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03 17:54:00 | cri |
(사진설명: 아름다운 검천고성)
개관:
검천고성(劍川古城)은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주요한 역참이고 중원(中原)과 남조국(南詔國), 토번 사이의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따라서 토번의 티베트와 중원의 한(漢)족 문화가 만나는 검천고성은 오늘날도 다민족 문화가 어우러지고 명(明)나라 때의 고건물과 도시 구도를 잘 유지하고 있다.
차마고도 중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장터 사계고진(沙溪古鎭)에는 극장과 여인숙, 절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티베트와 남아시아를 연결하는 지난날 장터의 완벽한 생활시설을 잘 보여준다.
2001년 사계고진은 세계유적기금에 의해 <세계유적2002년 보호 명단>에 입선되었고 그 서열은 만리장성에 비해서도 앞 자리를 차지해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사계고진)
역사:
검천고성은 원(元)나라 때인 1341년-1370년사이에 조성되어 6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웅장하던 기존의 성벽은 1952년에 철거되고 현재는 해자와 다리만 남아 있고 성터, 거리와 골목이 보존되어 옛스러움을 자랑한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사계고진의 조성은 지금으로부터 2400여년전의 춘추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400여년전에 사계를 중심으로 청동제련기지가 조성되면서 사계고진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당송(唐宋)시기 사계는 남조국과 대리국을 연결하는 차마고도의 거점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했고 남조국과 대리국에 영향을 준 불교문화도 사계에서 꽃을 피웠다.
(사진설명: 사계고진의 석교)
주요명소:
경치가 수려하고 명승고적이 많으며 문화가 풍부한 검천은 운남 청동문화의 발원지이다. 검천에는 돌사자가 많은 사자산과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삼강병류(三江幷流)지역에 자리한 노군산(老君山) 등 명소가 많다.
목각물로 유명한 검천은 "중국 목각 예술의 고장'으로도 인정된다. 검천의 경치가 빼어나지만 그래도 검천고성의 문화적 가치는 지금까지 완벽하게 보전된 명나라 때의 도시구도와 거리와 골목, 가옥들에 있다.
검천에는 완벽하게 보존된 21개의 정원을 망라해 명나라 때의 건물 40여채, 청(淸)나라 때의 건물 146채가 보존되고 나머지는 1920년대부터 1960년대사이에 축조한 건물들이다.
검천의 가옥 중90%를 넘는 고건물은 아담한 규모에 엄밀한 구도를 자랑한다. 이런 가옥들은 명나라 초반과 중반, 후반, 청나라, 근대의 서로 다른 건물 특색, 건축물의 발전과 변화를 한 눈에 보여준다.
어느 시기에 축조한 건물이든지 같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바닥에 청석을 깔고 마당에 자갈을 폈으며 정원에 꽃 나무를 심어 상큼한 운치를 자랑한다는 점이다.
(사진설명: 사계고진의 일각)
고성의 남쪽 성문에서 북쪽 성문까지 이르는 거리의 양쪽의 가옥들은 거리를 향한 쪽에 가게를 두고 뒤에 가택과 정원을 두었다. 거리에는 커다란 청석을 세 줄로 깔았는데 사대부의 등급관념에 의해 과거에는 가운데 청석길로는 노인과 관리, 선비들만 걸을 수 있었다고 한다.
검천의 주요 거리는 넓고 곧으며 주요 거리 중심으로 뻗은 골목은 꾸불꾸불하게 조성해 도시에 아늑함을 가미했다. 거의 모든 골목에는 물길을 조성해 생활에 편리를 제공한 동시에 방화역할도 했다.
검천은 한족의 문화와 티베트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바이족의 문화를 버리지 않고 계속 보존해 다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고성에는 오늘날도 바이족의 가옥이 많이 남아 있고 바이족의 풍속습관도 그대로 유지된다.
검천현 남부에 위치한 사계고진에는 바이족과 한족, 이족, 나시족 등 다양한 민족들이 살면서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형성한다. 명승고적이 많은 사계고진에는 고대의 석각이 있으며 고대 무덤에서는 기원전 500년 때의 춘추전국(春秋戰國) 시기 청동기 658점이 출토되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사계고진의 장터인 사등가(寺登街)는 차마고도의 한 구간이고 남북향의 거리이다. 이 거리 양쪽의 건물은 모두 거리를 향한 쪽이 가게이고 뒤에 사택과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고대 중국의 대외교류의 길 중 하나였고 말의 잔등에 차를 싣고 다니며 교역을 했다고 해서 이름한 차마고도는 사천(四川)과 운남, 티베트를 거쳐 인도, 동남아시아로 통했고 운남에서는 대리와 려강(麗江), 샹그릴라 등 지를 경유, 대리에서는 검천과 사계고진을 경유했다.
(사진설명: 차마고도의 한 구간)
대리와 려강사이에 위치하고 남조국과 대리국시기에 불교의 영향을 받으며 석굴이 조성된 사계는 과거 차마고도의 무역의 중심지, 남조국과 대리국의 불교문화의 중심지였다.
당송 때부터 사계를 중심으로 염정(鹽井)이 개발되면서 사계고진은 더 빠른 발전을 거두었고 일약 차마고도의 시장, 차마고도 소금의 도시로 부상했다.
사등가와 멀지 않은 사방가(四方街)의 건물은 타지의 행상을 맞이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주변의 다른 골목에는 사계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엄밀하면서도 합리적이고 질서정연한 구도는 고대 바이족인들의 지혜를 그대로 보여준다.
흑혜강(黑惠江)의 석교 옥진교(玉津橋)를 지나 차마고도를 따라 100m 정도 걸으면 흙으로 쌓아 올린 문이 나타나고 그 문에 들어서면 바로 사계고진의 시장이다.
좁고 긴 길의 양쪽에는 예스러운 가게들이 줄지어 짙은 상가의 분위기를 풍기며 행상과 말들이 붐비던 지난날 고도의 번창함을 소리없이 보여주는 듯 하다.
좁고 긴 골목의 끝에 위치한 또 다른 거리 사방가의 중심에는 키 높은 회화나무 두 그루가 자라고 극장과 절이 마주하며 그 사이로 온갖 가게들이 즐비하다.
(사진설명: 사계고진의 극장건물)
고대 극장건물 고희대(古戱台)는 사방가에서 가장 특색이 있는 고건물이다. 3층 높이의 건물은 앞부분이 극장으로 되어 있고 뒤에는 키 높은 누각이 솟아 정교한 구조와 조화를 자랑한다.
명절이 되면 바이족 주민들이 새 옷을 입고 나와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극장건물의 맞은 쪽에 있는 절 흥교사(興敎寺)에서는 불교신도들이 너도 나도 향을 피우며 복을 기원한다.
사계고진에서 가장 대표적인 민가는 구양고원(毆陽古院)이다. 청나라 후반에 조성된 구양고원은 차마고도를 오가며 부자가 된 구양씨의 사택이다.
부지 1,300제곱미터의 이 저택의 문과 창에는 곳곳에 정교한 목각이 새겨져 있다. 돌로 쌓은 정문은 아치형으로 되어 있고 문 앞에는 웅장한 돌 사자가 세워져 있다.
이문(二門)은 목조이고 문은 서로 다른 글자체의 서예작품으로 장식했다. 2층 건물로 된 본채는 중정을 두었고 중정에 우물을 팠으며 건물의 2층에 둔 정교한 불단이 명물이다.
본채의 뒤에는 꽃나무가 화사하고 고목이 우거진 가든이 조성되어 있으며 가든의 주변에는 여인숙으로 사용했던 객실들이 줄지어 있다. 오늘날 사계고진에서는 구양고원을 망라해 많은 가게들이 각자 기존의 기능을 복원해 차마고도의 번창하던 어제를 재현하고 있다.
사계고진은 오늘날까지도 천여 년 전에 시작된 바이족 음악 동경고악(洞經古樂)을 전해온다. 긴 세월 동안 전해지면서 이 음악은 유가의 음악과 도교음악, 불교음악, 민간음악을 한 몸이 모으고 심지어 황궁의 음악요소까지 가미해 장엄하면서도 우아하고 활력적이다.
어둠의 장막이 내리고 집집마다 불을 밝히면 50세 이상의 현지인들이 온갖 악기를 가지고 바이족의 고악을 연주하는데 곡목이 100여곡에 달해 풍부하다.
발전과 번창, 몰락의 과정을 거친 사계고진의 석교와 옛 길, 옛 거리는 소리 없이 지난날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해서 사계고전의 옛 길을 걷고 옛 건물을 마주하면 천여 년 전의 말방울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고 차마고도를 오가던 사람들이 이 곳에서 물건을 팔고 사고 술을 마시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간다.
(사진설명: 사계고진의 골목)
키워드:
풍경, 민가
위치와 교통:
검천고성과 사계고진은 운남(雲南, Yunnan)성 대리(大理, Dali) 바이족 자치주 검천(劍川, Jianchuan)진에 위치해 있다. 검천은 곤명(昆明, Kunming)에서 499km, 대리에서 126km 떨어져 있다.
다양한 교통편으로 대리에 이른 다음 대리의 각 버스 터미널에서 검천행 버스를 이용한다. 대리에서 검천까지 소요 시간은 3시간, 요금은 15위안이다.
(사진설명: 사계고진의 관광객)
계절:
7-8월
설명:
검천고성과 사계고진을 보는데 가장 좋기는 사계에 숙박하는 것이다. 현재 사계고진에 고건물을 이용한 민박이 많아서 가격도 저렴하고 가까운 거리에서 차마고도의 과거를 피부로 느낄 수도 있어서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주변에 카페나 맛 집도 많아서 불편이 없고 매일 저녁 10시만 되면 모든 가게가 영업을 마감해 온 도시가 고요하기 그지없어서 흘러간 역사 속 깊이 스며들 듯 잠을 잘 수도 있다.
단, 사계에서는 밤 10시 뒤에는 식사나 술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인숙이든 민박이든 모든 손님도 반드시 매일 밤 10시전에 돌아와야 하며 방에서 큰 소리로 말해서도 안 된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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