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을》 몇 잎을 뜯어 책갈피속에 간직하고 오는 소녀들, 그 《기발》 몇가지를 꺽어 자전거핸들짬에 꽂고 돌아오는 소년들, 그 불타는 《화산》을 가슴에 안고 돌아오는 사람들과 사람들. 단풍은 그들 모두에게 계절의 마지막 경탄과 환희 그리고 열망과 축복을 남겨주었다. 그리고는 서서히 찬바람을 맞으며 물러갔다.

우리 교정의 단풍나무는 몇그루밖에 안되는데다가 다른 나무들속에 끼어있어 가을에도 북경 향산의 단풍나무처럼 장관은 이루지 못하고있다. 그러나 학업에 분망하여 향산을 자주 가볼수 없는 학교의 학생들과 선생들에게는 향산의 단풍의 바다를 련상케 해주며 계절의 마지막 열정과 축복을 받아안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기에 나는 향산의 단풍의 바다 못지 않게 교정의 단풍나무에 혹애(惑愛)당하군 하였다. 그리고 단풍잎이 다 떨어지면 서운함을 금치 못하군 하였다.

그런데 올해, 이른봄에도 가을의 추억인듯 떨어지지 않고 그냥 달려있는 몇잎의 붉은 단풍잎을 놀랍게도 발견하였다.

중국 고대 유명한 시 한 수에는 《가을의 단풍잎 2월의 꽃보다도 붉다네》라는 구절이 있다. 아직 북경에는 꽃이 만개하지 않았기에 2월의 꽃이 얼마나 붉은지는 알수 없고 2월의 꽃이 없으니 단풍잎이 더 붉으냐 2월의 꽃이 더 붉으냐 비겨볼수도 없다. 그러나 2월의 단풍잎은 내 한평생 처음 보는 기이한 단풍잎이다.

사나운 겨울을 용케 이겨내고 이른봄까지 남아있다는 의미에서만 2월의 단풍잎이 기이하다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끝까지 자신의 아름다운 마음- 열망과 기원을 붉게 붉게 태우던 그 모습에 대한 추억을 잊지 않은채 그 무슨 다 하지 못한 말을 가슴속에 간직한채, 새봄이 다 오도록 끈질기게 버티어내면서 새로운 봄에 움트는 잎들을 바라보는 그 안쓰러운 사랑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에 실로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봄날의 꽃은 미와 향기, 생기와 환희를 안겨주지만 깊은 사색은 가져다 주지 못한다.

그러나 2월의 단풍잎은 향기와 생기는 없어도 그 대신 깊은 사색을 안겨주고 있다.

마치 불타던 사랑을 다하지 못하고 어쩔수 없이 갈라져야만 했던 첫 사랑이 남겨 놓은, 이제는 세월의 풍파에 식은 불티가 되었지만 그래도 그냥 사라지지 못하는 애절한 추억처럼 깊은 사색을 안겨준다.

아니 그보다도 2월의 단풍잎, 그것은 봄날 움트는 나뭇잎에는 사랑의 어머니이다. 떨어지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이시다.

나의 상념의 세계에도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단풍잎이 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와도, 봄이 오고 여름이 다가와 대지가 푸를대로 푸러러지고 산산곡곡에 산꽃이 현란하게 만개해도 그냥 떨어지지 않는 단풍잎 - 어머니 사랑의 영상이 있다.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그《2월의 단풍잎》으로 하여 나는 언제나 봄날의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