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06 18:13:15 | c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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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10월5일)
남: 황금연휴 잘 보내고 계십니까? 청취자의 벗 담당 송휘입니다.
여: 여러분 안녕하세요? 아나운서 이명란입니다.
남: 올해는 국경일 연휴와 추석연휴가 겹치면서 최근 들어 가장 긴 연휴를 보내고 있는 것 같은데요. 연휴를 맞아 많은 분들이 해내외 관광이나 고향집을 찾아 떠나는데요. 각종 수치만 보더라도 민족 대 이동이라는 말이 실감나는데요. 하지만 이렇게 긴 연휴를 맞고도 관광이나 고향에 다녀오지 못하는 분들도 참 많이 계십니다.
여: 그렇습니다. 특히 고향으로 못 가는 이유는 각자 다양하겠지만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똑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청취자의 벗> 프로에서는 고향에 관한 노래 몇 곡을 준비했습니다. 노래를 들으면서 조금이나마 고향의 대한 그리움을 달래시기 바랍니다.
남: 네, 그럼 오늘의 첫 곡으로 연변가수 김지협이 부른 <타향의 달밤>을 듣고 오늘의 <편지 왔어요> 코너로 이어가겠습니다.
<타향의 달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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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네, 오늘도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따끈따끈한 편지사연들을 소개해 드리는 <편지 왔어요> 시간입니다. 연변시조협회가 설립 25주년을 맞았다고 하는데요, 박철원 청취자의 편지를 이명란 아나운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편지 왔어요>
(청취자 편지) 연변시조협회 창립 25돐기념
9월16일, 연변시조협회에서는 연길아리랑회관에서 창립 25돐 기념모임을 가졌다. 원 연변 주 문화국 김희관 국장, 연변대학예술학원 전화자교수와 시인, 작가, 시조연구인원들이 시조를 즐기는 회원, 시조창단 회원들과 자리를 같이했다.
25년전 김학철, 김철, 정판룡, 리상각 등 원로 선각자들의 뜻을 모아 연변에 시조시사를 세워 조선족시인들의 민족적 정신의 혼불을 밝혀 시조 부활의 꿈을 이루게 하여 오늘은 연변시조협회 산하에 시조창단까지 두고있다.
창립 25돐을 기념하며 <중국조선족시조집>도 발행되였다. 홍콩사계절출판사에 의해 출판된 기념시조집에는 원로시인, 시조신인 등 77명의 시조가 수록되였다.
27권의 저서를 펴낸 연변시조협회 고문 김경석 작가가 서평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시조협회 30돐 기념때에는 더 멋진 시조집을 펴낼것을 약속하였다.
미국황제대학 명예박사 칭호를 수여받은 연길 정만당비위전문병원 원장을 맡고 있는 시조협회 최혜숙 이사가 책 출판에 협찬하여 감사패를 받고 "민족의 유산을 잘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고 협찬소감을 토로했다.
연변시조협회 김철학 회장은 "가장 민족적이며 우리의 민속, 우리의 정서, 우리의 생활과 잘 어울려 그 발전전망이 밝은 시조를 발전시켜나가려면 우리 민족문인들의 힘과 마음이 한데 모여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시조창단 배우들이 <도리화(桃梨花)>,<장백산 울 어매여> 등 여러가지 형태의 시조작품을 선보였다.
박철원 2017.9.16
남: 네, 연변시조협회 설립2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는 정말 많은 것들을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특히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며 하루를 25시간으로 사용해도 모자라다고 하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시조 같은 장르는 너무나 멀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 제2대 경제체로 부상한 지금 문화적 발전이 무엇보다 시급한 시점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앞으로도 중화민족의 대 가정속에서 민족문학이라는 아름다운 꽃들이 더 만발하게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여: 그럼 이어서 훈춘의 정창선 청취자의 편지 사연 읽어드리겠습니다. 외 조카의 딸 결혼식에 참가하고 너무도 감동되어 편지를 보내오셨는데요. 함께 듣겠습니다.
남: (청취자 편지) 고향에 돌아와 혼례식 거행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편집선생님들과 아나운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9월 15일 길림성 훈춘시 중심거리에 있는 해바라기 제1분점 혼례청 례식장에서 해남성 건축회사에서 공정사로 사업하는 고봉휘와 해남성 배박구강병원에서 치과의사로 사업하는 안니(安妮)는 고향에 돌아와 멋진 혼례식을 거행했습니다.
고향에 돌아와 혼례식을 거행한 사연은 이러합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룡정에서 출생한 고봉휘(34세)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룡정에서 졸업하고 장춘공정학원에 입학하여 4년동안 공부하고 졸업한이후 해남성에 가 취직하여 전기업 공정사로 7년동안 일하는 과정에서 훈춘에서 출생한 조선족 안니(29세)가 해남성 의학원을 졸업하고 병원에서 치과의사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이 들 둘은 친구의 소개로 만남을 가지고 사귀면서 정이 들어 2년전에 약혼하였습니다.
봉휘와 안니는 결혼식을 어디에서 치르는것이 옳겠는가를 토의한 끝에 부모님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고향에 돌아와 혼례식을 거행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고향에 오면 친척과 친구들이 많아 뜻 깊다고 여긴 것입니다. 봉휘 부모들은 장춘에 이사간지 10여년이 넘었지만 아는 사람이 적고 친척도 별로 없기에 결혼식은 장춘보다 훈춘에서 하는것이 옳다며 아들의 생각에 동의하였습니다.
안니의 부모들이 훈춘에서 출생하고 안씨 친척과 어머니 원씨 친척, 할머니 친척 정씨까지 합하면 수십집이 훈춘에서 살기에 봉휘와 안니의 혼례식이 뜻깊을 것이라고생각했습니다.
혼례식 날 날씨도 아주 좋았습니다. 립추가 지나고 처서, 백로가 지난 서늘한 가을절기 9월 15일 추분이 다가오는 날씨였지만 하나님이 연분을 주었는지 맑은 날씨에 온도는 섭씨 22도여서 손님 모두가 셔츠를 입고 혼례식에 참석하였습니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혼사 택일을 잘 정하였다고 칭찬했습니다.
이날 혼례식에 참가한 친지들은 국내외 귀빈들로 모였기에 봉휘와 안니의 혼례식은 마치 국제혼례식을 방불케 하였습니다. 우선 봉휘의 부모는 한국에서 왔고 안니의 어머니는 미국에서 왔으며 안니의 이모 원금숙은 러시아에서 비행기를 타고 할빈을 거쳐 훈춘에 왔으며 한국 서울, 경기도에서 온 친척이 5명이고 연변 각지와 장춘 등 지역에서 온 친척이 수십 명이 되였습니다. 이날 혼례식에 참가한 친척과 손님들은 비록 100여명 밖에 안되지만 미국, 한국, 러시아, 중국 등 4개국의 친척들과 손님들이 참가한 범위나 노정을 따진다면 국제성을 띤 성대한 혼례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중국 개혁개방의 따사로운 정책의 혜택으로 세계 각국에 나가 노무 송출로 치부의 길을 개척하고 부자가 되는 길에서 생활이 나날이 향상되고 복지사회를 건설하는 시기에 올린 경사로운 혼례식이라 하겠습니다.
이날 혼례식은 사회자의 진행으로 현대식 혼례로 간소화하고 모두가 봉휘와 안니의 혼례식을 축복하면서 노래와 춤판으로 분위기를 고조에로 이끌어 올렸습니다.
정창선
여: 네, 훈춘에 사시는 정창선 청취자가 외조카의 결혼식에 참가하고 그 기쁜 심정을 이렇게 편지로 보내오셨는데요. 일단 고봉휘군과 안니양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좋은 인연으로 만난 두분 백년해로 하시기 바랍니다.
남: 네, 사실 요즘 결혼식을 어디에서 하느냐가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조선족 청년들의 고민아닌 고민이 아닐까 싶은데요. 예전에는 무조건 고향에 가서 결혼식을 하고 직장에 와서 피로연을 하는 식으로 진행해 왔지만 요즘 고향에 가족과 친천, 친구들이 내지로, 외지로 많이 나가 있는 실정이라 고향을 찾아 결혼식을 올리는 친구들이 줄어드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찾아 결혼식을 올린 고봉휘와 안니의 결정에 어르신들이나 저희가 보기에 흐뭇한 거죠.
남: 네, 맞습니다. 아무튼 행복한 결혼생활 하시기 바라구요, 계속해 다음사연 만나 보겠습니다. 장춘의 김춘실 청취자입니다.
여: (청취자 편지) 김춘실 청취자 편지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여러분 안녕하세요?
어느덧 천고마비의 가을입니다. 선선한 바람이 온 몸을 스치고 들에는 무르익은 곡식들이 금파도치며 조이삭들은 고개숙여 우리에게 인사하네요. 나무잎들도 지지 않으려고 가을의 고운 옷을 입기 시작했고 온 세상 사물들은 계절에 따라 모두 제멋을 내고 있네요.
저 푸른 창공은 가을이 되니 더 높아졌으며 반짝이는 별들은 저들끼리 재미있게 속삭이며 별똥별까지 튕기네요.
이런 좋은 계절에 우리 장춘 남관구 조선족 애청자 분회에서는 중국국제방송 조선어방송을 열심히 들은 후 감상과 소감발표를 위한 강연대회를 조직했습니다.
이날 시 애청자클럽의 황정숙 상무부회장과 김석찬 부회장님께서 우리활동에 오셔서 저희들의 소감을 들으시고 보귀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우리 분회는 5개 조에서 9명 회원이 국제방송을 청취한 다음 자기 감상과 느끼는 점을 다양하게 얘기해 아주 잘 진행되었습니다.
비록 서투르기는 하지만 각각 강연하는 분들은 자기 감상과 감격적인 내용을 털어놓았으며 강연한 분들 중 80세, 83세되는 노인들이 여럿 되였고 평균 연령이 75.3세가 넘었지만 그 열정은 아주 대단했습니다.
그 중 83세 김일룡 노인은 앞에 나가서 자신감 있게 감상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노인은 협회에 참가한지 아주 긴 시간이었지만 처음으로 여러분들 앞에서 강연한 것으로 분회 회원들도 감탄에 겨워 열심히 들었습니다.
사실 김일룡 노인은 우리 협회에서 제일 명심하여 아침, 저녁방송을 듣는 우수한 분입니다. 들은 다음 꼭 문장을 잘 썼다느니, 어디는 어떻고 하면서 착실히 알려줍니다. 그러니 우리는 너무 고맙지요. 그리고 평생 첫 강연도하니 우리 협회회원들은 농담으로 "야~해가 서쪽에서 뜨겠네"하며 격려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 외 이번 강연은 1조에서 조명기, 리재영, 2조에서는 박봉선, 김춘실, 3조에서는 김일룡, 4조에서는 권오조, 김연동, 5조에서는 송영옥, 오동연 등 동무들이 나서 모두 특색있고 흥미진진하게 잘 얘기했습니다.
이날따라 회원들이 많이 모였고 점심은 준비해온 음식으로 먹었으며 오후에는 춤과 노래로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래보면 이 늙은이들 장하지요. 저 역시 75세입니다. 강연하는 분들의 공통점은 중국국제방송국에 감사드리는겁니다.
우리 민족의 언어로 아름다운 목소리로 곱게 방송을 한것에 감사드리며 우리가 써보낸 글들을 예쁘게 읽어주어 감사드리며 방송을 들을때마다 편지를 더 쓰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고 합니다.
국제방송국의 전체 아나운서분들을 많이 칭찬합니다. 바쁜와중에도 장춘에 직접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도 같이 하고 좌담회까지 한 모든 장면이 잊혀지지 않을뿐더러 그 진실성에 감사하답니다.
금후에도 호상 경험교류와 감상발표가 자주 있으리라 믿으며 우리 민족의 언어와 풍속습관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시는 여러분들이 사업에서 큰 성과가 있기를 기원하며 신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Ps:시간이 허용되면 장춘에 오세요.
남관구 애청자 분회 김춘실 올림
남: 네, 평균 연령이 75.3세인 애청자분들이 모여 저희 중국국제방송국 방송 청취소감 발표회를 가졌다고 하니 정말 그 열정에 탄복이 가고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 네, 이번 편지에는 저희 방송프로그램과 아나운서들에 대한 좋은 평가만 보내주셨는데요. 애청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 들었습니다.
남: 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소박하지만 의미있는 소감발표회를 많이 조직해 여러분들의 발표 기량도 제고하고 다시한번 많은 분들의 방송 청취 열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 네, 아직도 많은 편지 사연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시간상 관계로 오늘은 이만 줄이고 다음 번 시간에 방송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한국가수 나훈가 부른 노래 <고향역>을 듣고 퀴즈한마당 코너로 이어가겠습니다.
<고향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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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한마당]
남: '퀴즈한마당' 코너에서는 매달에 한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지식경연과는 달리 방송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내용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정답을 찾아나서야 된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여: 네, 그럼 9월의 퀴즈를 내어 드리기 전에 먼저 보내오신 답안을 만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리고 길림성 장춘시 남관구 조선족노인협회 애청자분회 2조의 김춘실 청취자도 답안을 보내 오셨는데요. 역시 정답니다. 축하드립니다.
답을 함께 보낸 분들로는 박봉선, 김수복, 권영희, 박재환, 김춘실, 최정숙, 김복희, 장천일, 진명숙, 김봉운, 김숙자, 김금자, 최계화, 박금녀, 리금숙, 김옥산, 김명숙, 심옥선, 안인숙, 최봉금, 전명숙입니다.
남: 이와 함께 연길의 주룡린 청취자가 퀴즈답안을 보내오셨는데요, 지금 만나 보겠습니다.
송휘, 이명란 선생님 수많은 애청자들을 위해서 오늘도 내일도 수고하십니다.
1952년 9월 3일 연변조선족 자치주가 성립되었습니다. 당시 주당위 제1서기 겸 주장이였던 주덕해 동지의 정확한 지도하에 연변 각 민족 인민은 분발노력하여 민족경제를 발전시키고 농업, 문화, 예술, 위생 등 각 전선에서 휘황찬란한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특히 농업전선에서 김시룡, 최죽송, 렬군속 모범 리옥금, 모주석 저작 학습 모법 황순옥 등 국가급 영웅모범 인물들이 용솟음쳐 나왔으며 연변의 사회기풍은 민족이 단결되고 변강이 안전한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우리 나라 방방곡곡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는 모두 주덕해 동지의 굴할줄 모르는 혁명열정과 연변인민을 위해 심혈을 바친 사업열정이 연변의 곳곳마다에 빛을 뿌린 결과입니다.
오늘의 연변은 주당위와 주정부의 정확한 영도하에 연변 각 민족 인민이 쾌속발전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바다와 하늘길이 열리고 고속철도시대에 들어서고 장길도 시범구가 형성되어 연변의 경제와 사회발전은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하여 연변 각 민족인민은 살기 좋고 아름다운 고향을 건설하기 위해 분발노력 분투하고 있습니다.
애청자 주룡린 연길에서
그럼 9월의 퀴즈 답안은 보내드립니다.
답은 정답이구요. 함께 답안을 보낸 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조태산, 이흥걸, 이상학, 김철순, 김문기, 이철수, 박봉녀, 이춘자, 황순금, 김영숙, 강길자,업정숙, 함진회, 신영자, 안리선, 최금순, 박선옥, 주룡린입니다.
여: 9월의 퀴즈풀이에 참가한 모든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리면서 9월의 정확한 퀴즈답안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9월의 퀴즈문제는 올해 9월3일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6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럼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초대 주장은 누구이며 중국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와 같은 소수민족자치주가 몇 개나 있을까요?"였습니다.
남: 그 답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초대 주장은 주덕해이구요, 중국에는 조선족자치주와 같은 소수민족자치주가 2017년 현재까지 30개 있습니다.
주덕해 동지는1952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과 함께 제1서기, 자치주장을 맡고 길림성 당위원회 상무위원 길림성 부성장도 겸했습니다. 주요 공헌으로는 동북항일연군에 참가한 것과 연변대학을 세운 것입니다.
연변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온 주덕해 주장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여: 자지주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지방행정구역의 일종인데요. 중국소수민족 집거구역에 설립한 민족자치지방이며 중국의 3급 행정체계에서 성과 현 사이에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규정에 따라 민족자치지방은 비교적 높은 자체관리권리를 향유할수 있습니다.
남: 네, 그럼 계속해 10월의 퀴즈 내어드리겠습니다. 올해는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68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럼 "중국의 두개 백년 분투 목표는 언제 제기되었으며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입니다.
여: "중국의 두개 백년 분투 목표는 언제 제기되었으며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입니다.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남: 편지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면 되구요, 우편 번호는 100040번입니다.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시구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여: 네, 앞으로도 꾸준히 퀴즈 풀이에 참여하시기 바라면서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 편성에 송 휘, 진행에 이명란, 송휘였습니다.
남: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희는 다음 주 같은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여러분~
남녀: 안녕히 계십시오.
《家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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