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정현 민족예술단 꽃등 표현팀)
(음향1 -꽃등 표현 음악)
MC: 중국 서남부에 위치한 귀주(貴州)성 안순(安順)시 보정(普定)현은 예로부터 "꽃등(花燈) 예술의 고향"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꽃등"은 중국의 전통적인 초롱을 위주로 정월대보름과 같은 명절날에 공연하는 민속춤의 하나입니다. 보정현 꽃등 예술은 이미 3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현지 촌민들속에서 널리 전해졌던 보정현 꽃등예술이 오늘날 마을을 벗어나 무대에 올랐을 뿐만아니라 문화산업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현지에 취재를 다녀온 강옥기자와 함께 보정현 "꽃등" 예술의 발전 상황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옥기자,"꽃등"이라 하면 과거에 조명용으로 많이 씌였던 중국의 전통공예품-초롱을 많이 떠올리게 되는데요. 보정현의 "꽃등" 공연은 어떤것인지부터 소개주시죠?
강: "꽃등"공연은 주로 중국의 전통적인 초롱과 부채, 수건등을 손에 들고 흔들면서 춤추며 노래하는 공연 형식입니다. 노래는 주로 민요가락이 위주인데요, 내용이 간단하고 완정한 장절이 없는 이야기를 지역특색의 언어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이는 축복과 상서로운 언어로 감정을 표현하고 사실과 도리를 설명하는 표현방식입니다.
일찍 청나라 건륭년간에 보정현에는 이미 "꽃등" 공연팀이 있었습니다. 꽃등예술은 이들에 의해 한세대 한세대 전해지면서 300여년의 발전과정을 거쳐왔습니다. 이런 문화적 토양속에서 보정현 꽃등예술은 광범한 군중기초를 갖고 있습니다. 현재 보정현에는 140여개에 달하는 꽃등 예술단체가 있습니다.
MC: "꽃등" 예술은 이렇듯 보정현 현지에서는 남녀노소 할것없이 즐기는 민간예술의 하나라는 점은 알고 있는데요. 그런데 이 민간예술이 오늘날 마을무대를 벗어나 인근에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다니 참 궁금하네요.
강: 올해 70고령인 보정현 백암(白巖)진 일과수(一顆樹)촌 주국발(周國發) 노인은 보정현 민족예술단 성원입니다. 그와 그의 안해 이광영(李光英)씨는 10여살 때부터 반세기 넘게 꽃등 공연에 종사해 왔습니다.이제 더이상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할수는 없지만 여전히 예술단 고수(鼓手)로 아들, 며느리와 함께 같은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주국발 노인입니다.
(음향2- 주국발)
"저는 14살 때부터 꽃등 공연을 했습니다. 이제는 더는 춤추지 못합니다. 그때는 재래식 공연이였지요. 요즘 아들 며느리가 현대식으로 공연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폭적으로 지지합니다."
(70고령의 주국발노인은 보정현 민족예술단 성원이다.)
강: 주국발노인의 아들 주원송(周元松)은 몇해전까지만 해도 "꽃등"공연을 케케묵은 낡은 예술이라고 비웃던 젊은이입니다. 하지만 현재 아내 진민(陳敏)씨까지 이끌고 예술단 골간 배우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주원송의 말입니다.
(음향3- 주원송)
"예전에 저는 꽃등공연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유행음악이 훨씬 나았지요. 한번은 이웃 마을에서 몇몇 노인들이 우리를 청해 공연하게 했는데 마을 청년들이 모두 반대해 나섰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공연을 시작해 불과 몇분 안되는 사이 젊은이들이 욱 몰려들었습니다. 공연이 끝난후 전체 마을 촌민들이 우리를 환송했습니다. 아마 그 젊은이들도 저처럼 "꽃등" 공연은 케케 묵은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상상외로 그것이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지금은 현대가무도 있고 전통적인 "꽃등" 프로그램도 있고 소품도 있습니다. 젊은이들도 모두 즐깁니다."
(주국발 노인네 아들,며느리도 예술단 성원이다.)
MC: 꽃등공연은 노인들이나 즐기는 민간예술이라는 편견을 바꿔버렸다는 얘기네요,
강: 그렇습니다.하지만 보정현 꽃등예술이 처음부터 각광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보정현 민족예술단의 전신은 백암진 일과수 예술단인데요,예술단 이전강(李全江) 단장은 예술단 설립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억했습니다.
(음향4- 이전강)
"처음에는 진의 명망높은 어르신이 직접 청첩장을 써가지고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공연이 필요한가고 묻군 했습니다. 수십명이 수고스럽게 공연하고도 끝나고 나면 30원, 50원을 받기가 일쑤였습니다."
(보정현 예술단 이전강 단장 예술단 상황 소개)
MC: 듣는이의 마음을 짠하게 하네요.
강: 4년간의 발전을 거쳐 예술단은 공연애호가들로 구성된 "꽃등"공연팀으로부터 점차 전문화한 예술단체로 부상했습니다. 예술단은 귀주성 농민예술제 등 행사에서 수차 영예를 받았으며 그들의 공연프로그램을 녹화한 동영상은 현지 촌민들 속에서 널리 환영을 받았습니다.
MC: 설립 당시와는 비교도 안되네요, 예술단의 영향력이 점차 커졌다는 얘기지요?
강:그렇습니다.예술단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면서 일부 촌민들은 논밭에 소를 매 놓고 손에는 채색 부채를 흔드는 "꽃등"공연팀 일원으로 등극했습니다. 예술단의 왕맹(王猛) 부단장은 현지에서 꽤나 알려진 건축 책임자입니다. 토목공사로 연간 수입이 인민폐 20만원 이상에 달하는 그는 꽃등 공연에 심취돼 본업은 뒤전이기가 일쑤라고 합니다.
(음향5- 왕맹)
"한차례 공연을 준비하기까지 10일에서 15일이 걸립니다. 제가 빠지면 공연 수준이 떨어질것은 뻔합니다. 한번은 경연을 위해 300원을 들여 사람을 청해 집을 짓게 한후 공연하러 갔습니다. 공연이 끝난후 집 기둥에 문제가 생겼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재벌 공사에 원자재 비용까지 인민페 만원정도 손실봤지요. 솔직히 회당 공연에 100-200원의 보수를 받는것은 저한테 큰 돈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술단이 점차 정규화 되고 있어 이 돈을 받을때마다 더없이 기쁩니다."
MC: 이런 노력들이 오늘날 예술단을 이뤄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강: 그럼요, 현재 예술단 공연비용은 2008년의 인민폐1200원으로부터 6000원으로 늘었고 현을 벗어난 공연은 13000원에까지 받는다고 합니다. 보정현민족예술단 이전강 단장은 지난 4년사이 예술단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소개합니다.
(음향6- 이전강)
"처음에는 예술단 공연이 일년에 7-8회 였는데 올해는 60차에 달했습니다. 예술단 수입도 1년에 4만 5천원으로부터 지금은 70-80만원에 달합니다. 팀원들도 한차례 공연이 끝나면 100-200원 보수를 받을수 있습니다."
MC:촌민들속에서 민간예술로 전해지던 보정현 꽃등 예술이 마을을 벗어나 무대에 오르고 촌민들이 재부를 창조하는 방식으로 부상했다니 참으로 놀랍네요.
(보정현 민족예술단이 거둔 풍성한 성과)
강: 이뿐만이 아닙니다. 백암진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마관(馬官)진의 보정현 마관문화예술발전유한책임회사는 기업의 형식으로 꽃등예술을 발전시키고 있는데요. 무대우의 농민배우가 모두 기업의 주주라고 합니다.
MC: 농민배우와 기업의 주주,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강: 마관진은 귀주 서로(西路) 꽃등의 발원지로서 일찍 1994년에 "귀주성 꽃등예술의 고향"으로 명명됐습니다. 보정현 마관문화예술발전유한책임회사는 보정현 마관진 마포(馬堡)농민예술단으로부터 발전된 기업입니다. 2010년 11월에 세워졌는데요. 귀주성에서 처음으로 농민배우들이 주식제 형식으로 일떠세운 민영 문화산업 발전회사입니다. 기업책임자 장문무(蔣文武)는 회사 설립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억합니다.
(음향7- 장문무)
"회사 설립전 우리는 3개월간의 시간을 들여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회의때 모두 찬성한다더니 중도에서 그만두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회사가 수익을 내면 23%의 주식이윤을 얻을수 있지만 결손하면 23%를 손실볼수 있다는 말에 모두들 위험 부담을 생각한것입니다."
MC: 솔직히 애호나 취미로 꽃등 공연에 참가할수는 있지만 수익과 손실을 모두 감안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참여적극성이 높지만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강: 그렇습니다. 적지않은 촌민들이 회사의 설립에 대해 반신반의할때 가장 앞장에 섰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회사 예술단 노효홍(盧曉虹) 단장인데요, 일찍 심천에서 10년간 품팔이를 했던 그는 2005년 보정현 마관진 마포예술단 설립을 위해 심천의 일자리를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2010년, 예술단이 기업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을때 그녀는 또한번 앞장에 섰습니다. 노효홍 단장입니다.
(음향8- 노효홍)
"당시 장문무가 4만원을 내고 제가 3만5천원을 냈습니다. 예술단은 제가 맡고 장문무는 회사 경영을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앞장서 위험 부담을 감당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더구나 가입하지 않을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여 우리부터 앞장섰습니다."
강: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회사는 최종 16명의 주주가 탄생했습니다.
(마관문화예술발전유한책임회사의 수공예제품)
MC: 주식제 회사라 하면 고정된 수입과 이윤분배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공연이 있으면 공연비용을 나누고 공연이 없으면 농민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던 예술단과는 다르다고 생각되는데요.
강: 그렇습니다. 회사 종업원들이 일년 사시절 일감이 있고 수익을 얻을수 있도록 하기 위해 회사에서는 예술공연과 관광수공예 꽃등제작, 민간혼례봉사, 마관특색국수판매, 지방극 탈 제작을 일체화한 경영모식을 내왔습니다. 회사는 지난해 수익 인민폐100만원을 창출한데 이어 올해는 120만원 수익을 올릴 전망입니다. 기업 책임자 장문무는 곧 이윤 분배를 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음향9- 장문무)
"당시 우리는 3년후 이윤을 나누기로 약속했습니다. 배우들이 공연에 참가한 기록부에 따라 수익을 기록합니다. 이런 비용을 제외한후 순 이윤의 30%를 이윤부분으로 나누게 됩니다."
(마관문화예술발전유한책임회사의 특색국수)
강:경제적 효과성 외에도 회사에서는 후비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깊이 느꼈습니다. 꽃등 문화를 계승발전시키고 출연진을 안정시키기 위해 회사는 마포농민예술단 청소년 꽃등예술양성센터를 내왔습니다.회사 예술단 노효홍단장입니다.
(음향10- 노효홍)
"꽃등 예술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실전될수 없습니다. 우리는 학교와 손잡고 꽃등반을 내왔습니다. 매 주마다 학교를 찾아 과외활동 형식으로 양성을 하고 있습니다. 2년전부터 양성반을 찾는 학생이 100여명 정도 되는데 기초가 좋은 학생을 선발해 공연에 참가시키고 있습니다."
(회사는 일전에 귀주성 "백천만"혜민공정 문예선전대 시험점으로 지정됐다.)
강: 기업의 미래 발전에 대해 기업책임자 장문무는 예술공연은 영혼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따라서 단일한 꽃등 공연에서 벗어나 스토리가 있고 예술성이 강한 음악, 무용, 그리고 현지의 관광업과 결부해 더욱 큰 발전공간을 찾을것이라는 포부를 전했습니다.
MC: 이들의 노력으로 보정현의 꽃등 예술이 문화 산업으로의 더 큰 발전을 이룰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강옥 기자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강:감사합니다.
MC: 300여년의 꽃등예술발전역사를 갖고 있는 보정현에는 보정현 민족예술단, 보정현 마관문화예술 발전유한 책임회사와 같은 예술단체가 140여개나 있습니다. 애착으로부터 직업으로, 농민예술가로부터 기업의 주주로, 꽃등예술을 둘러싸고 펼쳐낸 이들의 전설같은 이야기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