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0 10:27:00 | cri |
(사진설명: 아름다운 낙산대불)
개관:
세계 최대의 불상 낙산대불(樂山大佛)은 암벽을 통채로 잘라내서 새긴 마애석불로 균형적인 몸매에 숙연한 표정을 한 거대한 석상이다. 강가의 산에 조성된 대불은 그야말로 "산이 불이고 불이 산이다"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낙산대불은 높이가 71m, 머리 너비 10m, 귀 길이 7m, 코 길이 5,6m, 눈썹 길이 6.6m, 너깨 너비 28m, 손가락 길이 8.3m에 달하고 너비 8.5m에 달하는 발등에는 백여명이 올라설수 있는 규모를 자랑한다.
(사진설명: 강물과 대불)
역사:
릉운산(凌雲山) 기슭에서 민강(岷江)으로 합류되는 청의강(靑衣江)과 대도하(大渡河)강은 과거에 항상 홍수가 범람해 많은 배들이 이 곳에 이르면 침몰되어 피해가 심했다고 한다.
서기 713년의 당(唐)나라때 릉운사(凌雲寺) 스님 해통선사(海通禪師)가 세 갈래 강물의 홍수를 막기 위해 인력과 재력을 모아 물가의 산에 불상을 조각하기로 했다.
대불의 어깨까지 조각했을때 해통스님이 별세하게 되어 공사가 중단상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해통스님의 제자가 공사를 계속했고 엄청난 공사비로 인해 현지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았다.
(사진설명: 가까이에서 본 대불)
대불이 무릎까지 조각되었을 때 자금지원을 하던 정부의 관리가 승진하는 바람에 공사는 다시 중단되었다가 새로운 지방관리가 취임하면서 다시 자금을 지원해 대불은 공사를 계속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90년이 지난 803년에 끝끝내 대불이 축조되어 산이 거대한 불상으로 탈바꿈된 낙산대불은 현재까지 1200여년동안 강가에 솟아 평안을 지키고 있다.
세계 최대의 대불이라는 월계관을 쓴 낙산대불은 1996년 12월 6일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으로 선정되어 <세계유산명록>에 등재되었다.
(사진설명: 산과 대불)
주요명소:
뒤에 릉운산을 업고 민강과 대도하, 청의강을 밟고 선 대불은 미륵상이라 이름한다. 대불은 몸매가 고르고 비례가 균형적일뿐만 아니라 배수시설을 교묘하게 두어서 천여년의 오랜 세월동안 변함없이 한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산과 키를 나란히 하는 대불은 강물을 밟고 앉아서 두 손을 무릎위에 단정하게 올려 놓고 있다. 대불의 양쪽 절벽에는 16m 높이의 호법천왕이 조각되어 1불 2천왕의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구곡잔도)
절벽에는 수백여개의 불단이 조성되고 천여기의 불상이 조각되어 방대한 규모의 불교예술의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대불의 왼쪽에는 500m 길이의 릉운잔도가 있고 오른쪽에는 당(唐)나라때 대불과 함께 조성한 예불의 통로 구곡(九曲)잔도가 있다.
암벽을 따라 꼬불꼬불 위로 올라가면서 조성된 구곡잔도는 대불과 같은 시기에 축조되었다. 잔도의 상단에는 회랑을 거느린 정자가 지어지고 잔도의 암벽에는 석각물이 즐비해 잔도는 석각예술의 보고이기도 하다.
가장 넓은 곳이 1.5m미만이고 가장 좁은 곳은 0.6m인 구곡잔도는 도합 217개 계단으로 조성되어 정상에서 구곡잔도를 따라 물가로 내려가면 대불의 발등에 이르게 된다.
(사진설명: 릉운잔도의 일각)
1984년에 축조된 릉운잔도는 길이가 500m에 달하고 북쪽으로 대불과 연결되며 남쪽으로 벽진루(碧津樓)와 연결되어 있다. 대불의 오른쪽에 위치한 릉운잔도는 대불의 왼쪽에 조성된 구곡잔도와 함께 대불을 가까이할수 있는 좋은 통로이기도 하다.
대불이 조각된 후 당나라때 일명 대불각(大佛閣)이라는 이름의 누각을 지어 대불을 건물안에 공양하기도 했으며 송(宋)나라때에는 "릉운각(陵雲閣)"이라는 이름으로 건물을 개축하고 원(元)나라와 명(明)에도 대불 보호용 건물을 지었으나 세월속으로 사라져 오늘날은 건물의 모습을 찾아 볼수 없다.
위에서 내려다 보면 대불의 머리에 1051개에 달하는 소라모양의 상투가 줄지어 장관이다. 이런 상투는 바위를 조각해서 새긴 것이나 대불의 귀와 코는 나무로 조각한 것이다.
(사진설명: 대불의 상투머리)
낙산대불은 교묘한 배수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대불의 두 귀와 뒷머리 부분에 쉽게 보이지 않는 배수시설을 만들어 오랜 세월동안의 비바람으로부터 대불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대불의 4층 상투와 9층 상투, 18층 상투에도 가로 배수구를 조성했고 옷 깃사이에도 다양하게 배수구를 두었으며 여러 갈래의 배수구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완벽한 배수효과를 보인다.
당나라때에는 미래불 미륵불(彌勒佛)이 성행해 낙산대불도 미륵불이다. 불교 경전에 의하면 미륵불이 나타나면 세상이 태평해진다고 한다. 무측천(武則天)은 자신이 미륵불이 태어난 것이라고 증명하고 남존여비의 고대 중국에서 최초의 여성황제로 등극했다.
(사진설명: 옆에서 본 대불)
그로부터 당왕조시기 사람들은 더더욱 미륵불을 숭상하게 되었다. 또한 미륵불은 빛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미래불이기 때문에 홍수의 범람을 예방하기 위한 취지와도 일치되어 낙산대불을 미륵불로 정했다고 한다.
강 건너에서 대불이 위치한 산을 바라보면 마치 거대한 불이 누워있는 듯 오우산(烏尤山)과 릉운산, 동쪽의 절벽이 하나로 연결되어 불의 머리와 몸, 발모양으로 보인다.
1300m의 수불은 강물을 베개삼아 누워 있는데 오우산위에 지어진 정자와 나무들이 불의 눈썹과 이마, 코, 입술을 형상적으로 보여주고 릉운산은 가슴, 영보봉(靈寶峰)은 다리, 취일봉(就日峰)은 종아리와 흡사하다.
(사진설명: 릉운사 일각)
대불의 뒷쪽, 릉운산 정상에는 릉운사가 자리한다. 천왕전과 대웅전, 장경루로 구성된 릉운사는 세 겹으로 된 사합원식 건물에 빨간 담과 푸른 기와를 자랑한다.
키 높은 고목이 둘러선 천왕전의 마당에는 명청(明淸) 두 조대에 걸쳐 사원을 개축한 과정을 적은 비석이 세워져 있고 건물 내부에는 미륵불 좌상이 공양되어 있다.
천왕전 뒤의 대웅전은 스님들이 법사를 진행하는 장소로 석가모니불이 공양되어 있는데 모양이 우아하고 표정이 장엄하다. 대웅전 뒤의 장경루는 1930년에 신축한 건물로써 구도와 외관으로부터 현대 건물의 흔적이 엿보인다.
(사진설명: 산위의 절)
릉운탑이라고도 하는 영보탑은 릉운사 뒤의 영보봉 정상에 우뚝 솟아 있다. 당나라때 축조한 릉운탑은 사각형으로 된 벽돌탑으로 높이가 38m, 도합 13층으로 되어 있다.
탑의 내부에는 정상까지 등반이 가능한 계단이 꼬불꼬불하게 조성되고 층마다 창을 두어 채광도 하고 전망대로도 사용하게 했다. 영보탑 정상에 올라서면 남쪽으로는 장경루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푸른 강물이 펼쳐져 장관이며 북쪽으로는 낙산시 전경이 한 눈에 안겨온다.
대불이 해상안전을 위한 축조물이라면 영보탑은 세 갈래의 강물이 합류하는 장소를 보여주는 등대역할을 하면서 이 곳이 물살이 급한 지역임으로 주의를 기한다는 메시지를 뱃사공들에게 전한다.
(사진설명: 대불의 발가락)
키워드:
역사문화, 종교
위치와 교통:
낙산대불은 사천성 낙산(樂山, Leshan)시, 성도(成都, Chengdu)에서 북쪽으로 160km 거리에 위치, 성도 신남문(新南門) 터미널, 북문(北門), 서문(西門) 버스 터미널에서 낙산행 버스를 이용한다.
낙산에서 강가에 위치한 낙산대불을 보는데는 수로를 이용해야 된다. 낙산항에 하루에도 수십편씩 낙산대불을 오가는 선박이 있음으로 편리하게 낙산시와 대불을 오갈수 있다.
계절:
봄과 가을
설명:
낙산대불과 가까운 청의강 왼쪽 기슭의 암벽에는 200여기의 석굴에 2,400여기의 불상이 조성되어 이름한 "천불애(千佛崖)"가 장관이다. 우아한 모양과 정교한 석각이 즐비해 낙산대불을 본 다음 천불애까지 보면 불교예술을 더 깊이 있게 볼수 있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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