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正善
2019-05-05 10:23:08 출처:cri
편집:朱正善

따이족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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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이족은 역사가 유구한 소수민족이다. 자고로 따이족 선민들은 중국 서남부 지역에서 세세대대로 생활해왔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고고학자들이 중국 운남(雲南)성 전지(滇池) 경홍(景洪) 등 지와 기타 성 및 자치구에서 발굴한 신석기시대의 문화퇴적물 그리고 최근 년간 태국의 반 치앙, 르이 주  등 지역에서 출토된 대량의 석기와 청동기 등 역사 문화재가 증명하다시피 원고시대의 따이족 선민들은 중국의 운남성과 광서장족자치구의 대부분 지역, 사천성과 귀주성의 일부 지역, 라오스, 태국의 북부, 미얀마, 인디아 아삼의 넓은 지역에서 생활하다 점차 서남쪽으로 이주한 민족이다.

오늘날 중국의 따이족은 대부분 운남성에 집중 거주하고 있으며 광동과 사천 등 여타 성급 행정구역에도 극 소수의 따이족이 산재하고 있다. 2010년 제6차 인구보편조사결과에 따르면 중국 경내의 따이족 인구는 약 126만명으로 소수민족 인구 중 그 규모가 18번째이다.

따이족의 족칭을 보기로 하자!

따이족 선민들은 한나라 때에는 전월(滇越), 또는 선(掸)으로 불렸고 당나라와 송나라 때에는 ‘금치’(金齒)와 흑치(黑齒), ‘화만’(花蠻)으로 불렸으며 원나라와 명나라 때에는 백이(百夷)로 불렸다. 그러다 새 중국이 창건되면서 따이족 인민들의 염원에 따라 따이족으로 정식 개명했다.  따이족의 ‘태’(傣)는 두가지 함의가 있는데 하나는 ‘곡창’즉 곡식창고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쟁기로 논밭을 간다’는 뜻으로 따이족의 족칭이 벼와 긴밀한 연관이 있으며 따라서 따이족은 벼 재배 민족임을 말해준다. 

따이족은 노강(怒江), 난창강(瀾昌江) 중상유지역의 애로인(哀窂人)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있다. 애로인은 운남- 귀주고원 고인류의 한갈래이다. 기원전 5세기 경 애로인들은 난창강과 노강 중상유 지역에서 달광(達光) 등 부락연맹국을 세웠다.당시의 달광을 ‘애로’라고 불러 한나라 때부터 달광왕국을 ‘애로국’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기원 1세기 달광왕국 동쪽의 전(滇)왕국과 그 종주국인 한나라간 충돌이 끊임없어 대량의 전인들이 애로국 경내에 유입돼 애로인들이 전인과 융합하면서 현대 따이족의 추형이 점차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문 사서를 보면 기원 1세기에 벌써 따이족 선민들에 대한 기재가 있었다. 많은 학자들은 중국 고서에서 언급된 송나라 때 남소(南诏),대리(大理)에 분포된 일부 민족이 따이족의 선민이라고 주장한다. <만서>(蠻書)에 기재된 ‘망만부락’(茫蠻)이 지금의 시솽반나 일대의 따이족 선민이라는 것이다.  고전국(古滇國)이 따이족이 세운 첫 왕국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륵서>(泐書)의 기재에 따르면 기원 1180년 경 지금의 시솽반나 일대의 따이족들이 팔진(叭眞)의 인솔하에 따이족의 여러 부락을 통일해 경룡금전국(景龍金殿國)을 세웠다. 맹륵(勐泐) 정권의 수립은 시솽반나 따이족의 주체인 따이륵(傣泐)인들의 정식 형성을 상징한다.

원나라와 명나라 때 한족과 따이족간의 경제문화교류가 날로 긴밀해지고 특히 많은 한족들이 변강지역에 이주하면서 내륙의 선진전인 생산기술과 문화과학도 따이족 지역에 널리 전파되어 따이족의 사회경제발전을  추동하게 된다. 원나라 초년의 기재를 보면 당시 덕굉지역의 따이족들은 여전히 노예를 생산노동에 투입시켰다. 이로부터도 원나라와 명나라때에 이르러서야 여러 따이족 지역이 선후로 봉건영주제 사회에 진입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철기의 사용과 목화재배가 이미 보편화되었으며 수공업이 새로운 발전을 가져와 ‘간애금’(干崖錦), ‘사만장’(絲㡢帳’ 등 아름답고 진귀한 수공예품이 만들어졌으며 상업이 활약상을 보여 ‘차리’(車里) 등 비교적 큰 상업도시도 나타났다.

따이족 지역은 변강에 위치해 있어 제국주의의 침략을 가장 먼저 받은 곳이기도 하다. 제국주의는 자원을 약탈하고 상품을 덤핑하는 등 경제적인 침략을 감행했을 뿐만아니라 정치와 군사, 문화적 침략도 창궐했다. 하여 자신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 따이족들은 한족, 징퍼족(景頗族), 와족(佤族)과 함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엽까지 영국과 프랑스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하고 항일전쟁시기에는 전국인민과 함께 일본 파시스와의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중국항일전쟁의 대동맥’으로 불린 전지-미얀마 철도가 바로 중국이 외래지원물자를 날라들이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다. 따이족 인민들은 수차 전지-미얀마 철도 긴급보수에 참가해  지원물자의 수송을 담보했다.   

따이족은 자신의 민족언어와 문자가 있다. 한어-티베트어계에 속하는 따이족의 언어는 분포지역에 따라 따이어(傣語), 태국어(泰語), 라오스어로 나뉘며 세계적으로 약 6600만명이 따이어를 사용하고 있다. 따이족이 사용하는 문자는 병음문자인 따이문(傣文)으로 여러가지 방언문자로 분류된다. 중국 경내의 따이족들이 사용하는 문자만도 원래 네가지가 있었는데 20세기 50년대 개진을 거쳐 시솽반나와 덕굉(德宏) 두 지역 따이문을 통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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