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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각: 남국의 북시티
2018-09-05 15:22:08 cri

개관:

44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천일각(天一閣)은 현재까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장서루(藏書樓)로 "남쪽 나라의 북시티"라 불린다. 천일각은 아시아에서 가장 유구한 도서관이고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3대 가문 도서관이기도 하다.

장서문화를 특징으로 하고 사회와 역사, 예술을 한 몸에 모은 복합 박물관인 천일각은 환경이 우아하고 정원이 아름다우며 고건물이 소박하고 지방특색이 다분하다.

역사:

천일각은 명(明)나라 때인 1561년부터 1566년사이에 당시의 병부우시랑(兵部右侍郞)을 지낸 범흠에 의해 장서루로 신축됐다. 1585년 범흠이 별세하면서 임종 전에 다른 재산의 상속을 포기한 장남에게 장서루와 소장한 7만권의 장서를 상속시키면서 "자자손손 장서를 나누지 않고 장서를 천일각 외부로 반출하지 못한다"는 가훈을 남겼다.

천일각의 신축으로부터 1949년까지 이 가훈은 줄곧 이어져 내려 오고 역대로 보충되어 천일각의 장서는 몇 백 년 동안 천일각에 완정하게 보존되었다.

1655년 범흠의 증손이 천일각의 주변에 정원을 조성했고 1676년 외부인으로는 처음으로 천일각에 들어선 그 때의 선비 황종희(黃宗羲)가 <천일각 장서기>를 편찬했다.

1829년 범흠의 자손들이 벽돌과 기와, 계단을 보수하고 가산을 쌓았으며 연못을 조성하고 15가지 조항의 천일각 관리제도를 제정해 천일각의 장서가 절대로 외부로 반출되지 못하도록 했다.

1861년부터 1945년까지의 사이에 전란을 겪으면서 천일각의 장서가 천일각을 나와 도처로 피난을 다니다가 1949년 중국 건국 후 천일각에 복귀되었으며 범흠의 자손들이 공직자가 되어 계속 천일각을 관리했다.

1982년 중국 중점문화재 보호업체가 된 천일각의 장서가 다양한 방법으로 증가되어 30만권이 되었다. 천일각은 2003년 중국 국립 4A급 관광지가 되었다.

주요명소:

기록에 의하면 천일각은 명(明)나라 때의 명부우시랑(兵部右侍郞) 범흠(范欽)이 신축한 것이다. 평생 고대의 서적을 소장하기 좋아한 범흠은 7만 여권의 고대 저서를 소장했는데 그 중 가장 귀중한 것은 지방지(地方志)와 등과록(登科錄)이다.

청(淸)나라 때 범흠의 증손자가 연못을 파고 가산을 쌓았으며 다리를 놓고 정자를 지어 장서루의 주변에 정원을 조성했다. 청나라 때인 1772년 청나라가 <四庫全書>를 편찬하기 시작하면서 범흠의 제8대 손이 638종의 장서를 청 조정에 헌납했다.

그에 감동을 받은 건륭(乾隆)황제가 어명을 내려 천일각의 건물과 서가를 측량하고 그에 근거해 "남북 7각(閣)"을 짓고 편찬한 7세트의 <사고전서>를 소장했으며 그로부터 천일각은 내외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천일각의 명칭은 <역경주(易經注)>의 "천일생수(天一生水)"에서 기원한다. 장서루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불이고 물이 불을 끈다고 해서 누각의 이름을 천일각이라 지었다.

맞배지붕을 한 천일각은 너비와 깊이가 모두 방 6칸 규모이고 건물과 건물은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건물의 앞에 "천일지(天一池)"를 조성해 방화용수를 저장한다.

천일각의 2층은 큰 방 하나로 되어 있고 1층은 방 6칸으로 나뉘어져 있다. 장서루의 주변에는 외부의 호수와 연결되어 수원이 충분한 방화용 연못 천일지를 비롯해 방화 시설들이 다양하게 되어 있고 생활구역과 별도로 독립된 공간을 유지한다.

역사상 장서가들은 적지 않지만 백 년 이상 유지되는 장서는 많지 않다. 천일각이 다른 장서루와 달리 4 백 여년을 유지하고 있는 원인은 장서에 대한 엄격한 관리와 직결된다.

천일각을 만든 범흠은 "술을 마시면 천일각에 들어 서지 못한다" "자자손손 장서를 나누지 못하고 장서를 천일각 외부로 반출하지 못한다"는 등 관리제도를 세워 엄격하게 시행했다.

그 밖에도 범씨 성 외의 다른 성씨를 가진 자는 천일각에 들어서지 못하고 벗이나 지인을 천일각에 들이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범씨가문이라 해도 천일각의 무단 출입을 금지할 정도였다.

또한 방화와 방수, 방충, 도난 방지에 관한 자세한 대응책도 마련했기 때문에 천일각의 장서는 오늘날까지 4백 여 년을 이어오고 있다. 오늘날 천일각은 녕파 장서문화의 모범이 되어 "녕파의 서재"라 불린다.

천일각의 장서는 "명나라 장서"와 "청나라 장서", "민국시기의 장서", "기념 장서" 등 네 부분으로 분류한다. 전시홀의 격자 창가에는 예스러움을 자랑하는 검은 책상들이 놓여져 고서와 조화를 이루며 장서루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몇 백 년 전의 먼 옛날로 이끈다.

키워드:

고건물, 역사인문

위치와 교통:

천일각은 절강(浙江, Zhejiang)성 녕파(寧波, Ningbo)시 천일가(天一街)에 위치, 다양한 교통편으로 녕파에 도착한 다음 512선 버스와 9호선, 371호선, 504호선, 26호선 등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계절:

1년 4계절

설명:

천일각을 세운 범흠은 1505년에 출생해 1585년에 별세했다. 절강출신인 범흠은 책을 유난히 좋아해 관리로 있으면서 많은 고서들을 모았고 은퇴 후에 고향에 돌아와 7만권의 장서를 보존할 장서루를 지었다.

천일각은 햇빛이 장서에 닿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강남의 습도가 장서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건물의 외벽과 가까운 곳에는 장서를 두지 않았다.

범흠이 80세를 일기로 별세할 때 천일각의 장서는 7만 여권에 달했고 그 뒤에 여러 가지 원인으로 장서가 분실되어 1940년대에 이르러서는 13,000여권밖에 남지 않았다.

천일각이 중국 중점문화재 보호업체가 된 후 분실된 천일각의 장서를 되찾고 다른 장서가들이 책을 헌납하면서 1995년말까지 천일각의 고서 장서가 30만권에 이르렀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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