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죽할제(劃粥割齏)의 이야기
中国国际广播电台

     범중엄(范仲奄) 중국 역사상 이름난 정치가이며 문학가이다. 그는 또한 정치상 탁월한 기여를 했으며 문학, 군사 면에서도 비범한 재능을 과시했다. 그의 유명한 문장으로는 <악양루기(岳陽樓記)> 있다. 문장에서 나오는 <선천하우이우(先天下憂而憂), 후천하낙이낙(後天下樂而樂)-선비는 천하의 걱정을 먼저 앞서 걱정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마지막에 즐긴다> 명구는 후대들의 깊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광범위하게 전송되었다. 다음은 그가 어릴 어렵게 공부한 이야기이다.

    범중엄은 기원 10세기 ()나라 사람이다. 그가 3살도 안되었을 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시고 집형편이 아주 가난했다. 10여살때 범중엄은 홀로 타지에서 공부했으며 당시 이름있는 응천부(應天府)서당에서 스승을 모시고 글을 배웠다. 응천부서당에서 공부하는 기간 범중엄의 생활은 아주 고달펐다. 넉넉한 돈이 없어 쌀을 없었기 때문에 아주 오래동안 매일 죽을 마실수밖에 없었다. 그는 매일 아침 쌀로 죽을 끓여 죽이 굳으면 세조각으로 나누고 짠지를 잘게 썰어 하루 세끼를 에때웠다. (劃粥割)

    어느 , 범중엄이 밥을 먹고 있는데 그의 친구가 그를 보러 왔다가 범중엄의 밥과 반찬이 말이 아닌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파서 돈을 주면서 생활개선을 하도록 했다. 하지만 범중엄은 완곡하게 그리고 아주 견결히 사절했다. 방법이 없게 그의 친구는 이튿날 많은 맛있는 요리들을 보내주었으며 범중엄은 이를 받을 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나 그의 친구가 또다시 범중엄을 찾아 왔을 , 놀랍게도 그가 전에 보냈던 닭고기며 물고기들을 범중엄이 한수절도 들지 않아 모두 곰팽이가 것을 발견했다. 그의 친구는 아주 화가 나서 범중엄에게 말했다. <당신은 너무하네. 적은 음식조차도 받으려고 하지 않으니 친구로서 마음이 너무 상하네!>

    범중엄이 웃으면서 말했다. <오해하셨소. 나는 먹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감히 먹을 수가 없었소. 고기들을 먹고 난뒤에는 다시는 죽과 짠지를 먹을 없을가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오. 당신의 좋은 뜻을 받아들였으니 제발 오해하지 마시오.>

    어느 한번 어떤 사람이 범중엄의 포부를 묻자 범중엄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의 포부는 훌륭한 의사가 되거나 좋은 재상이 되는 것이오. 훌륭한 의사는 사람의 병을 고칠 있고 좋은 재상은 나라를 다스릴 있지요.> 훗날 범중엄은 과연 재상으로 되었으며 송나라의 이름난 정치가로 되었다.

    범중엄은 교육창설과 관료기구 개혁을 나라부강의 두가지 중요한 방면으로 삼고 전국에 서당을 대대적으로 세우고 스승의 자질을 증강시켰으며 나라에서 급히 수요하는 각종 인재를 육성했다. 그는 자신도 능력껏 재능이 있는 사람을 육성했으며 후에 유명한 정치가와 문학가인 구양수(毆陽修), 문학가 주돈이(周敦頤), 철학가 장재(張載)등은 모두 범중엄의 도움을 받았다.

    범중엄은 많은 정사를 눈코 뜰새 없이 처리하면서도 창작에 몰두했으며 많은 뛰어난 작품들을 남겼다. 찬양할만한 것은 범중엄은 당시 내용이 실속없이 겉치레뿐인 작품들은 반대하고 문학은 응당 현실사회와 연관되어야 하며 사회발전과 인간의 발전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주장은 후세 문학의 발전에 아주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