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이야기가 이럴진대 한권의 책, 10권의 전집에는 또 얼마나 많은 계시와 감동이 담겨있을것인가! 전집에 수록된 황구연의 이야기는 1063컬레, 자수는 363만자이고 페지수는 4565페지라니 놀랍기만 하다.

희세의 이야기천재, 박식한 구비문학대가를 발견하고 그의 이야기를 전집으로 일궈낸 김재권선생에게 이메일로 궁금한 점들을 여쭈어보았다. 뜻밖에도 김선생의 닉네임은 "가시나무"였다.

답장을 보면 김재권선생의 25년 인생려정은 황구연선생의 현신을 위한 한부의 현실드라마같다ㅡ

1982년에서 1983년사이 동료들과 함께 동북3성을 전전하며 민간이야기의 광산을 찾아헤매던중 김선생은 결국 고향 룡정의 팔도향 로동 1툰에서 초야에 묻혀사는 이야기의 신대륙 황구연을 발견한다.

이주 백여년 력사에 이야기군은 많았을것이다. 허지만 일년 365일 이야기해도 끝날줄 모른다는 "이야기대왕" 황구연은 그들을 대표하는 우리 민족 민간문학의 대가였다. 문화대혁명의 일진광풍에 밀리였던 그가 산골에나마 생존해있었다는것은 천만다행이였다. 김재권선생과의 기연으로 말미암아 오래동안 함구를 하며 대학이나 중학의 교원초빙에도 불응하던 인간문화재 황구연선생이 마침내 화로앞에 다가앉아 부젓갈로 화로의 불을 휘저으며 입을 연다.

"이거 오래간만에 말동무를 만났습니다… 내가 옛말을 가지고 관속으로 가겠습니까? 옛말을 우습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좋은 옛말속에는 인생의 철리가 들어있지요, 내 아는데까지 이야기하겠습니다..."

여름철이라 화로엔 불이 있을리 없었지만 옛말을 할 때 화로를 당겨다놓고 이야기를 하는것은 황로인의 습관이였다. 난생 처음 금보다 더 귀중한 광산을 만난 김재권선생은 막장에 내려간 광부로 되여 밤에 낮을 이어 이야기의 광맥을 더듬었는데 장편이야기는 한컬레를 하는데 반나절이나 걸렸다고 한다. 이렇게 5년동안 26차례 방문해 록음을 하기도 하고 속기를 하기도 한것이 주옥같은 이야기 1천여컬레이다.

1986년부터 황구연민담집 <천생배필>(연변인민출판사), <파경노>(박창묵과 합작, 민족출판사)가 출판되고 1990년엔 번역본민담집 <황구연이야기집>(한어, 박찬구번역, 중국민간문예출판사)이 출판되여 센세이숀을 일으키지만 광부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호사다마였다. 김선생이 퇴직을 하고 여러 도서실운영과 력사유적지복원에 참여하다보니 이야기정리가 지체된다. 2002년 12월, 중국문련대회에 참가했던 중국민간문예가협회 부주석이며 성민간문예가협회주석인 조보명선생이 직접 연길에 와서 중앙민협과 성민협의 중점사업의 하나가 황구연의 이야기 정리출판이라고 격려한다.

투병중이던 정판룡교수도 림종전 한달동안 세번 병문안을 간 김재권선생에게 번마다 똑같은 부탁을 한다. 지난날, 여기서 오라면 여기를 가고 저기서 얘기해달라면 저기를 가서 발언을 했는데 이제와서 보니 그 시간에 글을 쓰지 못한것이 후회된다, 김선생이 지금 여러 가지 활동을 벌리고 있는데 독서사요, 유적지복원에 못지 않게 중요한것이 황구연이야기출판이다…

김선생은 드디여 모든 사회직무를 사임하고 이야기정리에 전념한다. 지식의 한계와 고문수준의 제한을 실감하며 황구연선생의 의도와 이야기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사전과 옥편을 선생으로 삼는다.

경비마련이 문제로 대두한다. 한국의 두 출판사가 찾아온다. 한 문화재단이 계약서를 보내온다. 보수는 지급되게 되나 5년동안 판권소유가 문제시되여 그만둔다. 민족출판사 조문편집실과 10만원 자비출판계약이 이뤄진다

독서사운영시에 한국 고경주사장의 후원과 연변조선문독서사 조권옥사장의 자금선대가 있었지만 룡정독서사 관사소유증송사에 휘말린다. "나는 선산을 지키는 꼬부라진 늙은 가시나무로 살겠다"며 김선생은 동분서주한다. 장장 3년만에 룡정시법원에 의해 독서사소유증문제가 해결을 본대신 출판경비마련은 수포로 돌아간다.

사필귀정이라는 말도 있다. 민족출판사가 판권비를 받지 않기로 하고 전집인쇄를 서두를 무렵 연변주위서기가 나서서 경비조달과 연변에서의 전집출판이 확정된다. 연변인민출판사가 출판사사상 최고의 원고료를 승낙한다. 그날부터 김선생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 15-18시간씩 컴퓨터에 마주 앉아 360여만자분량의 원고를 세번 심열수정한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고혈압이 뇌혈전으로 악화되나 전집출판을 위해 그는 입원을 포기한다. 좀 안정되자 경제상황때문에 부인은 이미 수속해둔대로 한국으로 떠난다.

사람은 흔히 이런식의 가정을 해볼 때가 있다. 그가 만일 열련중의 련인이라면 아마 이런 생각을 해볼것이다, 내가 그때 그 자리에서 그이(그녀)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쩔번 했는가. 면바로 열심히 복습한 내용이 시험문제로 나와 바라던 대학에 간 학생이 있다면 그는 아, 그때 그 문제들을 빠뜨리고 복습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쩔번 했는가.

나도 한번 이런 가정을 해본다. 만약 김재권선생이 심심산골에 묻혀있던 구비문학대가 황구연선생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해빛을 볼수 있도록 로심초사하지 않았더라면 보석같은 우리의 문화유산은 과연 어쩔번 했는가.

여름 무더위가 익어가고있는 요즘이다. 화로불은 없어도 지난 세기 80년대 한 초가집 화로불가에서 구술된 황구연선생의 구수한 옛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뜨겁게 달군다. 전집출판공정을 마친 김재권선생의 파란많은 인생드라마를 줄거리로나마 음미하면서 나는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