기

과거 직장에 근무할 때 나는 자기업무에 충실했습니다. 업무상의 수요라면 대우에 관계없이 어떠한 지역도 마다하지 않고 뛰어 다니며 기술을 연마하고 또한 이를 남에게 전수하기에 바삐 보내다 보니 공장 부근의 두메산골 외딴집에 살면서도 고독함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외딴집에 부인 혼자 남겨 놓고 장기 출장을 갈 때도 많았습니다. 남자도 혼자선 겁나는데…부인이 나를 따라다니면서 너무나 많이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이제야 가슴이 아풉니다.

정년퇴직 후에는 원 회사의 수요에 의해 계속 회사의 기술지도를 책임지는 외에 광동, 하북, 대련, 화전 부근의 많은 회사의 요청을 받고 그들의 황금 생산기술 지도를 책임지기도 했습니다. 기술인재양성에 바삐 보내다보니 병을 앓을 겨를도 없었고 고향생각을 크게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2002년에 장춘에 가서 길림성 노간부대학, 장춘시노년대학을 다니면서 컴퓨터, 동화제작, 촬영기술, 사진처리, 전자사진첩 제작 등을 공부했습니다. 또한 길림신문사를 찾아 홍옥, 박명화, 최화, 신정자, 유경봉, 최승호 등 많은 기자선생님들에게서 컴퓨터를 이용한 조선글 타자, QQ다루기, Werd다루기 등 많은 기술을 반복적으로 배우면서 장춘시조선족사회 활동에 적극 참가하여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특히 촬영과 사진처리, 전자사진첩 제작 기술을 이용해 조선족사회활동에 관한 사진이나 영상들을 많이 남겨 사진전시회 또는 협회 설립 행사에 등에 내놓아 좋은 효과를 보았습니다.

이렇게 바삐 보내다가도 청명이나 추석에 어떤 분들이 연변의 부모 산소에 간다거나 갔다 왔다고 할 때에는 고향생각으로 가슴이 끓었습니다. 70세 정도일때는 그래도 몸이 건강하고 앞으로 고향에 다녀올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니 참을수 있었으나 80이 넘고 앞으로 고향에 다녀올 기회가 점점 적어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연변에 와서 많은 친척들의 환대를 받고 오랜 친구들의 환영을 받게 되어 기쁨 마음은 한입으로 다 말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오고 보니 14년이나 함께 손잡고 조선족사회의 부흥을 위해 함께 힘쓰던 장춘 친구들의 꽃처럼 곱게 핀 얼굴들이 너무나도 그립습니다.

장춘에 있을 때는 연변을 생각하고, 연변에 오고 보니 장춘 친구들 생각이 사무쳐서 사람은 이러한 모순속에서 살아야 하나고 생각합니다. 순간마다 서로 관심하고 사랑하며 방송전파를 통해 서로간의 그리움을 나누면서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는 것으로 늘 같이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마련한다면 이 또한 새로운 건강한 생활방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래서 사물은 모순속에서 발전한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남:저는 금년 4월 14일에 연길로 이사온 다음 형제들과 자식들, 조카들의 열정적인 후원으로 러시아 극동지구의 블라디보스토크를 여행할수 있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저의 부부와 80살이 되는 둘째 동생부부 이렇게 네사람이 여러 사람들의 부러움과 관심속에서 6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러시아를 여행했습니다. 본 것도 많고 느낀 점도 많기에 여러분들과 여행에서 느꼈던 소감을 공유하고저 이렇게 필을 들었습니다.

18일 아침 8시 우리는 관광버스에 앉아 연길역을 출발하여 9시반에 훈춘에 도착했습니다. 국경선에서 중국측의 통관검사는 아주 빨리 끝났으나 러시아측의 검사는 다섯 곳을 경유하면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여 11시에야 마쳤습니다. 러시아측 관계자들의 낮은 업무효율은 우리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애타게 하였습니다.

우리측의 검사소 건축은 커다란 현대적 건물이였으나 러시아측의 검사소는 보초막같은 느낌이였습니다. 건설이 따라가지 못하고 화장실 설치도 제대로 되지 않아 관광객들에게 많은 불편을 조성했습니다.

검사가 끝나자 여기서부터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거리가 300km라 하였습니다. 러시아차를 타고 600리길을 달리며 밖을 살펴보니 도로수리는 잘 되지 않았는데 도로 양켠에는 넓은 야산이 펼쳐졌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쪽으로 가까워지면서 흐린 날씨에 밖을 잘 살펴보니 산림속에 마을이 있고 마을안에 나무가 많아 그것 또한 가관이였습니다. 도로양켠에는 습지도 많고 초원도 많았으나 흐린 날씨때문인지 사람은 얼마 볼수 없었고 그렇게 넓은 초원에서 소와 말, 양들을 볼수 없었습니다. 총적으로 600리 길을 달리면서 보니 땅은 넓고 인구는 적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600리 거리 구간에 그렇게 크지 않는 두개 진이 있었는데 모두 항구였습니다. 하나는 자르비노이고 다른 하나는 스라프양카였습니다 이곳 지명은 그리 익숙하지 않아 좀만 주의하지 않으면 한가지 지명을 3개 언어로 발음하다 보면 혼동할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점점 가까와지면서 교통도 좋아지고 수림속에 집도 많아지고 차들도 늘어났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한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한 중고차들이 많았으며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가용차를 타고 자기 별장으로 놀러 가는 바람에 거리에 차가 적다고 합니다.

여: 19일 아침8시에 20여세의 170cm넘는 러시아 여성 가이드의 인솔하에 블라디보스토크 최고점에 올라 주변을 보니 흐린 날씨였지만 다행히도 비가 오지 않아 구경을 잘 할수 있었습니다.

최고점(최고봉)에서 가까운 동쪽에는 겨을에도 얼지 않는, 금각만양안(金角湾两岸)을 잇는 금각교(金角桥)가 있었는데 길이1388m로 참 굉장하였습니다. 최고점에는 러시아어를 발명한 과학가의 동상을 세워놓고 러시아어발명은 천년역사를 가졌다고 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면적 600평방킬로미터에 80만 인구를 가진 도시로 대부분이 러시아인으로 구성된 도시였습니다. 1910년에 조선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던 연해지구이니 그들의 후손이나 살고 있지 않을가 하여 문의했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이전에 레닌광장으로 불리우던 곳에 가니 두개 항구와 기차역이 서로 가까이하고 있었으며 큰 항구에는 1930년에 제조하고 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잠수함이 전시되었는데 아주 잘 보전되였고 스탈린 사진도 걸려있어 역사사실을 존중함을 알수 있었습니다.

잠수함의 길이는 77.7m, 물속에 들어가는 깊이는100m라 소개했습니다. 잠수함을 구경하고 러시아 여성가이드가 나누어주는 빵을 가지고 유람선에 올라 빵쪼각을 조금씩 뜯어 바다 공중에 뿌리니 무수한 갈매기들이 유람선을 에워싸고 받아먹으며 유람선을 따라 오는 모습은 참으로 여행객들을 기쁘게 했습니다. 나는 부지런히 사진과 영상을 찍어 많은 친구들께 발송하였습니다.

두시간 가량의 유람선여행은 어느덧 끝나고 기차역을 참관하였습니다 1890년에 세워진 기차역은 지금도 정상적으로 운행하고 있었으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코바까지의 거리는9288km로 기차로 7주야를 걸쳐 상대방 기차역에 도착하게 되며 이 철도길이는 세상에서 제일 긴 시베리아철도라 하였습니다. 모스코바와 블라디보스토크의 시간차는 7시간이라 하였습니다. 기차역안에 들어가 사진 찍으려 사진기를 드니 귀엽게 생긴 러시아 어린이들은 자세를 단정히 하고 사진찍기에 협조했습니다.

남:사진 다 찍고 돌아서는데 그들은 기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 였습니다 러시아인들은 정말로 우호적으로 우리를 대하고 우리들도 그들을 열정적으로 대하니 곳곳에서 웃음꽃이 피여났습니다.

기차역에는 전쟁시기에 이름 떨친 기차도 전시되어있었는데 우리형제는 가이드와 함께 기념사진도 남기였습니다. 작은 부두에 가니 복잡하지 않고 조용한 편이 였는데 한국상선과 일본상선이 종종 드나든다고 하였습니다.

러시아차들은 거리에서 빠른 속도로 몰지 않고 사거리에서 여행객들이 차가 먼저 가려니하고 서 있으면 그들은 웃는 낯으로 손질하면서 우리를 먼저 건너게 하였습니다. 거리에서나 광장에서나를 물론하고 담배 피우는 사람을 볼수 없었습니다. 청소부도 볼수 없었는데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면 벌금을 한다고 합니다.

전반 러시아의 남녀비례는4대6이고 어떤 곳은 심지여 1대10으로 여성이 많은 상황이였습니다. 여행객은 우리가 갔을 때는 대부분 중국인으로 레닌광장 등에 가면 러시아인은 얼마 볼수 없고 여행객들로 법석이였습니다.

여:장춘에서 연길로 이사해온 이틑날 아침에 바깥에 나가니 연길 공기가 장춘보다 좋은 것을 크게 느꼈는데 블라디보스토크에 오니 그곳 공기는 연길보다도 더 좋아 우리들은 경쾌한 심정으로 여행할수 있었고 건강에도 좋은것을 크게 느끼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연길에서도 도로양켠에서 석탄불에 양고기 등을 굽는 매점들이 너무 많아 숨쉬기 바쁜감을 종종 느끼게 됩니다.

러시아에선 우리가 있는 기간 자동차 사고를 한번도 보지 못하였는데 여기 연길은 차사고가 너무 많아 항상 신경을 곤두 세워가지고 다녀야 하니 말이 아닙니다. 때론 집에서 조용히 휴식하려면 폭죽을 터치는 소리가 너무도 요란하여 큰 걱정입니다.

애청자 김철골 연길에서 2016년 8월 31일

남:김철골 청취자님 너무 반갑습니다. 지난해 말 장춘에서 뵙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언제나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던 선생님이였습니다.

여:지금은 연변에서 연변애청자협회에 가입하셔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열심히 활동하며 건강에 유익한 일들을 많이 하신다니 우리는 더욱 기쁩니다. 부디 항상 건강하십시오. 또한 이번 방문기를 통해 우리는 러시아 극동지역에 관한 이해를 늘리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하여 좋은 편지들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남:이번에는 장춘의 윤영학 청취자와 연변의 박철원 청취자가 장춘 구태구에서 기쁘게 서로 만나 교류의 장을 가졌다는 사연을 소개합니다. 장춘 구태구 신립촌 노인협회 설립 30주년 행사가 있었는데 연변의 박철원 회장께서 초청으로 구태구를 방문하여 이 행사에 귀빈으로 참석했답니다.

그럼 먼저 이곳의 주인인 윤영학 청취자가 소개하는 행사 소식입니다.

여:노인협회 설립 30주년을 즐겁게 경축

CRl조선어부 선생님들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9월 2일 장춘시구태구 신립촌 조선족노인협회에서는 협회 설립 30주년을 아주 즐겁게 경축했는데 그날의 그 즐거움을 국내외 애청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필을 들었습니다.

신립촌노인협회는 1986년 8월 15일 농촌개혁개방의 봄바람속에서 첫 고고성을 울렸습니다. 초창기에는 낡은 북 하나뿐 활동실조차 없었지만 30여명 회원들이 유치원 마당에서 행사를 조직하군했는데 중요한 기념행사때나 명절이면 전 구태 사회적 범위에서 공연하였고 또는 가두나 기업을 순회공연하면서 일부 활동경비도 보충하였습니다.

협회가 설립된 이듬해부터 자그마한 활동실이 있게 되자 활동실 마당에 문구장 2개를 닦으면서부터 회원들이 급속히 증가되였는데 노인들은 자력갱생의 정신으로 벼와 콩농사를 지여서 행사자금을 마련하였습니다.

2011년 촌정부의 대폭적인 지지를 받아 천평방되는 현대적 활동실이 마련되였고 점차 남부럽지 않은 문화체육기자재도 갖우게 되였습니다. 뒤이여 노인들이 자체의 힘으로 국가표준에 부합되는 9개 문구장을 새로 닦았는데 성, 시 문구경기대회도 수차 이곳에서 진행되였습니다. 지금 200명에 가꾸운 회원들은 이곳에서 만년을 즐겁게 보내며 필요한 사회공익사업에도 적극 참가하고 있습니다.

지금 50여명으로 조직된 문예선전대는 중요한 명절과 기념행사 때는 구와 시의 요청을 받고 사회공연에 나서군 합니다. 2011년도 장춘시텔레비전설공연프로그램에서 선보인 " 농악무 " 는 독특한 민족특색과 우수한 기교로 하여 중앙TV방송국 "향촌프로" 에 까지 소개되였습니다. 이외에 우리 협회는 노인 도서실, 보건실, 등 복지사업이 비교적 잘 되어 성, 시로부터 " 우수노인협회 ", " 경로선진집체", "오성급문회대원" (五星级文化大院),, "장춘시노년문구경기대회1등", 해외컵문구경기대회 1등", "신립문구촌" 등 적지 않은 영예를 받아 안았습니다. 협회 제3기부터 6기까지 회장직을 연임한 고 현인규 회장님과 제7기부터 금년10기까지 연임한 윤광호 회장님은 "길림성노인협회 우수회장 " 이라는 영예증서를 수여받았습니다.

오늘 이른 아침부터 정결한 민족복장으로 단장한 노인들은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며 삼삼오오 회장으로 모여와 타지방에서 오신 귀빈들과 뜨겁게 포옹하며 환영했습니다.

기념대회에서 윤광호 회장의 30년 사업총화 보고가 있은 다음 선진집체와 선진개인을 표창하였습니다. 특히 윤회장의 사업총화보고는 그 내용이 묵중하여 귀빈들과 전체 회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뒤이여 전체회원들이 알심드려 준비한 문예프로와 관성구 노인협회를 비롯한 이웃 노인협회에서 준비한 다채로운 프로들이 잇달아 공연되였습니다. 특히 본 협회 20명으로 조직된 80세이상 고령노인들의 합창이 무척 관중들의 심금을 울려주었습니다. 그들은 쓰디쓴 구사회 풍상고초를 겪을대로 다 겪어왔기에 해방초기 토지개혁 3년 국내해방전쟁에 발벗고 선참 나섰던 노일대들이기에 지금 몸은 비록 고령기에 들어섰지만 마음만은 하냥 그전날 청춘의 열정으로 불타올라 그들이 부르는 항일가요 "최후의 결전" 은 그렇게도 씩씩하고 우렁차게 장내에 울려펴졌습니다.

이 백발합창대오가운데는 신립촌 선구자인 고 김철흠 옹의 부인이시며 우리 노인협회 제1기 부회장으로 동분서주하시던 금년 93세의 박태윤 할머니가 계셨고 또 제2기회장이며 지금도 협회를 자기집처럼 관심하여 수천원에 달하는 보건기자재와 운동기자재를 협회에 의연한 금년 86세의 김사철 옹도 계셨습니다.

이 감동적인 사연을 처음 알게 된 연길노인뢰봉반과 연변애청자 협회를 대표로 오신 박철원 회장님은 너무도 감동되여 생화묶음을 그들께 안겨드리면서 건강장수를 축원했습니다.

이와같이 열렬한 분위기속에서 전체 회원들의 마음도 한결 새로웠습니다. 그들은 오늘의 성적에 절대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계속하여 성적을 동력으로 삼아 시대의 발전에 바싹 따라 끊임없는 혁신과 분투로 중화의 위대한 꿈을 이룩하는데 여생을 고스란히 다 바칠것을 한결같이 다졌습니다.

기사제공: 장춘애청자애독자클럽 구태구소조 윤영학 청취자

2016년 9월 5일

남:윤영학 선생님이 보내주신 편지 고맙습니다. 산재지역 조선족 노인들이 사회에 유익한 좋은 일들을 많이 하며 즐겁게 보내고 있다는 점에 우리도 찬사를 보냅니다. 앞으로도 신립촌노인협회가 더욱 번영발전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여:한편 박철원 연변애청자협회 회장께서 손님으로 이번 행사에 참석하시고 느낀 소감을 방문기로 작성하여 보내왔습니다. 지금 소개합니다.

남:장춘시 신립촌 견문

9월3일은 장춘지역 조선족노인절이다. 이날을 맞아 장춘시 구태구 신립촌 노인협회 설립 30돐 기념행사가 있었다. 초청을 받고 신립촌 경축행사에 참가한 나는 감회가 깊었다.

300여 호의 조선족촌이라지만 밭이 보이지 않고 촌민 전체가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현대식 농촌이였다. 촌 사무청사도 호텔과 자리를 같이하는 부유한 시 교외 촌이였다.

신립촌노인협회도 초창기에는 말끔하게 가난하여 애로가 많았지만 그때에는 식솔들도 많고 힘을 합쳐 간고분투하다보니 오늘날에는 장춘지역에서는 으뜸으로 꼽힐뿐더러 전국적으로도 소문 높은 조선족노인낙원으로 탈바꿈하였다.

1000평방미터를 넘기는 활동센터에는 도서실, 오락실에 탁구, 당구, 마작 등 오락기구들이 구전하고 농가책방에는 5천여종의 도서가 있고, <<길림신문>>, <<노년세계>>이며 <<연변 노인의 벗>> 등 조선어 신문잡지들도 차려져 있었다. 40여대의 헬스기구 설치되었고 무용복만하여도 여성복100벌 남성복 70벌이 정연히 걸려져있었다. 9개의 표준화문구장이 있고 7명의 국가1급 심판원이 있어 길림성정부로부터 <<신립문구촌>>이라 명명되여 해마다 전성, 전국적 경기를 이곳에서 치르군 한다.

30돐 경축행사에서 그들이 걸어온 길에 대한 소개를 듣고 보니 우리 당의 위대한 민족정책의 빛발아래 산재지역 조선족들이 행복하게 생활할수있고 위대한 개혁개방정책으로 유족하게 풍요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였다.

기념행사에서는 40여명 80세이상 노인들에게 꽃을 달아 드리고 선물을 안겼으며 모범가정 모범며느리도 표창하고 협회설립 30년래 10기로 협회사업에 헌신한 우수간부와 기여가 큰 회원들을 표창하였다. 그들중에는 협회 제2기 회장이였던 김사철 옹이 자기의 헬스기구를 협회에 기부하였고 고급농예사 방진호 옹은 농토원전화로부터 다수확수전건설 등에 기여가 컸고 사비7000원을 내여 수입제 이앙기도 사놓았고 3년간 신고하여 신립촌촌사를 펴낸 등 모범노인들이 들어 있었다.

협회는 <<길림성 경로모범>>, <<5유 선진촌>>, <<5성급 문화낙원>>,<<선진노인협회>>등 수두룩한 영예를 안아왔으며 지금까지 4회로 회장직을 짊어진 올해73세 윤광호 씨는 최근 전국 조선족노인협회친목회로부터 <<선진회장>>으로 표창받았다.

이 협회에는 당지부, 조선말방송애청자소조와 <<노인뢰봉반>>도 조직되여 있어 당원과 골간들이 협회건설과 사회공익활동, 열사추모, 나라재해지원 등 행사마다 앞장서고 있다.

장춘시에서 이 촌에 이사와 노후를 보내시는 우리말방송 애청자이신 윤영학, 마경옥 양주는 이 협회의 고문으로 보배로 불리우며 새농촌문화건설에서 많은 기여를 하시는 분들이다. 고령노인이 많고 인재가 적은 실정에서 30돐기념행사의 전반 주비사업에도 이 두분이 많은 심혈을 기울렸음을 보아낼수 있었다. 30년 총화, 촌사사진전람, 문화실 벽보란이며 학습원지에 모두 이 양주의 손길이 비치였다.

이어 촌 사무청사 넓직한 광장에서는 다채로운 문예공연이 펼쳐졌다. 장춘시 각 구 노인협에서 가지고 온 축하프로이며 신립촌 노인협회예술대의 프로 모두가 아름다운 조선족 복장의 프로들이였다.

신립촌 80세이상 노인합창단에는 신립촌 선구자인 김철흠 옹의 부인이며 노인협회 제1임 부회장이였던 올해 93세인 박태윤 할머니도 들어있었다. 필자는 이 장수할머니에게 생화를 안겨드리고 기념사진도 남겼다. 박할머니는 연변은 참 좋은 곳이라며 기뻐하시였다. 그들이 부른 <<즐겨운 만년>>은 광장을 춤판으로 만들었다.

행사는 신립촌노인협회의 정채로운 <<농악무>>로 막을 내렸다.

이날 오후 광장은 조선족노인들의 대형 춤잔치로 들끓었다. 흥겨운 반주곡에 자유춤이 벌여졌고 경괘한 무도곡에 사교무도 끝힐줄 몰랐다. 수백명 노인들이 모인 축제장은 언제나 웃음소리로, 청춘의 기백으로 끓어 넘쳤다.

기사제공: 박철원 연변애청자협회 회장 2016년 9월 4일

여:장춘시 구태구 신립촌노인협회에 대한 찬사의 방문기였습니다. 특히 우리 방송의 청취자들인 윤영학, 박철원 두 분이 한자리에 모여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는 점 우리는 특히 높이 평가합니다. 앞으로도 여러 지역의 청취자분들이 서로 만나 교류할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남:계속하여 장춘애청자애독자협회 경제개발구분회의 동이명 청취자가 보내온 교사절 맞이 감상문을 소개해드립니다.

여:교사절을 맞으며

중국국제방송국 선생님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교사절을 맞으며 저희 소감을 적어보냅니다.

오는 9월 10일은 중국의 32회 교사절입니다.

인민교사들은 한평생을 교단에서 불같이 뜨거운 열정으로 나라의 기둥감을 키우는데 심혈을 기울입니다. 퇴직한 교사들은 비록 지금은 학교를 떠났어도 역시 미래를 키워가는 사랑의 원예사와 천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훈장의 똥은 개도 아니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퇴적전에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지금은 75살의 노인이 되었어도 나의 존경하는 선생님들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내가 소학교를 다닐 때 조동신 선생님은 나를 자기집의 큰 딸과 같다면서 내가 감기가 걸려 열이 나면 업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사모님도 좋은 음식이 있으면 저를 먹으라고 집으로 불렀습니다.

중학교 때 졸업을 앞두고 집의 어머니는 나보고 고중에 가지 말고 집에 돌아와 농사를 하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나는 고중을 다니고 연변의학원에 입학하여 훌륭한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너무도 속상해 수업시간에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편지를 쥐고 울었습니다.

반주임 임병걸 선생님은 나에게 왜서 우는가고 물었습니다. 내가 어머니의 편지를 드렸더니 선생님은 "울지 말아라. 금년에 사범학교에 추천하는 정원이 있는데 너를 보내주마. 사범학교에 가면 식사비도 책값도 받지 않아 공부만 잘하면 된다. 3년 다니고 졸업해 교사를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사범학교에 가서 3년 공부하면서 산촌의 인민교사가 되어 조국의 꽃봉오리들을 잘 키워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연변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훈춘현의 두메산골 춘화공사 리수구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글쓰기를 더욱 잘 배워주기 위해 사범학교의 어문 선생님인 리송문 선생님께 편지를 썼는데 선생님께서는 불편을 교통상황을 이겨내고 3일 걸려 친히 내가 있는 학교를 찾아왔습니다. 나는 감동되어 눈물을 흘렸습니다.

선생님은 오신날부터 나에게 글쓰기 수업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저희 수업을 청취하면서 직접 지도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가르쳤더니 반급의 대부분 학생들이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중학교 교장선생님은 저를 보고 "학생들이 참 작문을 잘 씁니다. 앞으로 좋은 지도 경험을 소개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나의 사범학교 어문선생님을 잊을수 없습니다.

김수영 선생님은 비록 나를 직접 배워주지는 않았지만 김수영 선생님이 쓴 낭송시의 한구절인 "우리가 우리의 말과 글을 사랑하는 까닭은 우리의 말이 아름답고 풍부하고 역사가 유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는 자석처럼 나의 마음을 끌었습니다. 이 말의 감화력으로 '내 인생길'을 쓴 나의 산문시는 '문학사랑 4기'에 발표되었습니다.

늙어서 처음 쓴 글이기에 너무 기뻤습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아름답고 풍부하고 가장 우수한 언어로 있는 힘껏 노력하여 글을 쓰리라 다짐합니다.

2016년 8월 20일

장춘애청자애독자협회 장춘경제개발구 분회 청취자 동이명

남:한평생을 후대양성에 기여하신 동이명 청취자의 편지사연이였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학교시절 모셨던 여러 선생님들에 대한 고마움을 토로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기회를 빌어 이 세상의 모든 교사님들께 스승님들께 명절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동이명 청취자 편지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사연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리성복 연변 청취자의 편지사연을 소개합니다.

지역사회 아마추어공연팀, 추석맞이 공연 진행

9월5일 길림성 연길시 북산가두 단춘지역사회에서 추석맞이 예술 공연이 진행되었습니다. 북소리, 꽹과리소리에 삽시간에 모여든 수백명의 시민들이 명절의 분위기를 함께 즐겼습니다.

노인들로 구성된 지역사회 아마추어 공연팀에서 열심히 준비한 독창, 무용, 표현창 등 17가지 프로들이 잇달아 선보여 관객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습니다.

많은 시민들은 돈 한푼 팔지 않고 다양한 예술공연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면서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대중문화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기사제공: 리성복 연길시 북산가두 청취자

2016년 9월 6일

남:추석을 맞으며 개최한 연길시 노인들의 축하공연 소식이였습니다. 전통명절 추석을 이제 한주일 정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 방송의 모든 청취자 여러분들이 모두 즐거운 추석명절을 보내시길 미리 축하합니다.

그리고 박철원 회장님의 흑룡강성 상지시 방문기 2부와 3부는 시간상 관계로 다음주 방송에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청취자들이 보내주신 편지사연 알아보았습니다. 계속해 퀴즈 한마당 이어가겠습니다.

[퀴즈한마당]

남: '퀴즈한마당' 코너에서는 매달에 한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지식경연과는 달리 방송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내용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정답을 찾아나서야 된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여: 오늘은 9월의 퀴즈를 내여드리겠습니다. 가을이 시작된다고 하여 가을에 관련된 내용을 준비했습니다. 가을비는 아주 잠깐 오다가 곧 그친다는 의미의 속담, 또는 그때그때의 잔걱정은 순간적이어서 곧 지나가버림을 비유한 말의 속담은 무엇일까요?

남: 가을비는 아주 잠깐 오다가 곧 그친다는 의미의 속담, 또는 그때그때의 잔걱정은 순간적이어서 곧 지나가버림을 비유한 말의 속담은 무엇일까요?

녜, 9월의 퀴즈 내어드렸습니다. 참여하실 분들은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여: 편지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면 되구요, 우편 번호는 100040번입니다.

남: 이메일은KOREAN@CRI.COM.CN으로 보내시구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여:연변애청자협회 박철원 회장님을 비롯한 여러 청취자분들이 얼마전에 이미 9월의 퀴즈답안을 보내주셨습니다. 정답입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너무 박식하시고 대단하십니다.

박철원 청취자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9월의 퀴즈답안 보냅니다.

시원한 가을바람을 타고 이따금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퀴즈편지가 베이징으로 날아갑니다.

가을비처럼 맟춤하게 오면 단비인데 소나기로 정신없이 쏳아지는 여름비는 재앙의 물이지요. 무서운 홍수뒤끝이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참여한 청취자들로는 김봉숙, 김봉선, 리해숙, 박금숙, 박선옥, 김희숙, 김순옥, 김연옥, 박계옥, 김명자, 박일룡, 정운봉, 김화순, 류영숙, 박상국, 박철원 입니다.

남: 참여하신 청취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아까도 언급했지만 연변지역이 이번에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은데 다시 한번 깊은 위로의 뜻을 표시합니다. 이재민들이 피해를 극복하고 하루빨리 정상적인 생활을 회복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여: 앞으로도 여러분의 열성적인 계속 참여 바라면서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남: 저희는 다음 주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남녀: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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