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16 15:16:22 | cri |
(사진설명: 영정하와 로구교)
개관:
베이징 서쪽의 영정하(永定河)는 옛적에 로구하(蘆溝河)로 불리웠다. 최초 사람들은 배를 이용해 로구하를 오갔고 그 뒤에는 부교를 이용했는데 1153년 금(金)나라가 연경(燕京, 오늘의 베이징)에 도읍을 정하고 나서 이 곳이 교통요충지로 되면서 금나라 세종(世宗)황제의 어명에 의해 교량을 놓았고 갈대 로(蘆)자를 붙여 로구교(蘆溝橋)라고 했다.
13세기경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중국을 여행하고나서 로구교(盧溝橋)를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의 교량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교량의 난간에 새겨진 사자는 "아름다운 경관"이라고 했다.
(사진설명: 로구교 노면의 돌)
역사:
서기 1188년 금나라 세종제가 교량신축을 명령한 뒤 로구교는 3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교량의 양쪽 난간에 140개의 기둥을 세우고 기둥머리에 모양이 상이한 돌사자를 조각했다.
그 뒤 1444년에 교량을 재건했고 청(淸)나라때 홍수가 지면서 교량이 무너진 후 1698년 강희(康熙)제의 어명에 의해 교량을 재건하고 재건기념비를 교두에 세웠다.
1937년 7월 7일 로구교에서 일본군이 군사연습을 빌미로 중국군과 충돌을 일으키면서 로구교는 중국 항일전쟁의 시발지로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후 교면에 깔았던 아스팔트를 걷고 넓혔던 교면도 기존의 너비대로 복원시켰다. 또한 로구교의 옆에 교량을 신축하고 로구교는 교량으로서의 역할은 그만두고 문화재로만 남게 되었다.
(사진설명: 황혼의 돌사자)
주요명소:
길이 265m, 너비 8m, 높이 10m의 로구교에는11개의 교각을 세웠다. 강물의 상류로 향한 교각은 배머리 모양으로 뻗어 자연스럽게 물을 가르는 분수령으로 되고 분수령의 가장 앞쪽에는 삼각형의 쇠기둥을 부착했다.
따라서 물살이 아무리 급해도 뾰족한 쇠기둥에 의해 물살이 자연스럽게 교각을 피해 가면서 교각은 물살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밖에 교량과 교면, 돌과 돌사이를 모두 은괴로 고정시켰다.
교량의 양쪽 난간에는 281개의 돌기둥을 세웠다. 돌기둥의 하단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상단에 상이하고 생동한 모양의 돌사자를 조각했다.
이런 돌사자는 금(金)나라때부터 시작해 원(元)나라, 명(明)나라, 청나라에 걸쳐 조각되어 각자의 특색을 자랑한다. 돌기둥사이의 돌 난간에도 상서로운 무늬를 새겼다.
(사진설명: 생동한 돌사자의 모양)
민간에는 "로구교의 돌사자 수를 헤아릴수 없다"는 말이 있다. 명(明)나라때의 사서에도 로구교의 돌사자는 그 숫자를 알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많은 여행객들이 로구교의 돌사자를 헤아리기 위해 직접 시도했지만 모두 정확한 숫자를 찾지 못하고 아쉽게 물러섰다. 그 뒤 1962년 해당부문에서 모든 돌사자에 번호를 입력하면서 돌사자의 숫자가 도합 485개라는 결론을 보고나서야 그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런데 1979년의 조사에서 17개의 돌사자가 새롭게 발견되면서 사람들은 502개라는 숫자에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머리를 갸웃하게 되었다. 이제 언제 또 몇개가 더 나타날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로구교의 돌사자는 숫자도 숫자지만 모양도 아주 다양하다. 일부는 머리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는가 하면 일부는 온 정신을 두 눈에 집중시켜 교면을 주목하기도 하고 머리를 돌려 곁의 사자와 눈길을 주고 받거나 두 귀를 번쩍 세우고 물 흐르는 소리와 사람들의 말을 듣기도 한다.
로구교의 양쪽에는 화표가 세워져 있고 화표의 상단에 돌사자와 코끼리를 새겼다. 그밖에 교량의 양쪽에 돌비석도 하나씩 세웠다. 하나는 청나라 건륭(乾隆)제가 쓴 <로구효월(盧溝曉月)> 비석이다.
(사진설명: 로구교 부근의 항일전쟁기념관 일각)
키워드: 고건물, 역사인문
위치: 베이징 서남쪽 광안문(廣安門)밖에 위치, 309, 310, 339, 642, 715, 748, 971선 버스를 이용. 로구교 입장권 20위안, 완평성(宛平城) 등반 5위안, 항일전쟁 기념관 15위안.
관광안내:
로구교의 바로 옆에는 명(明)나라 말에 축조한 성 완평(宛平)이 있다. 베이징의 서쪽 관문격인 완평성에서 1937년 7월 7일 항일전쟁의 첫 전투가 벌어졌다.
명나라 풍의 성이 둘러선 성안에는 명나라풍의 가옥이 줄지어 있고 바닥에는 아스팔트가 아닌 청색의 벽돌이 깔려져 그 어디나 옛스럽다. 오늘날 성안에는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과 <항일전쟁 열사능>이 있으며 성위에는 로구교사변 기념관과 중국 옛 다리 전시관이 조성되어 있다.
그밖에 로구교의 달빛을 말하는 로구효월은 과거 베이징 8경의 하나였다. 로구교의 달빛은 오늘날도 변함없이 밝아 낮에는 완평성과 다양한 기념시설, 로구교의 돌사자를 구경하고 밤에는 달구경을 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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