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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수교가 우리 집에 일으킨 변화
2012-09-26 16:54:18 cri
지난 8월 24일은 중한수교 20주년 기념일이다. 이날 우리 노인 협회에서도 생긴 처음 중한수교를 기념하여 오락회를 열었다. 나도 춤추고 노래 불렀다. 중한수교는 중국 조선족에게 있어서 아주 경사스러운 일이다. 조선이 남북으로 갈라진지 47년 만에 중한수교가 성공되어 한국 친척들과 편지왕래, 친척방문, 유학, 노무의 길이 활짝 열린 것이다.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원적이 한국 경상북도로서, 언제나 자기가 나서 자란 고향을 생각하며 그리워하였다. 특히 저의 큰 누님은 일본이 투항한 1945년 겨울에 우리 자형과 두 살 난 아들과 함께 경북안동으로 떠났다. 그 후 편지연락이 끊기여 그들의 생사조차도 알길 없었다. 저의 부모는 노쇠하여 결국 보고 싶어 하던 딸, 사위, 외손자를 보지 못하고 고향땅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하직하셨다.

이 모든 것이 중한수교가 되지 않은 탓으로 발생한 일이여서 어디다 하소연 할 곳도 없는 처지이다. 저의 부모와 같이 딸자식을 그리며 친우들을 그리며 고향땅을 그리다 세상을 떠나신 분들이 많고 많다고 생각된다. 드디어 1992년 8월 24일에 중한수교가 성공하였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격동 되였던지 눈물이 나왔다. 저녁에는 술상을 차려 경축하였다. 나의 부모가 살아 계시였다면 나는 그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한국 고향땅에 다녀오시게 하였을것이다. 한중수교는 중국과 한국 두 나라에 크나큰 리익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우리집에도 큰 혜택을 받았다.

중한수교로 인하여 나의 큰 딸과 큰 사위는 서울대학에 유학하여 의학박사, 박사후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우리 량주는 나의 부모님의 념원을 지니고 한국 친척방문을 두 차례나 하여 한국 친척들의 열정 넘친 대접을 받았으며 서울, 대구, 부산, 경주, 제주도를 유람하였다. 중산수교 이전에 한국은 멀고도 서툰 꿈속의 나라였다. 그러나 중한수교 이후에 한국은 가깝고도 익숙하며 하늘과 바다길이 모두 열리여 수시로 왕래할수 있다. 한국에 계시는 친척 몇분은 백두산 천지를 한번 구경하였으면 하는데 명년에는 그분들을 초청하여 장백산 유람을 시켜줄려고 계획하고 있다.

중국국제방송국 조선어부에서 중한수교 20주년을 기념하여 방송한 "동행"은 중한수교 20년을 이렇게 총괄하였다. "중한수교는 중한 두 나라 역사적 발전에 필연적 결과이며 지금 두 나라는 아름다운 우정으로 행복하게 동행하고 있다." 나도 중국인민 일원으로 동행에 발맞추어 두 나라 우호에 유익한 일을 한 가지라도 더 하려한다.

 - 장춘 애청애독자 클럽: 리종광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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