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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의 벗] 2018년 4월 5일 방송듣기
2018-04-12 10:50:20 cri

 

청취자의 벗

(2018년4월5일)

남: 지난 한 주 잘 보내셨습니까? 청취자의 벗 담당 송휘입니다.

여: 네, 안녕하세요? 아나운서 이명란입니다.

남: 4월 5일은 중국의 전통명절인 청명입니다. 이 날은 춘절과 단오절, 중추절과 함께 중국의 4대 전통명절로 불리기도 합니다. 2013년에 청명은 제1진으로 국가무형문화재 명록에 등재되었습니다.

여: 청명은 현재 공휴일로 지정되어 중국에서는 청명휴가도 즐길 수 있는데요. 지금까지 약 25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청명은 고대에 답청절, 3월절, 귀신절 등 아주 다양하게 불려졌다고 합니다.

남: 24절기는 1년 4계절의 기온과 강우량, 물후(物候, 계절이나 기후에 따라 변하는 만물의 상태)등의 변화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대에는 이를 근거로 농사를 계획했습니다. 청명이 오면 기온이 높아지고 강우량이 많아지는데 바로 봄 농사와 파종의 가장 적절한 시기입니다. 그래서 "청명 전후로 박씨를 뿌리고 콩을 심는다"는 말과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는데는 청명만한 날이 없다"는 농사와 관련된 속담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청명과 농업생산이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 그러나 청명은 명절이기 때문에 순수한 절기와는 또 달라서 풍속적 활동 내용이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명은 조상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주요한 의식 활동으로는 조상을 제사 지내고, 성묘를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상사에는 슬픔을 다하고 제사에는 공경을 다하며 친지들과의 우의와 화목을 증진시키고 효도를 실천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남: 진한(秦漢) 시기에 묘제(墓祭)는 이미 사람들이 중시하는 예속 활동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성묘는 원래 청명 전 날인 한식의 행사입니다. 한식은 진문공이 개자추를 추모한데서 비롯된 것이라 합니다.

여: 당나라 현종(玄宗)은 개원(開元) 20년에 "한식에 성묘하라"는 조서를 천하에 반포하였습니다. 그 후로 한식과 청명이 가까워서 민간에서는 불을 피우지 않고 성묘하는 한식이 점점 청명과 합쳐지게 되었고 한식은 청명의 별칭이 되었습니다. 그 후 또 청명 때의 풍속으로 변하여 청명에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만 먹게 된 것입니다.

남: 불을 피우지 않고 성묘하는 것 외에도 답청(踏青)과 연날리기, 오락 등의 활동이 있습니다. 강남에서는 또 잠화회(蠶花會)와 잠신(蠶神) 제사 등의 활동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청명은 성묘를 하며 슬픈 눈물을 흘리는 날이지만 또 답청을 즐기는 웃음소리가 나기도 하는 풍부한 특색을 갖춘 날입니다.

여: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된 후 각 지역 사람들은 청명절을 전후로 혁명열사능원에 가서 성묘를 하면서 선열에 대한 그리운 정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남: 청명절의 문화적 의의는 각별합니다. 청명절은 조상에 대한 사람들의 추모의 정을 만족시키고 친지들간의 정을 돈독히 합니다. 따라서 청명은 중국의 중요한 전통 명절의 하나로 지금까지도 여전히 해외 화교들을 포함한 중화민족의 중요한 명절입니다.

여: 아무쪼록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모두 청명절 잘 보내시기 바라면서 노래 한 곡 듣고 <편지 왔어요> 코너로 이어 가겠습니다. 중국가수 이옥강이 불러 드립니다. <宝顶之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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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宝顶之巅>

[편지 왔어요]

남: 이어서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따끈따끈한 편지사연들을 소개해 드리는 <편지 왔어요> 시간입니다. 오늘은 먼저 채화순 청취자의 편지 사연을 이명란 아나운서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청취자 편지-1] 훈춘의 채화순 청취자 

한평생 착하게 살아온 사람

사람이란 한두 번 좋은 일 하기는 쉬워도 한 생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착하게 살며 좋은 일만 하기란 쉽지 않다. 훈춘시 환아A구11동에는 한평생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좋은 일을 많이 하며 착하게 살아온 김용수(62세)란 사람이 있다.

그는 원래 훈춘시 철로 보수팀으로 출근했다. 아들 하나, 딸 하나 키우며 단란하고 행복하던 이 가정에 불행이 닥쳤다. 99년도 훈춘병원, 장춘병원에서 수술치료도 받으며 아내를 살리려 애써왔으나 6, 7개월후 아내는 끝내 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해에 김용수는 출근해 일하다가 머리를 크게 다쳐 출근 못하고 공상치료를 받으면서 단위에서 주는 300여원의 보조금으로 어린 아들딸을 키우면서 근근득식으로 살아야만 했다.

그래도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이 있었기에 아들은 장춘공정관리대학을 졸업하고 지금 광주에서 사업하고 있으며 딸은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역시 광주에서 사업하는데 아들딸 모두가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아버지에게도 자주 전화하고 명절이나 생일에도 자주 찾아오며 효성이 지극하단다.

20여세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고생스레 살아온 용수는 원래 심성이 착하고 부지런해 마을의 크고 작은 일들을 찾아 다니며 도와주었고 가도의 조장으로 있으면서도 외바퀴 손수레로 설 명절에는 열사의 유족과 군인의 가족, 사회혜택을 받는 집(五保户)들에 쌀이나 기름을 날라다 주고 호구 조사가 있을 때면 집집이 찾아 다니면서 호구본을 거두어 5리 남짓이 떨어진 사회구역에 가져다 검사를 받은 후 또 집집이 나눠주며 주민들의 걸음을 덜게 하고 편리를 도모하기에 힘썼다.

2011년, 동네의 김병철(82세) 노인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자 김용수는 노인을 병원으로 모시고가 입원시키고 20여일 간호해 주었으며 퇴원해 집에 모시고 돌아와서도 노인을 돌보다가 임종까지 끝까지 잘 마무리해 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89세에 돌아갔는데 생활은 넉넉하지 못해도 마음이 넉넉한 아들 덕에 여느 집 할머니들 못지않게 행복하게 보내시다 돌아갔다. 그는 부인이 돌아간 후 장모님과 장인도 모셔다가 함께 지내다가 손수 저 세상 가는 길까지 보내드렸다고 한다.

사고로 단위에 출근할 수 없게 된 김용수는 20여년간 자전거 수리부를 꾸렸는데 지금까지 다른 수리부 보다 돈을 적게 받고 노인들이나 곤란한 가정들에 한해서는 무상으로 수리해 주고 동네의 어느 집에 전기고장이 나거나 수도가 고장이 나거나 파이프가 터져도 한밤중이라도 부르면 찾아가 수리해 주었다.

이렇게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활은 부유하지는 못해도 마음의 부자로 남을 돕는 것을 낙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하여 동네에 바쁜 일만 생기면 의례 찾아야 하는 "보배 아바이"로 소문이 높다.

훈춘시 채화순

남: 네, 갖은 고생과 어려움 속에서도 남을 돕는 일을 견지해오면서 "보배 아바이"로 불리는 김용수 선생의 이야기를 채화순 청취자의 소개로 잘 들었습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그 마음씨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 네, 고생 끝에 낙이 오고 정성이 지극하면 돌 위에도 꽃이 핀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남을 도와오면서 살아오셨으니 꼭 좋은 날만 남았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영원한 "보배 아바이"로 남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계속해 한국의 김대곤 청취자 만나 보겠습니다.

[청취자 편지—2] 한국의 김대곤 청취자

방송수신 모니터보고입니다.

안녕하셨습니까? 벌써 4월이 되었습니다. 봄기운이 완연한 가운데 활동하기에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 4월엔 조선반도에도 남과 북의 정상들이 4월27일에 만난다니 기대가 큽니다. 그리고 봄이 되면서 낮의 길이가 길어지니까 아침 중파방송은 수신감도가 떨어집니다. 7290Khz는 양호하여 불편은 없습니다. 따스한 날씨가 계속되니 벚꽃이며 봄 꽃들이 만개하여 마음까지도 환해지는 밝은 표정들입니다. 좋은 시간들 보내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4월2일 울산에서 김대곤 드림

여: 적시적이고 상세한 수신보고 감사합니다. 역시 3월말 4월초는 벚꽃을 구경하는 최적의 시기인 것 같습니다. 김대곤 청취자도 따뜻한 봄날 가족과 함께 꽃구경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남: 네, 그리고 이달 27일에 있게 될 조선반도 남과 북의 정상회담, 저희 또한 기대가 큽니다. 좋은 만남을 통해 좋은 결과가 많이 나오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그럼 계속해 왕청의 이강춘 청취자의 편지 읽어 드리겠습니다.

[청취자 편지-3] 왕청의 이강춘 청취자 

"타향의 봄" 작곡가의 눈물겨운 인생 스토리

80 고령을 넘긴 외팔 장애인인 최시렬은 생활을 자립하려는 일념으로 오늘까지 보람찬 삶을 가꾸어왔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즐겼던 최시렬은 산서사범대학 음악학원을 졸업하고 태원광무국 문공단 창작원으로 배치받아 음악재능을 발휘하면서 작곡가로 되려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으로 문공단의 창작원과 배우들은 모두 탄광에 내려가 노동개조를 하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 하루, 탄광의 의외 사고로 그는 오른쪽 팔을 잃게 되였다. 모든 꿈이 산산이 부서지고 절망과 고통속에서 방황하던 그는 생명까지 포기하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텔레비전을 통해 두 손이 없는 한 소녀가 발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본 최시렬은 "두 손이 없는 소녀도 저렇게 굳세게 살아가는데 나는 그래도 한 손은 있지 않은가, 이렇게 자포자기해서야..." 그때로부터 그는 미술에 뜻을 두고 51살까지 10년간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 속에서 삶의 희열을 느끼곤 하였다. 하지만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미술을 단연히 포기하고 1988년에 왕청현 동진사구에 와 두부장사를 하면서 돼지치기를 시작했다. 왼손으로 두부를 앗고 돼지치기까지 하는 것이 힘에 부치는 일이었지만 매일 적은 수입이나마 제 힘으로 살아가게 되여 마음이 뿌듯했다. 그 후 아들애의 공부 뒷바라지를 위해 1993년에 러시야 장사 길에 올랐다. 러시아 우수리스크로 간 이듬해, 우연한 기회에 장난감 전자풍금을 보았다. 급급히 왼손으로 전자풍금을 쳤더니 아름다운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삽시에 동년시절의 꿈이 되살아나 전자풍금 장사를 하면서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들으며 살고 싶어 장난감 전자풍금을 구입, 판매하기 시작했다.

1994년 3월, 원호원의 "타향의 봄"가사를 보고 작곡을 시작했다. 이튿날부터 그는 시장에서 전자풍금으로 "타향의 봄"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불러보았는데 우수리스크 중국시장은 "타향의 봄"노래로 들썩했다. 며칠 후 최시렬은 김영자씨와 함께 이 노래를 불러 1만 3000개의 녹음 테이프로 제작해 팔았는데 하루 판매액이 500~600원이 되었다. 그가 제작한 녹음 테이프는 러시아의 교포는 물론 조선, 한국에서 온 분들과 일본, 미국 등 여러 나라의 조선족들도 다투어 사갔다. 이렇게 "타향의 봄" 노래는 온 지구촌에 울려 퍼졌다.

2년후인 1996년 9월 30일, "타향의 봄"노래가 연변인민방송국 음악부 성기화 주임의 반주에 김성삼 가수가 불러 매주일가로 방송되자 노래 요청 편지가 눈꽃처럼 음악편집부로 날아왔다. 그때 최시렬은 "장애인이지만 절망 속에서 헤매다가 저 세상으로 갔더라면 이런 삶의 보람을 느껴볼 수 있었겠는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굳은 신념을 지켜왔기에 나의 삶에도 이런 보람이 있게 된 것이 아닌가!"며 진정 삶의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2002년에 왕청으로 돌아온 그는 예술의 어린 꿈나무들을 키우고저 어린이 전자풍금 강습반을 꾸렸다. 지금까지 그의 제자는 82명, 그 중 심선영, 최복화, 왕정 등 3명 학생은 지난해 1월 전국 전자풍금 10급시험에 통과되어 자격증을 탔고 7명 학생이 선후로 길림성 전자풍금 콩쿠르에서 금상 4개, 은상 3개를 따냈으며 올해는 최복화, 장혜신, 심선영 등 3명 학생들이 연변을 대표하여 2월 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 동안 북경에서 열린 전국텔레비전선발경연에 참가해 금상 하나, 은상 2개를 수상했다.

지금까지 그는 총 800여수의 가요를 창작했는데 그 중 "울지 마라, 밤새야"는 전국유행가곡콩쿠르에 입선되어 증서까지 받았으며 왕청현 후대관심사업위원회에서는 지난 1월 9일에 "왕청현 최시렬 전자풍금 양성기지"라는 간판을 걸어주었다.

고난과 역경을 헤쳐온 눈물겨운 인생길을 되돌아보면서 그는 "육체의 불구가 두렵지 않다고 본다. 두려운 것은 정신적 불구입니다. 삶의 의욕을 품고 자신의 삶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간다면 장애인이라 해도 정상인이 해내지 못하는 일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며 감개무량해 한다.

길림성 왕청현/ 리강춘

남: 네, "타향의 봄" 작곡가의 눈물겨운 인생 스토리 잘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한테 그렇게 애창되어 온 "타향의 봄" 노래에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네요.

여: 주인공 최시열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정으로 육체의 장애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정신적 장애가 두렵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완강한 의지력으로 수 많은 사람들의 애창곡을 탄생시킨 최시열 선생님께 큰 박수를 보내드리고 그 사연을 글로 잘 표현해낸 이강춘 청취자도 고맙습니다.

남: 네, 노래의 탄생과정을 듣고 나서 다시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아주 남다른 느낌을 것 같은데요. 지금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성삼 가수가 부른 타향의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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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의 봄>

[퀴즈한마당]

남: '퀴즈한마당' 코너에서는 매달에 한번씩 새로운 퀴즈 하나씩을 내어드리는데요, 지식경연과는 달리 방송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내용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정답을 찾아나서야 된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퀴즈 문제를 내어 드리기 전에 먼저 3월의 퀴즈답안을 보내오신 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퀴즈풀이-1] 연길의 김룡남 청취자 

저는 중국국제방송 애청자입니다.

3월 퀴즈 답안은 전국인민대표대회입니다.

방송국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길림성 연길시북산가도 주민 김룡남

남: 네, 보내오신 답은 정답이고요. 참여에 감사 드립니다. 네, 그럼 4월의 퀴즈를 내어 드리기 전에 먼저 3월의 퀴즈 답안을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부분 분들이 정답을 맞추셨는데요. 정답은 바로 전국인민대표대회입니다.

여: 네, 3월의 문제는 "중국의 최고 국가권력기관의 명칭은 무엇입니까?"였습니다. 이 문제의 정답은 전국인민대표대회입니다.

남: 중화인민공화국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중국의 최고 국가권력기관이며 그의 상설 기관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입니다.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국가의 입법권을 행사합니다.

여: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성, 장치구, 직할시, 특별행정구와 군대에서 선출한 대표들로 구성, 각 소수민족들은 모두 적당한 명액의 대표를 가집니다. 전국인민대표대회는 헌법을 수정하고 헌법의 실시를 감독하며 형사, 민사, 국가기구의 기본 법률과 기타 기본 법률을 제정, 수정하며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부주석을 선거하는 직권을 행사합니다.

남: 인민대표대회제도는 중국의 근본 정치제도입니다. 사회주의 민주의 본질은 인민이 나라의 주인으로 되는 것입니다. 국가의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 속합니다. 이는 중국 국가제도의 핵심내용과 근본 준칙으로 됩니다. 인민대표대회제도는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 속한다"는 사회주의 민주의 실질을 구현하는 근본제도이며 인민들이 국가의 권력을 행사하는 근본 도경과 형식이고 인민이 나라와 민족, 자기의 운명을 최종 자기의 손에 장악하고 인민의 근본이익을 수호할 수 있는 믿음직한 담보입니다.

여: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최고 국가권력기관으로 국가의 중대한 정책과 방침을 결정하며 국가 입법권을 행사합니다. 인민이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은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지방 각급 인민대표대회입니다. 각급 인민대표대회의 대표는 모두 민주선거의 방식으로 산생되며 인민에 대해 책임지고 인민의 감독을 받습니다. 각급 인민대표대회 대표들은 여러 민족, 여러 계층에서 선출되며 광범성을 띠고 있습니다.

남: 1954년 9월, 중화인민공화국 제1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차회의가 베이징에서 소집되었습니다. 회의는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을 통과했으며 국가 지도자를 선출했습니다. 이번 대회는 중화인민공화국 제1임 주석이었던 모택동 주석이 회의 개막식에서 지적했던 바와 같이 "1949년 건국이래의 새로운 승리와 새로운 발전의 이정비"로 되었습니다.

여: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최고 국가권력기관으로 국가의 중대한 정책과 방침을 결정하며 국가 구성원을 결정합니다.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장, 부 위원장, 비서장, 위원,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부주석, 국무원 총리, 국무원 부총리, 국무위원, 각 부 부장, 각 위원회 주임, 중국인민은행 행장, 심계장과 비서장,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중앙군사위원회 기타 구성인원, 최고인민법원 원장, 최고인민검찰원 검찰장, 전국인민대표대회 각 전문 위원회 주임위원, 부주임위원과 위원들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산생됩니다.

남: 네, 3월의 퀴즈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 드리면서 계속해 4월의 퀴즈를 내어 드리겠습니다. "중국 전통 24절기 가운데 절기이자 명절인 날은 어느 날입니까?"

여: "중국 전통 24절기 가운데 절기이자 명절인 날은 어느 날입니까?"

네, 퀴즈에 참여하실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편지나 이메일 또는 팩스로 답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편지는 베이징시 석경산로 갑 16번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 앞으로 보내시면 되고요, 우편 번호는 100040번입니다.

남: 이메일은 KOREAN@CRI.COM.CN으로 보내시고요, 팩스는 010-6889-2257번으로 보내주시면 되겠습니다.

여: 네, 앞으로도 꾸준히 방송청취 소감을 보내 오시고 퀴즈 풀이에 참여하시기 바라면서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편성에 송휘 진행에 송휘, 이명란이었습니다.

남: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희는 다음주 같은 시간에 다시 인사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남녀: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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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茉莉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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