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4 17:04:08 | cri |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낙익운(駱翼雲), 그녀의 외할머니는 바로 남경대학살 생존자이다. 소시적에 외할머니로부터 그의 가슴아픈 조우와 이 침통한 역사를 전해들은 그녀는 1분짜리 단편영화 "금릉지과인(金陵止戈人)"을 통해 세인들에게 이 뼈아픈 역사를 알렸다.
올해 국제에미상((The International Emmy award) 청년창의팀 수상자 선정에서 이 단편영화는 2백여편의 후보작 가운데서 두각을 드러냈고 감독 낙익운은 "여성평화사도" 경쟁부문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3명의 수상자 중 한명으로 선정되었다.
1분만 허락된 무거운 소재의 단편영화
낙익운의 소개에 의하면 국제에미상은 미국을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의 18세부터 30세까지의 청년감독을 대상으로 1분 길이의 단편영화를 모집해 심사한다.
1948년 미국텔레비전예술과학아카데미가 설립한 에미상은 미국라디오TV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으로서 영화계의 아카데미, 연극계의 토니상, 음악계의 그래미상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단편영화 "금릉지고인"의 주인공인 중국 소녀는 미국 대학으로부터 이라크 자원봉사자에 합격되었다는 통지를 받고 출발하기전 외할머니와의 통화에서 미니 보트린여사처럼 이라크로 가서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전한다. 미니 보트린 여사는 20세 때 자원봉사자로 중국으로 왔고 전쟁폭발로 함락된 남경의 금릉여자문리학원에서 수만명의 중국 부녀와 아이, 난민을 구제했다. 여기에는 극 중 여주인공의 외할머니도 포함되었던 것이다. 외할머니는 이 이야기를 손녀에게 들려주었고 이 소녀는 미니 보트린 여사의 영향을 받아 또 다른 나라로 가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동참한다. 영화 말미에 남경대학살에 대한 뼈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남경대학살에 대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알게끔 해야 합니다."
남경 태생인 낙익운은 2010년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2015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영화제작 관련 전공을 연수하고 있다. 이 영화를 촬영한데 대해 그녀는 남경대학살 생존자인 외할머니로부터 이 시기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전해들었다고 한다. 그녀의 외할머니는 미니 보트린 여사를 살아있는 보살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낙익운은 외국에 있는 친구들이 대학살하면 유태인의 조우를 떠올리고 "쉰들러 리스트"를 떠올리뿐 남경대학살에 대해서는 다소 생소해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때 낙익운은 이 역사를 알리기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역사를 잊지 말고 평화를 소중히 해야 한다"며 특히 "한차례 재앙을 겪었던 남경은 그 시기 역사의 상징이기에 남경인들이 평화에 대해 느끼는 소중함은 유태인보다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낙익운은 고민끝에 영화를 제작하기로 다짐했다. 그는 영화는 자본과 예술의 조합이지만 "금릉지고인"에는 그 어떤 자본의 개입도 없었다고 한다. 이유인즉 이 진지한 소재가 상업화나 오락화될 우려가 있어서였다.
그는 자비로 기계를 사고 친구를 섭외해 핸드폰과 셀카봉으로 폭염 속에서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촬영을 강행했다. 어렵사리 촬영을 마쳤으나 고비는 편집에 있었다. 낙익운은 초보적인 편집을 거쳐 외국친구들에게 보여주면서 그들의 반응을 살폈다고 한다. 그들이 알아볼 수 있게 편집하는 것이 난제로 떠올라 영화를 전공한 친구들과 교사의 조언을 많이 참고했다고 회억했다.
"중국 버전의 '쉰들러 리스트' 촬영하는게 나의 꿈"
"저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남경대학살에 대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제가 영화를 배우고 있기 때문에 영화 각도에서 이 일을 접근해보고 싶습니다."
그는 주변의 많은 유태인 친구들에게 미니 보트린 여사의 사적을 이야기했고 그들도 미니 보트린 여사와 그의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들은 중국 버전의 "쉰들러 리스트"라면서 낙익운이 이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것을 응원했다.
낙익운은 이번 국제에미상의 공모주제인 "여성평화사도"를 접했을 때 미니 보트린 여사와 그의 외할머니 그리고 남경대학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한다. 남경대학살 주제의 영화로는 "진링의 13소녀(金陵十三釵)", "난징! 난징!"과 같은 우수한 영화들이 있기에 그는 새로운 시각을 고민했다고 한다.
낙익운의 외할머니는 6, 7세 때 재난 속에서 어머니를 여의었다고 한다. 그때의 기억은 고작 6, 7세 뿐인 소녀에게 너무 무거운 기억이었고 30만 동포들의 조우는 중국인들에게도 너무 침통한 과거였다.
낙익운은 이런 역사를 잊는다는 것은 일종의 배반이라고 일침한다. 그는 언젠가 이 주제를 스크린으로 옮겨 "쉰들러 리스트"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전했다.
번역/편집:권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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