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09 10:23:44 | cri |
(사진설명: 아름다운 이갱촌)
개관:
무원인들은 이갱(李坑)촌은 무원과 황산을 오가는 코스에 박혀 있는 눈부신 보석이라고들 말한다. 청산의 기슭으로 맑은 물줄기가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마을을 흘러 지난다.
마을의 건물을 안고 도는 시냇물의 기슭에는 예스러운 건물들이 줄지어 있고 물길 위에는 아담하고 다양한 모양의 석교들이 놓여져 마을을 하나로 연결한다.
무원 왕구(汪口)진에 위치한 유씨종사(兪氏宗祠)는 청(淸)나라 때의 건물양식으로 지어진 웅장한 고건물이고 뛰어난 풍격으로 고건물 전문가들에 의해 "건축예술의 보고"로 인정된다.
(사진설명: 이갱촌의 일각)
역사:
이갱촌은 북(北宋) 때인 1010년에 건설을 시작, 현재까지 천 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이갱촌은 남송(南宋) 때인 1167년에 과거시험에 장원으로 급제한 이지성(李知誠)의 고향이다.
2003년 완전하게 보존된 하얀 담벽에 검정 기와의 휘파(徽派) 고건물과 수려한 경치를 보유한 이갱촌은 역사문화의 마을에 선정되었고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끄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사진설명: 이갱촌의 건물)
주요명소:
사면에 산이 둘러선 이갱촌의 고건물은 특색이 있는 구도를 유지하고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두 갈래의 물길이 마을에서 합류해 고건물을 안고 돌며 흐른다.
이갱촌에 사는 260여 가구의 건물은 대부분 시냇물의 양쪽에 산재해 작은 다리와 흐르는 물, 그 옆의 인가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화폭을 그리며 바닥까지 환하게 보이는 물가에는 채소를 씻고 빨래하는 시설이 고요함을 더해준다.
이갱촌의 특징은 오래된 건물과 오래된 다리, 오래된 정자, 오래된 나무 등 모두가 오래된 것들이다. 이갱촌에는 40여 개의 작은 다리가 있는데 그 중 송(宋)나라와 명(明)나라 때 축조한 아치형 석교가 5개이며 나머지는 모두 일반 석교나 목조 다리이다.
(사진설명: 이갱촌의 다리)
이갱촌의 다리 중 중서교(中書橋)는 9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통제교(通濟橋)는 300년의 역사를 보유한다. 마을의 입구에 키 높은 녹나무들이 두 세 그루씩 자라며 숲을 이루고 그 사이로 맑은 시냇물이 흐르며 물 위에 다리들이 놓여 있다.
그 중 가장 오래된 다리가 바로 두 물길이 합류하는 곳에 놓은 통제교이다. 두 줄기의 물길은 두 마리의 용을 방불케 하고 물위에 비낀 둥근 홍예가 보석과 같다고 해서 사람들은 이 곳의 경관을 쌍용희주(雙龍戱珠)라 한다.
마을에 보존된 고건물들은 모두 대표적인 휘주 특색의 건물로 홀의 천정이 높고 목각과 석각, 벽돌조각이 정교하며 건물과 건물 사이에 솟은 키 높은 외벽 마두장(馬頭墻)이 운치를 돋운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이갱촌)
이갱촌에서 가장 대표적인 고건물은 3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동록방(銅綠坊)"이다. 이 건물의 주인은 서예의 대가여서 예스러운 건물 곳곳에 주인의 서예작품이 조화를 이룬다.
정자인 신명정(申明亭)은 마을에서 모임을 가지는 곳이다. 이갱촌사람들은 한 주에 한 번씩 이 곳에 모여 촌민들에 대한 상과 벌을 내리며 잘못을 저지른 촌민들은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 이 정자를 통과하지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 정자 옆의 오솔길을 따라 돌아가야 한다.
이갱촌에는 고목도 아주 많다. 동구밖에 몇 백 년 수령을 자랑하는 녹나무들이 많고 마을에도 여기저기 고목들이 줄지어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고목이 금목서 나무이다.
(사진설명: 이갱촌의 고목)
이 금목서 나무는 높이가 11m이고 수관의 반경이 7m에 달하며 줄기의 지름이 1m에 가깝다. 수령이 밝혀지지 않은 이 고령의 나무는 현재도 해마다 가을이 되면 꽃을 피워 향기가 진동한다.
다른 한 고목은 5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과거시험에 장원으로 급제한 이지성의 생가 뜰에서 자라는 배롱나무이다. 줄기와 가지가 거의 말라 버린 이 배롱나무도 철이 되면 여전히 꽃을 피우고 화기가 90일에 달해 감탄을 자아낸다.
이갱촌의 마을을 흐르는 맑은 시냇물에는 빨래하는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가 비껴 있고 하얀 담벽에 검정 기와를 얹은 예스러운 고건물이 거꾸로 비껴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
(사진설명: 유씨종사의 일각)
부지가 1,000 제곱미터를 넘는 유씨가문 사당건물의 군락인 유씨종사는 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산문(山門)과 향당(享堂), 침당(寢堂)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심선에 주요 건물이 자리하고 양쪽에 다른 건물들을 거느린 건물의 대들보와 기둥 곳곳에 교묘하게 설계된 100여세트의 조각과 무늬가 새겨져 장관이다.
청나라 건륭연간에 신축한 유씨종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건물은 "오봉문루(五鳳門樓)'이다. 오봉문루란 건듯 들린 지붕의 귀퉁이에 봉황 다섯 마리가 새겨져 있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사진설명: 유씨종사의 오봉문루)
문루의 지붕에 봉황 다섯 마리가 새겨진 오봉문루는 황실의 건축물에서는 늘 볼 수 있지만 민간의 사당건물에서는 보기가 아주 드물다. 전한데 의하면 청나라 건륭(乾隆) 연간에 왕구촌의 응륜(应綸)이라는 문인이 태자의 스승이었기 때문에 황제의 허가로 오봉문루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웅장한 기세를 자랑하는 오봉문루의 안쪽에는 "만상갱신(萬象更新)"과 "쌍봉조양(雙鳳朝陽)", "복여동해(福如東海)" 등 상서로움을 보여주는 글들이 다양한 조각기법으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문루의 북쪽 처마에는 전설 속의 자라를 새기고 지붕의 용마루에는 수많은 작은 천구(天狗)를 새겼다. 긴 복도를 지탱하는 기둥의 상단에는 사자를 새겨 사자의 머리가 천정을 받쳐 복도와 지붕의 무게를 받도록 설계했다.
(사진설명: 이갱촌의 건물)
키워드:
민가, 풍경, 역사인문
위치와 교통:
이갱촌은 강서(江西, Jiangxi)성 상요(上饶, Shangrao) 무원(婺源, Wuyuan)에서 동쪽으로 12km거리에 위치, 다양한 교통편으로 경덕진이나 황산시에 이른 다음 무원행 버스를 이용하고 무원에서 강만(江灣)행 버스를 이용, 이갱촌에서 하차한다.
유씨종사는 무원에서 북동쪽으로 30km 거리의 왕구(汪口)촌에 위치, 무원에서 30분에 한 편씩 출발하는 강만행 버스를 이용해 왕구촌 동구밖에서 하차한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왕구촌)
계절:
1년 4계절
설명:
무원에서 요주(饶州)로 오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무원과 북동쪽의 물길을 연결하는 요충지에 위치한 왕구촌에는 명나라와 청나라 때 상가가 즐비하고 상인들이 모여 번화하기 그지없었다.
따라서 왕구촌에는 유씨종사 외에 다른 고건물들도 많다. 청나라 때인 1880년에 지은 양원서옥(養源書屋)은 앞 뜰과 교실, 스승의 방, 주방 등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당에 고목이 자라나 유구한 역사를 말해준다.
(사진설명: 왕구촌의 고건물)
1737년에 지은 일경당(一經堂)은 문과 외벽에 벽돌조각과 석각이 소박하고 실내의 대들보와 문, 기둥 등에 정교한 목각이 완전하게 보존되었으며 배수시스템의 기능도 하는 중정도 특이하다.
1795년에 신축한 유념증(兪念曾)에서는 규수가 생활하던 장소인 수루(綉樓)가 명물이다. 수루의 처마와 문에 형상적이고 정교한 벽돌조각과 석각이 새겨져 있다.
명나라 후반의 건물인 생훈당(生訓堂)은 조각이 거의 없이 대들보에 심플한 라인만 새겨져 있으며 창호도 소박하게 격자무늬로만 되어 있으며 홀의 내벽은 청석으로 쌓아 장엄한 느낌을 준다.
(사진설명: 왕구촌의 고건물)
송나라 때인 1110년에 조성된 거리 관로정가(官路正街)는 동서방향으로 뻗은 반달 모양의 길이다. 670m 길이의 거리 양쪽에 340채의 고건물이 줄지어 장관이다.
하얀 담벽에 검정 기와를 얹은 건물은 대부분 2층이나 3층으로 되어 있으며 거리를 향한 쪽의 건물은 마당도 두지 않고 가게와 손님 접대용으로 사용한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청나라 후반과 명나라 초반에 이 거리가 번성일로를 달렸고 오늘날에도 예스러운 거리와 고건물에서 어제의 번창함을 엿 볼 수 있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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