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전도사 "뢰봉반"의 이야기

cri2013-05-07 17:09:43

사랑의 전도사 "뢰봉반"의 이야기

(사진설명: "노인 뢰봉반" 반장 김봉숙 할머니)

사랑의 전도사 "뢰봉반"의 이야기

개시곡~

남: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회생활에서 인사드리는 김금철입니다.

여: 안녕하세요. 아나운서 임봉해입니다.

남: 임봉해씨, 얼마전에 연변과 장춘 출장을 다녀오셨잖아요. 우리 방송의 애청자들과 만나 좋은 얘기도 많이 나누고 좋은 인연 쌓았다고 들었는데요?

여: 그렇습니다. 저는 참 운이 좋나 봅니다. 지난해 9월에 연변자치주 창립 60주년 생방송, 그리고 동북아 박람회 생방송을 계기로 연변과 장춘에 가서 청취자들과 뜻깊은 자리를 만들었는데 이렇게 반년여만에 다시 이런 소중한 만남이 생길줄이야

남: 서로 만나면 만날수록 넘쳐나는 것이 정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방송의 열성 청취자분들과 만나면 그런 가족의 정이 더 물씬 풍길것 같은데요.

여: 그럼요. 청취자들과 만나고 돌아와서 방송할때면 눈앞에 그분들의 모습이 삼삼합니다. 지금도 이 방송을 청취하고 계시는 분들의 모습이 떠오르는데요. 그야말로 우리 방송의 열성 청취자분들입니다. 매일 방송을 청취하시면서 청취 소감도 차곡차곡 열심히 기록해 왔더군요. 우리 방송을 청취하면서 고맙고 재미있는 사연이 있었는가 하면 따끔한 지적도 없지않았습니다.

남: 방송을 꾸리는 저희한테는 살이 되고 피가 되는 말씀이지요.

여: 네. 프로그램이 재미있고 들을만 하다는 얘기를 들을때는 어린이처럼 흥분되고 고맙고 지나친 칭찬에 부끄럽기까지 했구요. 제가 맡고 있는 중국음악 같은 경우, 중국 노래를 너무 많이 내보내서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따끔한 지적을 받을때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어들어가고 싶은 생각이랄까요? 하지만 프로그램을 아끼고 정말 사랑하는 그분들의 마음을 알기에 더없이 고맙고… 지적하신 프로그램 의견에 대해서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받아들일수 있었습니다.

남: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의 각도에서 참으로 이해가 갑니다. 사실 모든 프로그램 역시 매 방송인들의 신중한 소재 선택, 프로그램 구상, 제작으로 완성이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프로그램 제작 의도가 청취자분들께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청취자들 입장에서는 또 나름대로 즐기는 프로그램도 있잖아요. 제 생각에는 소통이 부족해서가 아닌가 싶은데요.

여: 그렇지요. 이런 청취자 만남 행사 뿐만아니라 편지나 이메일, 전화로 청취자들과 보다 원활한 소통이 유지된다면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다가갈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남: 네. 더 좋은 프로그램. 더 알찬 프로그램, 여러분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배경음악 높였다 다시 내려우며

남: 임봉해씨. 이번 연변 출장길에 우리 열성 청취자들과의 만난외에 또 특별한 분들을 만나고 왔다면서요.

여: 그렇습니다. 요즘 저의 얼굴이 좀 더 활짝 핀것 같지 않습니까?

남: 음~ 글쎄요. 항상 주변에 해피 바이러스를 전파하는지라… 요즘은 더 즐거워 보이네요.

여: 그래요? 감사합니다. 사실 그 분들한테서 행복 바이러스를 살짝 훔쳐왔거든요?

남: 네? 행복 바이러스요?

여: 생활상, 물질적으로는 변변하지 못하지만 정신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분들인데요. 매일매일 베푸는 사랑의 마음을 가진 그들, 베풀면서 더없이 행복해 하는 분들을 만나뵙고 왔습니다.

남: 어떤 분들인지 참 궁굼합니다.

여: 제가 간단한 힌트를 드릴까요? 노래 힌트입니다.

[学习雷锋好榜样]노래 한토막 깔며

남: "뢰봉을 따라배우자" 노래 아닙니까?

여: 딩동댕~ 정답입니다.

남: 아~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에서 유명하다는 "뢰봉반"을 다녀오셨군요.

여: 그렇습니다. 그럼 오늘은 "뢰봉반"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사랑의 전도사 "뢰봉반"의 이야기

(사진설명: "노인 뢰봉반" 성원들(좌측으로부터) - 박철원, 허애자, 리해숙, 김봉숙, 한무길)

음향~뢰봉반 지진재해 모금관련 회의 진행중

남: 회의중인가본데요.

여: 얼마전 사천 아안지진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잖아요. 마음이 여린 "뢰봉반" 성원들은 가만 있을 분들이 아니죠. 특별히 지진재해 모금 관련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계속 들어볼까요?

음향끝까지[1'36"]

남: 방금 회의를 사회하던 분이 혹시 "뢰봉반"의 반장입니까?

여: 네. "뢰봉반"의 반장. 김봉숙 할머니입니다.

남: 아~ 맹인 김봉숙 할머니 아닙니까? 지난 2008년 문천 지진때 결혼반지를 팔아 사천지진 이재민들에게 지원한 할머니잖아요.

여: 그렇습니다. 그 당시 37년동안이나 간직해왔던 금반지를 팔아 사천성 문천지진재해구에 의연하여 사람들을 감동시켰지요. 두 눈이 실명된 김봉숙할머니는 라디오에서 사천성 문천에서 대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은후 사색끝에 37년동안 보관해두었던 금반지를 의연하기로 결정했는데요. 이 금반지는 1971년 결혼1주년때 김봉숙할머니의 남편이 김봉숙할머니에게 선사한것이었습니다.

남: 저희 방송을 통해서도 보도한적이 있었습니다. 서로 의지하며 생활하던 남편이 돌아간후부터 매일 깊은밤이 되면 늘 이 반지를 만지면서 반지와 함께 마음속의 애환을 나누었던 특별한 반지가 아닙니까?

여: 그렇습니다. 얼마전 사천 아안에서 발생한 이번 지진재해때도 역시 선뜻 나섰는데요. 그때와 마찬가지로 역시 혼자가 아닌 "뢰봉반" 성원들 모두 함께 나섰습니다. 그의 얘기를 들어볼까요?

사랑의 전도사 "뢰봉반"의 이야기

(사진설명: "노인 뢰봉반" 성원들(좌측으로부터) - 허애자, 리해숙, 김봉숙, 한무길)

음향 [2'57"]-뢰봉반 모금 상황

남: 14명이 무려 9250원을 모금했네요. 참 대단합니다.

여: "뢰봉반"성원들뿐만아니라 사회에서도 "뢰봉반"과 함께 하겠다고 선뜻 성금을 내어주신 세분, 이분들은 김봉숙 반장의 큰 자랑거리로 되었습니다.

남: 이 방송을 청취하고 계시는 일부 청취자분께서 "뢰봉반"에 대해 잘 모르시겠는데 먼저 "뢰봉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시죠.

여: 네. 뢰봉은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아주 익숙한 이름입니다. 뢰봉을 따라배우는 열조는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갈수 있습니다. 1963년 3월 5일 모택동 동지가 "뢰봉을 따라 배우자"란 제사를 발표했는데요. 그때로부터 해마다 3월 5일은 도덕모범인 "뢰봉을 따라배우는 날"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연길시 북산가도의 "뢰봉반"은 2004년 3월 5일에 설립되었는데요. 지금 14명의 노인들로 무어져 사회적으로 큰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뢰봉따라 50년 세월을 걸어온 한무길 할아버지가 "뢰봉반"을 설립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음향 [1'54"]-설립 계기. 뢰봉과 비슷한 점 찾기.

남: 키마저 뢰봉과 같다는 한무길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참 인상깊네요.

여: ㅋㅋ 한 사람이 좋은일을 한번 하기는 쉬워도 한평생 좋은 일만 하고 나쁜일을 하지 않기는 결코 쉬운일이 아니잖아요. 한무길 할아버지가 바로 이 쉽지않은 일을 장장 50년을 찾아한 분입니다.

남: 50년 세월을 오직 뢰봉만 바라보고 걸어오신 분이란 말씀인가요?

여: 그렇습니다. 올해 81세인 한무길 할아버지는 연변조선족자치주 당위 당사연구실에서 리직하고 노간부 당지부서기 직에 사회의 10여개 직무를 겸하고 있습니다. 그의 부인은 1971년에 좌측페전엽을 떼어내고 2005년에는 심장수술도 받다보니 체중이 겨우 33킬로그람인 장기환자입니다. 한무길 할아버지는 호주이자 주부로 모든 가무를 전담하고 있는 실정인데요. 그도 과도한 피로로 15년전 뇌경색에 걸렸었습니다.

남: 사실 81세 고령에 부인까지 돌봐야 하는 할아버지가 사회를 향해 사랑의 마음을 돌릴 여유가 별로 없겠는데요.

여: 그렇지요. 하지만 그는 뢰봉처럼 "몫"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민구역의 상하수도, 학생과 노인안전, 문체활동, 불우이웃돕기, 환경위생, 주민생활의 구석구석을 낱낱이 살피며 주민들이 편하고 즐거운 생활을 위해 불구인 다리로 헌 자전거를 타고서 쉴새없이 달리고 있습니다.

남: 정말 산 뢰봉이 따로 없네요.

여: 그렇지요. 매일 새벽과 밤시간에 가무를 처리하고 짬만 나면 신문 스크랩을 하군 하는데요. 이렇게 얻은 지식으로 후대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남: 사회적으로 강의도 하신다는 말씀인가요?

여: 그렇습니다. 노인대학에서 두가지 언어로 강의하고, 한족학교 조선족 학교마다에 그의 발자취가 많이 찍혀 있습니다. 지난해 한해만해도 70여차례 무료 강의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남: 대단합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하지만 무료 강의를 하시고… 또 사회적으로 모금행사에도 적극 나선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 그렇습니다. 한무길 할아버지가 내비친 사랑의 손길은 이미 7만여원이 넘었습니다.

남: 81세 할아버지가 이미 7만여원을 넘게 사회에 지원했다구요?

여: 네. 맞습니다. 방금 위에서 살짝 언급해드린 맹인 김봉숙 할머니, 뢰봉반 반장을 기억하십니까?

남: 기억나고 말구요. 저희 방송 청취자들의 제보를 통해 얼마정도 알고 있는데요. 혈혈단신으로 최저생활보장금에 의탁해 생활하고 있는 분이잖습니까. 하지만 사랑의 마음은 누구보다 풍요로운 분이지요.

여: 그렇지요. 김봉숙 맹인 할머니는 젊은시절 29살짜리 딸을 잃고 상심이 커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요. 거기에 10년전 눈이 되어준 남편을 잃고 헌 창고세방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방송에서 전해들은 한무길 할아버지가 안해와 상의한후 영예군인 무혈금 5만5천원을 꺼나 32평방미터 되는 화장실달린 아파트를 사서 김봉숙 할머니가 편하게 생활할수 있도록 마련해주었습니다.

사랑의 전도사 "뢰봉반"의 이야기

(사진설명: 기자의 취재를 받고 있는 "노인 뢰봉반" 성원들)

아직도 그때 그 당시 한무길 할아버지 내외분의 도움을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해하는 김봉숙 할머니인데요. 그의 얘기를 들어보시죠.

음향 [20" + 1'42"]-주변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김봉숙 할머니. 한무길 선생이 집 사준 사연

남: 집을 선뜻 사준다는 결단은 쉽지 않겠는데요. 하물며 집에 부인도 환자고, 두 분 모두 몸도 불편하신데… 참 대단합니다.

여: 그뿐만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마다 이런 정경이 반복됩니다.

음향-전화벨소리 [35"]

남: 전화 통화중이네요.

여: 그렇습니다. 앞을 못보는 김봉숙 할머니, 혼자 생활하시는 할머니가 근심이 되어 10년동안 하루도 게을리지 않고 매일 아침마다 꼭 안부 전화를 걸어주었습니다.

음향 – 17"- 매일 아침 전화통화, 길게는 한시간까지 통화, 하루 일과 회보,

남: 매일 새벽 5시정도의 안부전화… 그것도 1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81세 할아버지, 정말 말 그대로 뢰봉 할아버지가 틀림없습니다.

여: 이런 뢰봉은 한무길 할아버지 한분만이 아닙니다. 노인 뢰봉반의 14명 성원들, 모두 산 뢰봉입니다. 이번 연변 취재길에 제가 직접 그분들을 찾아나섰습니다.

음향 집 방문 32"-현장음. 따뜻하게 맞이하는 성원들

여: 앞 못보는 김봉숙 할머님네 집이 바로 노인뢰봉반의 반부였습니다. 문에 들어서자 반장 김봉숙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남: 목소리만 들어도 참 열정적인 분이라는게 느껴집니다.

여: 그렇지요. 집에 들어서니 맹인 할머니네 집이라고 느껴지지 않을만큼 깔끔했습니다. 모든 정리정돈이 너무 잘 되어있었구요. 집안 곳곳에 상장과 감사패들이 즐비하게 놓여있었습니다.

뢰봉반 성원인 박철원씨의 소개를 들어보시죠.

음향 1'58"-집안 상장과 사진 소개

남: 소개를 들으니 저도 그 자리에 서 있는것 같습니다. 참 생동합니다.

여: 그렇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뢰봉반 성원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는데요. 저마다 손에 음식을 가득 들고 왔습니다.

음향 23" – 현장음. 성원들 속속 도착

남: 혼자 계시는 김봉숙 할머니가 걱정이 되어 그렇겠지요.

여: 맞습니다.

음향-음식 들고오게 된 계기-할머니 걱정 [1'27"]

남: 참 훈훈한 분위기입니다.

여: 그렇습니다. 시작부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런 훈훈한 분위기에 젖어 저도 행복 바이러스를 듬뿍 얻어왔습니다.

남: 뢰봉반 다른 성원들도 참 궁굼하네요.

여: 그렇죠. 이중에는 82세 고령이지만 촬영 애호가인 철도할머니-연변사투리로 "철도아매"라고 부르는데요., 리해숙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불구의 몸으로 시장 고추가루매대를 운영하면서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선뜻 돕고 있는 51세 허애자씨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뢰봉반에 가입해 사랑의 성금을 펼치고 있으며 또 이런 감동의 사적들을 사회에 널리 알리는 기자역할을 하고 있는 69세 박철원씨, 참 일일이 소개해 드리지 못하지만 매 사람마다 사랑의 전도사이고 살아있는 뢰봉임은 틀림없습니다.

사랑의 전도사 "뢰봉반"의 이야기

(사진설명: "노인 뢰봉반"이 받은 영예증서와 감사패)

그분들의 이야기도 잠간 담아왔는데요. 함께 들어볼까요?

먼저 철도아매라고 불리우는 82세 리해숙 할머니가 뢰봉반에 가입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음향1'21"- 뢰봉반 참가 사연

여: 치아로 고생하시는 한마을 할머니를 치과에 모시고 가서 개인 돈으로 틀이를 맞춰드리고 가정과 생활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를 수년간 도맡아 사랑의 성금을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는 따뜻한 할머니, 모두들 "철도아매"라고 친절히 부르는 리해숙 할머니였습니다.

남: "철도아매"… 이렇게 부르니 참 친근하네요. 리해숙 할머니, 따뜻한 마음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여: 그렇죠.

그리고 계속해 김봉숙 맹인 할머니를 어머니로 모시며 그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불쌍한 고아의 뒷바라지, 자신보다 힘들게 살아가는 주변사람들을 선뜻 돕고 나선 허애자씨의 이야기도 마이크에 담았습니다.

음향 [1'10"]-허애자씨 뢰봉반 참가 소감

여: 한무길 할아버지는 뢰봉반 설립 9년래 거둔 성과를 이렇게 총화했습니다.

음향 [2'36"] - 14명중 5명 불구자, 지난해 3000원 이상 지원한 분 5명. 도움대상 고정해 돕고 있는 분 5명. 상 받은 분 5명

남: 네가지, 다섯사람이 이룩한 35.7%의 기적. 물론 이후에 이 비례는 더 올라 갈 것이라 믿어마지 않습니다.

여: 취재를 마치면서 노인뢰봉반 김봉숙 반장으로 부터 특별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남: 무슨 선물이죠?

여: 궁굼하시죠.

음향-뢰봉반 마크 선물받은 기자. 뢰봉반 일원으로 가입 [1'10"]

남: 뢰봉반 마크를 선물받고 축하합니다.

여: 고맙습니다. 김봉숙 반장님. 저도 열심히 할게요.ㅋㅋ

남: 네. 뢰봉반의 창시자 뢰봉할아버지 - 한무길 선생, 그리고 반장을 맡고 있는 김봉숙 맹인 할머니, 철도아매 리해숙 할머니, 사랑의 마음이 들끓는 허애자씨, 부부가 함께 사랑나누기에 뛰어든 박철원 내외분… 이외에도 많은 뢰봉반 성원들… 이런 분들이야 말로 사랑을 베푸는 행복의 전도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 그렇습니다. 이러한 사랑과 행복이 수도 베이징에까지 전해졌는데요. 한무길 할아버지가 제일 정말 자랑스러워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함께 들어보시죠.

음향-습근평동지와 악수 1'05"(당이 자신에게 세가지를 주었다. 신앙과 대학졸업장과 영예증서, 2009년 수상때 습근평동지와 악수)

남: 한무길 선생의 마지막 한마디를 번역해 드리면 이러합니다. "저는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 리퇴직간부입니다. 연변 각 민족 인민들의 부탁으로 꼭 습근평동지와 악수하고 싶습니다."

사랑의 전도사 "뢰봉반"의 이야기

(사진설명: "노인 뢰봉반" 반부이자 반장 김봉숙 할머니네 집)

여: 이처럼 한무길 선생이 설립한 "뢰봉반"을 2006년 10월, 연길시 북산가두 당사업위원회에 맡겨 관리하게 한후 그날부터 이 한점의 불꽃이 연변대지에 타올랐습니다. 지금은 연길시 곳곳에 58개 뢰봉반, 만여명의 "산 뢰봉"들이 줄쳐섰습니다. 백발노인, 소선대원, 대학생, 택시기사, 노동자와 농민, 기관간부와 가도 주민들, 변방지대의 "군인 대리아빠"들… 수천명 연길뢰봉들이 한 좋은 일은 무려 3만여차, 애심성금은 150여만원에 달합니다.

남: 오늘 노인 뢰봉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동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고 주변에 이처럼 따뜻한 손길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고 오늘따라 기분이 한결 좋네요.

여: 역시 행복 바이러스를 옮았군요. 축하드립니다.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모든 분께서도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남: 네. 사회생활, 오늘은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에서 활약하고 있는 노인 뢰봉반에 대한 이야기를 보내드렸습니다. 애청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진행에 임봉해 김금철이었습니다.

여러분

남여: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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