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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考古) "장헌충 침은"(張獻忠沈銀) 전설 실증
2017-03-27 15:47:44 cri

 (사진설명: 관련인원들이 민강하도의 고고현장에서 발굴정리 작업 진행)

 중국민간에서 전기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장헌충 강구침은"(張獻忠江口沈銀) 전설이 최근 중국 서남부 사천성에서 고고성과의 실증을 받았다. 사천성 문화재고고연구원은 일전에 사천성 민강(泯江) 팽산강구(彭山江口)에서 만여점의 문화재가 발견되었다는 고고성과를 발표했다. 그 중에는 장신구, 무기, 금은기 등이 들어있으며 높은 과학, 역사, 예술가치가 있는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화재들은 17세기 명나라 말기의 사회역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중국 명나라때의 역사, 경제, 군사,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민간전설과 사천의 일부 지역지(地方志)의 기재에 따르면 약 1646년, 명나라 말년 유명한 농민봉기의 수령 장헌충이 민강을 따라 남하하면서 재물을 전이했고 그 과정에 매복 습격을 받아 재물을 실은 배가 가라앉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현지에서는 수백년 동안 당시 금은 보화를 실은 1000 척의 배가 강바닥에 가라앉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금은보화를 실은 장헌충의 배가 진짜 강구(江口)에 가라앉았는지, 배가 가라앉은 정확한 지점은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침몰과 관련된 물밑 고고 작업이 올해 1월에 시작되었으며 현재 만여평방미터에 대한 발굴 작업이 진행된 상태다. 고대륜(高大倫)사천성 문화재 고고 연구원 원장의 소개에 따르면 2개월간 발굴한 문화재는 만여점이 넘는다.      

  (사진설명: 강구침은 물 밑 유적현장)

"제가 알기로는 발견 유적의 문화재는 아주 풍부하다. 그리고 그 급이 높고 종류가 구전해 전국적으로 보기드물다."

발견된 문화재에는 명왕조 분봉번왕과 장헌충 분봉빈비의 금책(金冊), 은책(銀冊), (여기서 冊은 고대 봉록이나 작위를 수여할 때에 임금이 내리는 칙명을 적은 것을 말한다. 책립(册立)이니 책명(册命)이니 책봉(册封)이니 하는 것이 그것이다) 금화, 은화, 동전, 은괴 등이 있고 반지, 귀걸이, 비녀 등 많은 금은 장신구가 산적되어 있었는데 그 위에 새겨진 무늬는 아주 정교했다. 그 외에도 철로 된 칼, 철검, 철 송곳, 철 화살촉 등 병기가 들어있었다.

특히 그중 금은 기물이나 주화에 새겨진 문자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었는데 1800그램의 은괴에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었다. 소개에 따르면 은괴에 새겨진 지명만 해도 명나라때의 20여개 관청이나 주, 현과 관계가 있어 아주 높은 연구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고고현장에서는 또 은궤가 꽉 들어찬 목초(木梢)가 발견되었는데 적지 않은 원보모양의 은궤에서는 귀금속 빛이 발산되었다. 이는 전설속 장헌충의 "삭목장장은"(削木欌藏銀)의 방법에 맞는다. 발견된 문화재는 그 수가 많을뿐만아니라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그 것들은 과학, 역사, 예술 가치도 아주 높다고 한다. 왕위(王魏)중국고고학회 이사장은 현장에서 이렇게 밝혔다.

"발견된 문화재의 가장 큰 가치는 우리들을 실물을 통해 명나라 후기와 말기의 사회생활의 이모저모를 알게 한 것이다. 특히 장헌충은 여러가지 수단을 이용해 금궤와 은궤를 취득했는데 그 범위가 명나라때의 대부분 국토를 커버했다. 이는 번성했던 시기 그의 정치역량과 세력범위에 대해 전면적으로 알게 했다."

(사진설명: 고고인원이 발굴현장에서 갓 발견된 금 장신구 문화재를 펼쳐보이고 있다)

고고발굴은 사천성 성소재지 성도시와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민강주하도(泯江主河導)와 성도시 중심지를 흘러 지나는 부하(府河)가 교차하는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현지의 특수한 지질 구조로 이런 문화재들은 하상중의 자갈과 강모래 사이에 분포돼 있다. 때문에 발굴은 갈수기를 선택해 진행해야 한다. 올해 발굴작업은 이제 한달 정도면 끝나게 된다. 현재 비록 발견문화재의 수는 많지만 전문가들은 민간전설속의 "황실장보"(皇家藏寶)는 지금까지 한 곳 밖에 찾지 못했으며 지금까지의 발굴은 "강구침은"에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농민봉기의 수령인 장헌충은 일찍 중국의 서남부 사천성과 중경 지역에서 짧은 기간의 "대서국"(大西國) 정권을 수립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역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화재들은 어떻게 명나라 말기의 사회생활의 여러 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고 또 장헌충은 어떻게 거액의 재부를 소유, 보존할 수 있었을까? 이와 관련해 사천성 고고연구원의 강구침은 물밑 고고팀 유지암(劉志岩) 팀장은 이렇게 소개한다.

"장헌충은 줄곧 중서부 지역을 망라해 장강유역에서 전전했다. 문헌기재에 따르면 그에게는 특별한 안정적인 경제적인 내원이 없다. 그는 길을 따라 약탈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소를 불문하고 자신이 귀중하다고 느껴지는 물품에 대해서는 약탈해 군대의 운영에 필요한 물자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번 고고발굴은 사천성에서 진행하는 첫 물밑고고프로젝트임은 물론 중국고고계에서도 처음으로 진행하는 방죽고고로서 많은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기술수단이 활용되고 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민강의 하도내 방죽에서 물을 빼는데 발굴 환경은 물밑으로부터 육지로 변화되었다. 또 이번 발굴을 하면서 전국적으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는데 고고에 관심을 가지는 대중들에게 좋은 플랫폼이 마련된 셈이다.

(사진설명: 발굴된 금비녀)

앞서 장헌충의 "강구침은" 유적은 일부 도굴을 당했지만 진귀한 문화재는 이미 경찰측에 의해 반환되었다. 2010년에 분포면적이 100만 평방미터가 넘는 개방식 민강하도가 시급문화재 보호단위 "강구침은유적"으로 확립되었다. 향후 사천성은 유적지 근처에 높은 표준의, 고 시작점의 박물관 건설을 기획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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