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28 19:58:44 | cri |
(사진설명: 아름다운 계명역)
개관:
중요한 전략적 장소에 위치한 계명역(鷄鳴驛)은 명(明)나라때 축조한 역참건물로 중국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기능이 가장 구전하며 가장 완정하게 보존된 고대의 역참이다.
(사진설명: 계명역 성과 골목)
역사:
계명역은 원(元)나라때 축조되어 명나라때인 1420년에 증축되었다. 1913년 북양(北洋)정부가 별도로 우체국을 세운다고 선포하기전까지 계명역은 중국의 우체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계명역은 2001년에 중국 중점문화재 보호업체로 선정되고 2003년과 2005년에는 두번에 걸쳐 세계문화유산 기금에 의해 세계 100대 위험에 처한 유산명록에 등재되었다.
(사진설명: 계명역 성)
주요명소:
과거 역참은 한 나라의 생명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날 소식이나 공문을 전하는데 모두 말을 사용했는데 말의 체력과 달리는 거리가 제한되어 몇 백리에 한 번씩 말을 바꾸어야 했다.
따라서 고대 중국의 곳곳에 말을 준비시켰다가 바꾸어 주는 마참(馬站)이 세워지고 후에는 이 곳에 오고가는 관료와 상인들이 머물면서 마참이 역참으로 부상했다.
교통요충지에 세워지는 역참은 소식을 전하는 동시에 군사적으로는 보루의 역할도 한다. 계명역이 위치한 곳은 베이징에서 서쪽으로 오고가는 길목으로 산서(山西)와 신강(新疆), 나아가서 러시아로 오가는데 필히 이 곳을 경유한다.
(사진설명: 가까이에서 본 성)
네모난 계명역성은 성의 둘레가 1900m이고 성의 속에는 흙을 쌓고 겉에 벽돌을 쌓았다. 성의 하단은 너비가 10m, 상단 너비는 4m, 높이는 11m에 달한다.
성의 네 귀퉁이에는 단 4개를 쌓았고 성의 동쪽과 서쪽에 성문을 냈으며 성문위에 목조건물로 된 문루(門樓)를 지었다. 커다란 문을 통해 성안에 들어가 계단을 통해 성에 오르면 언제 지었는지 모를 누각이 나타난다.
성문에서 성안을 내려다 보면 15m 너비의 대로가 아무런 거침도 없이 곧게 뻗어 있다. 그 도로를 내려다 보노라면 과거 역졸들이 말을 타고 그 도로를 달려 공문을 전하던 경관이 떠오른다.
성루를 내려 성안에 들어서면 어제날로 돌아간 듯 착각하게 된다. 계명역은 성이 아니라 어느 시골같이 느껴진다. 담이 무너진 많은 뜰에 잡초가 자라고 가끔 비스듬히 기운 집들이 세월을 말해준다.
(사진설명: 문묘 입구)
다섯갈래의 길이 얼기설기한 성안은 12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그 공간 가운데의 역참구를 중심으로 다양한 건물들이 질서있게 산재해 있다. 성안에는 문묘(文廟)와 용왕묘(龍王廟), 재신묘(財神廟)를 비롯한 절 8채가 있는데 그 중 영녕사(永寧寺)가 가장 오래된 고건물로 지금까지 8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리고 태산묘(泰山廟)에는 명나라때의 벽화가 아직도 산뜻한 색채와 완정한 화면을 보존해 감탄을 자아낸다. 그밖에 계명역에는 과거 청(淸)나라의 태후 자희(慈禧)가 서쪽으로 도주할때 경유하면서 묵었던 건물유적도 남아 있다.
교통요충지에 위치한 계명역은 군사요새와 우체국 역할을 한 동시에 상인들의 집합지이기도 했다. 사서에 의하면 한 때 이 곳에는 가게가 6개, 기업이 9개가 있었고 여관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설명: 계명역 일각)
키워드:
고건물, 역사
위치와 교통:
계명역은 베이징(北京, Beijing)에서 서쪽으로 150km 떨어진 하북(河北, Hebei)성 회래(懷來, Huailai)현에 위치, 열차를 이용해 사성(沙城)에 이른 다음 계명역행 버스를 바꾸어 타면 된다.
설명:
계명역에는 여관이 없이 민박을 활용한다. 일행이 많으면 금방 소문이 나서 촌민들이 너도 나도 손님을 끌지만 홀로일 경우에는 스스로 돌아다니며 찾을수밖에 없다.
입장권은 50위안이고 10명 이상일 경우에는 20위안이다. 계명산위에 위치한 절에서도 숙박이 가능하다. 단, 입산하는데 별도로 30위안을 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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