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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현: 徽商의 발원지
2018-09-28 17:45:15 cri

(사진설명: 아름다운 흡현)

개관:

패방(牌坊)의 고장 흡현(歙縣)은 눈부신 문화를 자랑하는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다. 흡현은 고대의 패방과 사당, 가옥 등 "고건물의 삼절(三絶)", 그리고 고대의 다리와 절, 탑 등을 망라해 570곳의 지상 문화재를 거느린다.

중국의 유명한 역사문화 도시인 흡현은 휘주(徽州) 문화와 베이징 오페라의 발원지이고 안휘 상인 휘상과 안휘요리의 주요한 발원지이며 문방사보 중 안휘의 먹과 벼루도 흡현에서 난다.

(사진설명: 흡현의 건물)

역사:

흡현은 기원전 221년의 진(秦)나라 때 흡현이라 이름했으며 수(隨)나라 때 흡주(歙州)라 하고 북송(北宋) 때인 1121년에 휘주(徽州)라 개명해 원(元)나라와 명(明)나라, 청(淸)나라 때까지 사용했다.

흡현은 수나라 때부터 1300여 년 동안 이 지역 행정의 소재지가 되었으며 명나라와 청나라 후에 휘상이 부상하면서 한 때 중국에서 중요한 경제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사진설명: 흡현의 패방)

주요명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산악의 도시 흡현은 중국의 문화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휘문화(徽文化)의 발상지로 명나라와 청나라 시기의 가옥과 패방, 사당을 많이 보존한다.

흡현에서 두산가(斗山街)는 고대의 가옥과 거리, 조각, 우물, 패방이 집중된 명소이다. 청석을 깐 좁고 긴 길 위에 서서 양쪽의 예스러운 축조물들을 마주하면 마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듯한 느낌이다.

허국석방(許國石坊)은 명나라 때인 1584년에 축조한 패방(牌坊)이다. 잿빛의 바위로 축조한 허국석방은 여덟개의 기둥에 받들려 웅장하며 단면이 입 구(口)자 모양이다.

(사진설명: 흡현의 고건물)

목조건물을 모방한 허국석방에는 우아한 무늬의 채색 조각이 즐비하고 구조가 안정적이며 모양이 풍성함을 자랑한다. 석조 패방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허국석방은 중국의 석조 패방 건축사상 유일무이한 위상을 차지한다.

허촌(許村) 고건물의 군락은 흡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건물의 명소이다. 당나라 후반에 허(許)씨의 가문이 이 곳에 터를 잡고 큰 가문이 되면서 마을 이름도 허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허촌은 특히 명나라와 청나라 때 큰 발전을 이루어 마을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원나라와 명나라, 청나라, 중화민국 때의 고건물 100여 채를 보존한다.

(사진설명: 흡현의 허촌)

강물을 마주하고 뒤에 산을 둔 허촌은 경치가 아름답고 중국의 풍수이론 중 "공생, 공존, 공영, 공락"의 4대 이념을 잘 보여준다. 마을의 건물과 사당은 나무를 중심으로 했고 외벽은 벽돌로 쌓았다.

현재 허촌에는 석조 패방 6개와 벽돌 패방 3개, 누각 1개, 랑교 1개에 많은 사당과 고건물이 보존되어 있다. 이런 축조물의 배치와 다양한 조각, 액자 등은 당시의 경제상황과 사회상, 풍속 등을 직관적으로 잘 보여준다.

고양랑교(高陽廊橋)는 원나라 때 허촌에 살던 허우산(許友山)에 의해 축조되었다. 최초에는 두 개의 교각을 둔 목조다리였으나 명나라 때 석조 홍예교로 개축했다.

(사진설명: 랑교에서 본 경치)

21m 길이에 5.3m 너비의 다리 위에 7칸의 건물을 짓고 지붕에는 청색의 작은 기와를 얹었으며 다리의 양쪽에 행인들이 쉬어갈 수 있는 의자를 마련했다.

1568년 명나라 때 축조한 석조 패방 쌍수승은방(雙壽承恩坊)은 안휘 상인 허세(許世)가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내외가 모두 100세를 넘으면서 조정으로부터 상을 받고 이 패방을 축조했다.

기둥 4개에 3칸, 5층으로 된 이 패방은 너비가 7.9m, 높이 9.5m이며 기둥과 처마는 화강암으로 하고 다른 자재는 사암을 선택했으며 석방 곳곳에 정교한 석각이 즐비하다.

(사진설명: 허촌의 정자)

허촌에 사는 허백(許伯)의 사당건물인 대방백사(大邦伯祠)는 명나라 때 신축되었다. 뜰 3개와 건물 5칸을 거느린 대방백사는 문루(門樓)와 진향당(進享堂), 침실 등 건물과 중정, 앞 뜰, 가운데 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명나라 때인 1557년에 세운 정자 대관정(大觀亭)은 팔각형의 정자이며 하단의 한 변의 길이가 3.5m에 달한다. 11.75m높이의 정자에는 세 겹의 지붕을 덮었고 그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지붕은 정자와 같이 팔각형이고 제일 위의 세 번째 지붕은 사각형으로 되어 풍부함을 연출한다.

대관정은 남쪽과 북쪽에 문을 세우고 문과 정자 사이에는 통로를 조성해 단조로움을 피했다. 정자의 밖에서 정자를 바라면 팔각의 귀퉁이가 건듯 들린 지붕에 풍경이 달려 있어 아름다운 모양을 자랑하며 일명 팔각정(八角亭)이라고도 부른다.

(사진설명: 흡현의 건물)

1191년부터 1194년까지 사이에 신축한 과거의 관공서 격인 휘주부아(徽州府衙)는 화재로 무너져 명나라 초반에 개축했으며 그 뒤에 청나라 때에도 수차 보수했다.

가장 최근에는 2009년에 명나라 때의 건축규칙에 따라 "기존의 공법과 기존의 자재, 기존의 규칙"을 적용해 개축했다. 남초루(南譙樓)와 의문(儀文), 공당(公堂), 이당(二堂) 등 건물을 거느린 휘주부아는 큰 규모로 웅장함을 자랑한다.

안휘 건물의 특색을 잘 살리는 태백루(太白樓)는 원래 술집이었으나 당나라 때 시인 이백(李白)이 이 곳에 와서 술을 마신 후 태백루라 개명했다. 태백루는 당나라 초반에 신축됐고 현재의 건물은 명나라 때 개축한 것이다.

2층 건물에 2개의 뜰을 거느린 태백루는 면적이 200제곱 미터에 달한다. 가운데 뜰을 둘러싸고 높고 낮은 건물들이 둘러 싸서 입체감이 뚜렷하다. 현재 태백루는 이백 기념당으로 사용되어 이백에 관련된 도서와 그림, 벼루, 병풍 등 천 점에 가까운 문화재를 전시한다.

(사진설명: 고건물의 내부)

1755년부터 1759년사이에 신축된 죽산서원(竹山書院)은 청나라 문인들이 강의를 하던 곳이다. 청나라 때 건물이 잘 보존된 죽산서원은 안휘성에서도 가장 잘 보존된 서원이다.

명청시기 안휘의 상인집단인 휘상이 번성일로를 달렸으며 따라서 안휘의 교육도 아주 발달되어 그 때 휘주(徽州), 오늘날의 안휘에는 도합 55개의 서원이 건설되었다.

안휘의 정원이 최고의 번성을 달리던 때에 건설된 죽산서원은 교실과 정원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뜰의 사면에 세워진 여러 개의 교실은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흡현)

교실의 북쪽에 조성된 정원은 송나라와 명나라의 심플하면서도 탁 트이고 우아한 특징을 잘 살린다. 정원의 건물은 안휘의 고건물 형식을 도입해 벽돌조각과 목조, 석각이 화려하다.

14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홍수 방지 방죽 어량패(漁梁坝)는 안휘의 하천인 신안강(新安江)에서 역사가 가장 유구하고 규모가 가장 큰 고대의 수리시설이다.

길이 143m, 하단의 너비 27m, 상단의 너비 6m, 높이 5m의 어량패는 커다란 돌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교묘하게 쌓아 둑을 조성해 천 여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사진설명: 흡현의 물길과 마을)

어량패에 올라서면 아름다운 경치가 한 눈에 안겨온다. 방죽의 상류에는 맑은 물이 설레고 물 속에서는 물고기가 자유로우며 물위에는 쪽배가 고요하게 떠다닌다.

방죽의 하류에는 강바닥에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그 위로 쏟아지는 강물이 구슬 같은 물보라를 날린다. 어량패의 서쪽에는 숲이 울창한 자양산(紫陽山)이 솟아 있고 그 곁에 채색의 무지개를 방불케 하는 자양교(紫陽橋)가 조화를 이룬다.

140m 길이에 14m 높이, 10m 너비의 자양교는 흡현의 3대 다리 중 가장 높고 가장 넓은 다리이다. 자양교의 상류에 휘상들이 사용하던 나루터가 있어서 화물선의 통행을 위해 다리를 높게 축조했다.

(사진설명: 흡현의 가을)

키워드:

고건물, 역사인문

위치와 교통:

흡현은 안휘(安徽, Anhui)성 황산(黃山, Huangshan)시 동남쪽, 황산에서 74km거리에 위치해 있다. 다양한 교통편으로 안휘 성도 합비(合肥, Hefei)에 도착한 후 흡현행 버스를 이용한다.

혹은 흡현을 경유하는 철도가 적지 않음으로 열차를 이용해 흡현에 직접 도착하는 방법도 있고 황산시에 도착해 황산을 본 다음 황산에서 흡현행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사진설명: 흡현의 일각)

계절:

봄과 가을

설명:

고대의 안휘의 상인 집단을 말하는 휘상(徽商)은 산서(山西)의 진상(晉商), 조주(潮州)의 조상(潮商)과 함께 3대 중국의 상인집단으로 인정된다. 휘상은 송나라 때 태동해 명나라와 청나라 때 번성했으며 청나라 후반에 쇠퇴하였다.

휘상은 산악지대에 살던 안휘의 촌민들이 경작지가 적은 관계로 생계를 위해 타지로 다니면서 장사를 하면서 형성된 상인집단이다. 그들은 부를 창출한 다음 다시 고향에 돌아와 고향을 건설하고 교육을 발전시켰다.

산악지대에 위치한 흡현은 중국 최고의 명산 황산(黃山)과 가깝고 흡현의 산은 황산의 지맥이다. 따라서 황산과 흡현을 한 코스로 선정해서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황산에서 기이한 소나무와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운해, 빼어난 바위, 황홀한 일출 등 자연경관을 본 다음 산중에 자리잡은 흡현으로 이동해 예스러운 가옥과 패방, 정자, 누각 등 고건물 속에서 어제로 돌아간 듯 하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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