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2 17:34:40 | cri |
(사진설명: 아름다운 적계)
개관:
휘상(徽商)의 고장 적계(績溪)는 안휘의 요리 휘채(徽菜)와 안휘의 먹 휘묵(徽墨), 안휘의 연극 휘극(徽劇)의 발원지로 "안휘요리의 고장", "안휘 먹의 고장" 등 미명을 가진다.
과거에 용천(龍川)이라 부른 갱구(坑口)촌은 사면에 산이 둘러선 아담한 분지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 앞에 높은 산이 막아서고 맑은 시냇물이 마을을 흘러 지나는 갱구촌은 모양이 선박을 방불케 한다.
명인들이 많이 나고 기후가 좋은 상장(上庄)촌은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며 번화함으로 "미니 상해(上海)"라고도 불리고 풍부한 문화로 "문화의 고장"이라고 불린다.
천 년의 고대 마을 진촌(陣村)은 물가에 지어져 마을의 골목과 거리는 모두 물길을 따라 조성되어 수려함을 자랑하고 안휘의 지역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고건물들이 많이 보존되어 자연과 인문의 조화를 이룬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갱구촌)
역사:
적계는 기원전의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에 오(吳)나라에 속했고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부터 나라가 아닌 중앙정부의 관할을 받는 지방정부에 속해 오늘날에 이르며 적계 산하의 갱구촌과 상장촌은 모두 천 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고대의 마을이다.
진촌은 명나라 초반에 조성되어 처음에는 남양진(南陽鎭)이라 불렀으며 마을사람들은 대부분 성이 적(翟)씨여서 진적촌(陳翟村)이라고도 불렀고 1982년에 진촌으로 개명했다.
(사진설명: 적계의 일각)
주요명소:
세계적인 명산 황산(黃山)의 동쪽에 위치한 적계에는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산발이 기복을 이루고 산중에는 안휘의 건축풍격을 자랑하는 고건물의 마을들이 별처럼 산재해 있다.
적계에 들어서면 곳곳에 아름다운 그림이 펼쳐져 작은 다리와 흐르는 물, 그 옆의 인가, 하얀 담벽과 검정 기와, 밥 짓는 연기와 황홀한 일몰이 발목을 잡는다.
그 사이로는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도처에 가득한 고건물에는 정교한 벽돌조각과 목각, 석각 등 세 가지 조각이 즐비해서 눈을 어지럽힌다.
(사진설명: 적계의 패방)
고대의 사당과 고대의 패방, 고대의 다리, 고대의 민가, 고대의 절 등이 곳곳에서 예스러움을 자랑하고 고건물들에는 산수와 인물, 온갖 짐승, 신화이야기 등 온갖 조각이 정교하고 생동하게 새겨져 있다.
안휘요리의 고장에 살고 있는 적계인들은 특히 요리에 능해 적계에서는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또 "이 세상의 먹은 적계에 있다"는 말처럼 청나라 때 4대 먹 제조대가 중 적계가 반을 차지했다.
적계에서는 또한 역대로 많은 명인들이 태어났다. 남송(南宋) 때의 유명한 시인에서부터 명(明)나라 때의 장군에 이르기까지, 청(淸)나라 때의 갑부와 중국 근대 신문화 운동의 창시인 등 많은 유명인들이 적계출신이다.
(사진설명: 갱구촌의 호씨종사)
송나라 때 축조된 갱구촌의 호씨종사(胡氏宗祠)는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다. 호씨 종사는 휘주사당의 특징을 보유한 동시에 정교한 조각으로 유명하다.
호씨종사의 중정과 문루(門樓), 제당(祭堂), 침실 등의 대들보와 기둥, 두공 등 거의 모든 곳에 천태만상의 목각이 즐비해서 호씨종사는 "목각예술의 전당"이라 불린다.
이 사당에는 또 특이한 현상이 있다. 지난 500 여 년 동안 이 건물에 거미 한 마리도 없는 것이다. 그 원인은 아무도 모르지만 거미줄이 없어서 호씨사당은 더욱 눈부신 모습을 자랑한다.
(사진설명: 갱구촌 고건물의 조각)
갱구촌에서는 호씨종사 외에 혁세상서방(奕世尙書坊)과 회원당(會源堂) 무대 건물도 아주 높은 예술적 가치를 자랑하며 많은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다.
갱구촌 촌민들은 거의 모두가 호씨 성이고 유독 한 가구만 정(丁)씨이다. 갱구촌에서 한 집만 호씨가 아닌 다른 성씨를 유지하는데는 이런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갱구촌 사람들은 마을이 선박의 모양을 유지해서 닻을 내리지 않으면 정박할 수 없다고 여겨 다른 마을에서 정씨 성의 촌민을 초청해서 닻처럼 마을을 이 곳에 정박하게 했다는 설이다.
(사진설명: 상장촌의 일각)
상장촌에는 안휘성의 중점 문화재 보호업체인 호적(胡適)의 생가와 태평천국(太平天國) 벽화, 괴성각(魁星閣), 호개문(胡開文)의 생가, 호적문화재 소장관, 천자묘(天子墓) 등 많은 문화재들이 있다.
상장촌에는 화강암을 깐 거리와 골목이 얼기설기하고 양쪽에 하얀 벽에 검정 기와가 대조적인 휘주 특색의 고건물들이 즐비하다. 건듯 들린 처마의 건물들이 입체감을 형성해 아름다운 산수와 조화를 이룬다.
상장에서 난 명인들 중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현대 중국어의 창시자이고 평생 36개 박사학위를 딴 국제유명 학자 호적과 안휘 먹의 창시자인 호개문이다.
(사진설명: 진촌의 일각)
진촌에는 다른 마을에서 보기 드물 정도의 많은 고건물이 집중되어 있다. 명나라와 청나라 전의 고건물 700여 채 중 가장 대표적인 건물은 당나라 때의 건물 의문(義門), 원나라 때의 건물 달자루(韃子樓), 청나라 때의 문창각(文昌閣), 수나라 때의 부풍회관(扶風會館)이다.
진촌의 옆에 위치한 도화담(桃花潭)은 서기 775년에 당나라 때의 유명한 시인 이백(李白)이 왕륜(汪倫)의 초청으로 이 곳에 왔다가 이 곳의 복숭아꽃과 만가주점(萬家酒店)에 매료되어 많은 시를 남긴 곳이다.
이백은 도화담을 떠날 때 왕륜과 이별하면서 왕륜의 정에 감동되어 "도화담의 물 깊이가 천 척이나 되지만 나를 보내는 왕륜의 정에는 미치지 못하리"라는 명시 "왕륜에게"를 남겼다.
(사진설명: 진촌의 도화담)
왕륜이 이백을 전송한 나루터는 사람들에게 의해 "탑가고안(踏歌古岸)"으로 불리고 위대한 시인 이백을 기념하기 위해 사람들은 그 옆에 "몽담헌(夢潭軒)"이라는 이름의 누각을 짓고 이백이 도화담을 관광한 자료와 도화담명소의 사진들을 전시했다.
진촌 도화담과 마주하는 곳에는 또 다른 천 년의 마을 도화담촌이 자리잡고 있고 진촌과 맑은 물의 도화담, 도화담촌이 함께 도화담 명소를 조성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도화담 명소는 당나라 때 조성되어 오늘날까지 수려한 경치와 1200 여 년의 풍부한 인문경관으로 걸음마다 아름답고 풍부한 경관이 펼쳐지는 관광지로 부상했다.
(사진설명: 적계의 정원)
키워드:
풍경, 민가, 역사인문
위치와 교통:
적계는 안휘(安徽, Anhui)성 선성(宣城, Xuancheng)시에 위치하고 갱구촌은 적계현에서 북동쪽으로 12km 거리에 위치, 상장촌은 적계현에서 서쪽으로 39km 거리에 위치하며 진촌은 안휘성 경현(涇縣, Jingxian)에 위치한다.
다양한 교통편으로 선성시에 도착한 다음 적계현행 버스나 경현행 버스를 이용하거나 선성에서 택시로 이동해도 된다. 여유를 가지고 고요한 시골 마을을 돌 경우에는 택시가 훨씬 편리하다.
(사진설명: 도화담과 몽담헌)
계절:
봄과 가을
설명:
적계현과 경현(涇縣)은 안휘성 선성(宣城)시 관할이고 갱구촌과 상장촌은 적계현 관할이며 진촌은 경현 관할이다. 선성에는 아름다운 경치와 유구한 역사, 풍부한 문화를 자랑하는 고대 마을 외에도 다른 볼거리가 적지 않다.
황학루(黃鶴樓)와 악양루(岳陽樓), 등왕각(騰王閣)과 함께 강남의 4대 유명 누각으로 인정되는 사조루(謝眺樓), 1400여 년 동안 역대의 유명 시인 300여 명이 다녀가면서 주옥 같은 시를 남긴 경정산(敬亭山)이 선성의 명소이다.
그 밖에 선성의 태극동(太極洞)은 화동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천연 동굴이며 지하수가 없는 동굴과 지하수가 있는 동굴로 분류되고 험준하고 웅장하며 화려하고 신기한 경관의 500여개 명소를 거느린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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