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30 16:12:37 | cri |
(사진설명: 아름다운 염제릉)
개관:
중화민족 비조의 한 명인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는 중국의 원시농업을 개발했다고 전해지는 농경문화의 창시인이다. 염제는 또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백 가지 약초를 맛 보았고 독성이 있는 약초를 잘못 먹어 생을 마감했다.
염제 신농씨가 잠든 염제릉은 "중국의 제일 능묘"로 불리고 국립명소, 중점문화재 보호업체, 중국 무형문화재 등 다양한 월계관을 쓰고 있으며 염제릉전(炎帝陵殿)과 신농대전(神農大殿)이 주요 볼거리이다.
(사진설명: 멀리서 본 염제릉)
역사:
염제 신농씨의 무덤에 대한 기록은 최초로 진(晉)나라 때의 <제왕세기(帝王世紀)>에 나와 있고 송(宋)나라 때의 <노사(路史)>에는 더욱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염제가 장사(長沙)에서 붕어한 후 다향지미(茶鄕之尾)"에 묻혀 다릉(茶陵)이라 한다". "서한(西漢) 후반에 현지인들이 적미군(赤眉軍)이 난세에 도굴할 것을 우려해 무덤을 평지로 만들었다."
염제릉은 현재까지 천 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역대 왕조의 교체와 흥망에 따라 무너지고 복구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송나라 때인 968년에 염제릉을 다릉(茶陵)현으로 옮겼고 마지막으로는 1988년에 개축했다.
(사진설명: 아름다운 염제릉)
주요명소:
염제릉에 들어서면 오문(午門)이 맞이한다. 아치형 석문(石門)인 오문은 높이가 4m, 너비가 2.6m이며 문 앞에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오문에 들어서면 염제릉(炎帝陵)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하얀 비석이 세워져 있다.
두 번째 마당에는 제사를 지내는 장소인 행례정(行禮亭)이 위치해 있다. 길이 14.03m에 너비 5.53m, 높이 8.33m의 장방형 정자에는 향로와 촛대가 운치를 자랑한다.
세 번째 마당에는 녹나무로 조각한 염제 신농씨의 조각상이 공양된 본전 능전(陵殿)이 위치한다. 두 겹으로 된 날아갈듯한 지붕을 한 전각은 길이 21.16m, 너비 16.94m이며 30개의 화강암 기둥에 받들려 있다.
(사진설명: 염제릉의 건물)
전각의 천정에는 황금색의 용 9999마리가 새겨져 눈부시고 전각의 신대(神臺)에는 금박을 칠한 염제의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그 앞에는 하얀 바위에 용을 조각했다.
네 번째는 가운데 하얀 묘비가 세워진 묘비정(墓碑亭)이다. 지붕의 귀퉁이가 건듯 들린 정자에 세워진 묘비에는 "염제신농씨지묘 (炎帝神農氏之墓)"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묘비정의 뒤에 높이 5.58m, 너비 6.64m, 길이 28.9m의 염제무덤이 자리한다. 앞에 청나라 때에 세운 비석이 남아 있는 무덤에는 풀이 무성하고 주변에는 꽃나무가 화사하다.
(사진설명: 염제릉의 신농대전)
염제릉 중심선의 동쪽에 위치한 신농대전은 고건물을 모방해서 2001년에 신축한 전각이다. 신농대전은 길이 37m, 너비 24m, 높이 19.6m의 본전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의 곁채, 복도, 정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각의 바깥 복도에는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용이 새겨진 돌 기둥 10개가 줄지어 장관을 이루고 전각의 내부 중앙에는 붉은 화강암으로 된 염제의 석상이 세워져 있다.
신농대전에 들어서면 남쪽으로부터 시작해 제사광장과 참배대도(大道), 용주교(龍珠橋), 영풍대(咏豊臺), 용주대도, 성덕(聖德) 광장 등이 차례로 펼쳐져 있다.
(사진설명: 신농대전의 일각)
제사광장의 양쪽에는 약초를 맛 보며 의약을 발명한 염제를 기념하기 위해 백 가지 약초가 새겨져 있고 광장 가운데는 중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향로가 놓여 있다.
가운데 메인 석교를 중심으로 양쪽에 두 개의 석교를 거느린 용주교의 난간에는 고대 중국의 온갖 악기가 새겨져 있다. 다양하고 많은 건물을 거느린 신농대전은 소박하면서도 우아하고 웅장한 기세를 자랑한다.
염제 무덤의 뒤쪽, 염제릉 중심선의 북쪽에는 어비원(御碑園)이 조성되어 있다. 회랑의 내벽에는 명나라 때의 비석 13점과 청나라 때의 비석 38점을 망라해 황제의 어명으로 쓴 제문이 새겨진 비석 51점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설명: 염제릉의 일각)
어비원의 북쪽에는 반달 모양으로 둥근 조벽(照壁)을 세우고 수렵시대에서 농경시대로 발전하고 떠돌아 다니다가 정착생활에 이르기까지의 생산과 생활을 배경으로 염제의 공적을 새겼다.
염제릉 성화대(聖火臺)는 1993년에 제1회 "염제컵" 세계 중국인 용주경기 때 성화를 지피기 위해 축조했다. 염제릉 앞의 해발 205m의 용주산(龍珠山)에 위치한 성화대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중국의 전통에 의해 축조되어 교묘한 구도를 자랑한다.
성화대의 높이는 40m이고 성화대의 중앙에 3.8m높이에 달하는 갈색의 거대한 점화석이 세워져 있으며 점화석의 정면에 1.5m 높이의 상형문자 염(炎)자가 새겨져 있는데 글자의 모양이 마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듯 하다.
(사진설명: 염제릉의 일각)
성화대와 멀리 마주 보는 영풍대는 청나라 때인 1827년에 축조했는데 중화민국(中華民國) 초반에 무너져 1988년 염제릉을 재축할 때 염제릉전의 왼쪽 산 언덕에 개축했다.
염릉산 산정에 세워진 녹원정은 귀퉁이가 건듯 들린 지붕을 한 예스러운 정자이다. 전한데 의하면 이 정자는 염제가 태어난 후 사슴이 젖을 먹여주고 매가 날개로 햇빛을 가려주었다는 전설에 의해 축조했다.
다양한 자세와 모양을 가진 생생하게 살아 있는 듯한 사슴을 새긴 석각이 펼쳐진 정자의 주변에는 푸른 소나무가 울창해 아름다운 자연과 인문의 조화를 이룬다.
(사진설명: 염제의 석상)
키워드:
역사인문, 고건물
위치와 교통:
염제릉은 호남(湖南, Hunan)성 주주(株洲, Zhuzhou)시 염릉(炎陵, Yanling)현에 위치, 교통이 아주 편리해서 호남 성도 장사(長沙)와 주변도시들에서 자동차로 2-3시간이면 도착이 가능하다.
염제릉은 장사에서 270km, 주주에서 220km, 정강산(井崗山)에서 100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다양한 교통편으로 주주에 도착한 다음 주주 버스 터미널에서 염제릉행 버스를 바꾸어 타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사진설명: 염제릉의 일각)
계절:
1년 4계절
설명:
중국에서는 염제가 생을 마감한 호남에 염제릉이 있는 외에 산서(山西)성과 염제가 태어난 섬서(陝西)성에도 염제릉이 있다. 일명 황분(皇坟)이라 부르는 산서성의 염제릉에서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명나라 때인 1611년의 비석이 발굴되었다.
염제는 지금으로부터 6000년부터 5500년 사이에 오늘날 섬서성 보계(寶鷄)시에서 태어나 남동쪽으로 옮기면서 호북(湖北)과 호남, 산서 등지에 이르렀다.
따라서 오늘날 중국에서는 염제의 발길이 닿은 적 있는 섬서의 보계와 호북의 수주(隨州), 호남의 주주, 산서의 고평(高平)을 염제의 고향이라고 인정한다.
중국의 비조는 염제와 황제(黃帝)을 말하며 따라서 중국인들은 염황의 자손이라고 자처한다. 염제와 황제의 부족이 모여 화하(華夏)족을 형성했고 한(漢)나라 때부터 화하족은 한(漢)족으로 불리게 되었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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