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건물- 중국 건축사상 또 하나의 기적

cri2013-12-04 16:23:08

휘파건물- 중국 건축사상 또 하나의 기적

휘파건물- 중국 건축사상 또 하나의 기적

MC: 옅은 안개속에 쌓인 회색 지붕과 흰 벽으로 된 가옥, 엇갈린 배열이 제법 정취가 있는 마두벽, 휘주 옛거리에 볼 수 있는 특색있는 휘파건물의 모습입니다. 휘파건물은 중국 고건물사상 가장 중요한 유파 중 하나로 내부구조를 보면 통풍채광 창구인 천정이 있고 외곽으로 보면 벽과 기와의 대조적인 색상으로 단아함이 풍기며 주로 목조, 전조, 석조 등 조각으로 건물을 장식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휘파건물의 이런 특징과 풍격이 주로 민가와 사당, 패방 등 건물에서 구현되는데요. 오늘은 휘파건물의 집중지역인 안휘 굉촌과 당월패방으로 여러분을 안내하려고 합니다. 오늘도 역시 "2013 CRI멀티미디어 내외기자 안휘행" 제2회 인문경관인 굉촌과 당월패방에 대해 본 방송국 권향화 기자와 함께 합니다. 권향화 기자 어서 오세요.

기자: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기자 권향화입니다.

MC: 황산에 이어 굉촌과 당월패방에도 다녀왔다면서요?

기자: 네. 황산은 조물주가 만든 자연의 비경이라면 굉촌민가와 당월패방군은 고대 사람들이 손수 지은 고건물로 저한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웅장한 건축에 섬세한 목조조각을 가미한 건물들을 보면서 고대 사람들의 슬기와 지혜에 깊이 탄복했습니다.

MC: 네. 그럼 먼저 굉촌에 대해 이야기 나눠볼가요? 간단하게 소개해주시죠.

기자: 안휘성 황산시 이현(黟县) 서북쪽에 자리잡은 굉촌은 총 면적이 19.11헥타르이고 약 396세대에 총인구 1212명입니다. 굉촌은 북송시기 건조해 근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데요 원래 왕씨대가의 집거지였습니다. 화재로 부득이 굉촌에 이사온 왕씨는 풍수가를 청해 마을을 소의 모양으로 배치해 독특한 풍경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자: 굉촌은 산에서 샘물을 끌어들여 각 수로를 통해 가정에 생활용수를 공급했 집집마다 문앞에 냇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 수로는 마을의 중앙으로 흘러 반월형(半月形)의 연못인 월소(月沼)를 형성하고 남쪽으로 남호(南湖)를 이루었습니다. 현재 굉촌에는 비교적 완벽히 보존된 명청시기의 고건물이 약 130여개 있는데요 명청시기의 대중들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굉촌은 "그림속의 마을"이라는 미명을 얻고 2000년 11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MC: 네 그렇군요. 참으로 기발한 마을설계네요. 넓디넓은 황하유역에서 작은 하천까지 고대문명의 형성은 항상 물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굉촌에 있어서 역시 물은 신화이고 생존의 지혜가 아닐가 싶습니다. 굉촌에 가보니 첫인상이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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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굉촌에 들어서자 수려한 산과 고요한 호수사이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휘파 가옥이 한눈에 안겨왔습니다. 층층이 쌓인 도시적 건물과 달리 흰벽과 회색 기와로 된 단아하고 소박한 건물에서 이색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맑디맑은 호수에는 가옥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운치를 더했는데요 참으로 자연과 인문이 교묘하게 결부되어 한폭의 정지된 그림과 같았습니다. 이 곳은 참 세월을 비껴간채 태초의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흡사 타임머신을 타고 천년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아찔한 건물도, 차량으로 꽉 막힌 도로도, 귀에 거슬리는 도시의 소음도 없이 모든 것이 평온하고 고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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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라면 아마 많은 화가들과 촬영가들이 찾을 것 같은데요.

기자: 네 물론이죠. 저도 그림솜씨가 있다면 정말 터를 마련해서 이 아름다운 풍경을 하나도 빠짐없이 스케치에 담고 싶은 충동이 있었습니다. 가이드의 소개에 의하면 해마다 근 20여만명의 미술학원 학생들과 촬영가, 건축가들이 굉촌을 찾는다고 합니다. 마침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학생을 찾아 인터뷰했는데요 그가 본 굉촌의 소감 들어볼가요?

[음향 학생소감]

"전 굉촌에 온지 한 사흘 되었는데요 이곳 풍경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특히 이 남호의 풍경이 아름다워 마치 그림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머무는 동안 작은 아치형 다리도 그렸고 마두벽, 이름난 남호서원 등을 그렸습니다. 전 굉촌 풍경이 참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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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마을 외곽 풍경도 잠시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은 학생이 그림에 담았던 남호서원으로 향했습니다.

MC: 남호서원 얼핏 들으면 옛 서당 같기도 한데요 어떤 곳인가요?

기자: 남호서원은 옛날 왕씨 가문의 자제들이 글을 익히던 서당인데요 이에 대한 가이드의 소개 함께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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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향 남호서원 소개]

"190여년전의 건물인 남호서원은 왕씨가문의 사람들이 돈과 힘을 모아 지은 서당입니다. 마을의 왕씨성을 가진 아이들은 무료로 서당에서 글을 익힐 수 있습니다. 지도당(志道堂)이라는 교실은 서로 의지가 맞고 생각이 일치하다는 뜻에서 명명한 것입니다. 지도당은 국가를 위해 인재를 양성하는 곳입니다. 구조는 대체로 간단해 내부의 기둥과 대들보를 채화로 화려하게 장식하지 않았지만 건축재료에는 신경을 써서 골랐습니다. 이 기둥은 은행나무로 만들어졌는데요 은행나무는 쉽게 부식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들보는 녹나무로 만들어져 장향이 나고 벌레의 침식도 막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계몽각(启蒙阁)은 해빛이 주로 이 천정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데요 휘주의 상인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은 황금이요 눈은 은이라고 여겨 천장을 재부가 들어오는 재원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휘파건물에 대부분 이 천정이 있는데요 당시 마을의 남성들이 모두 장사길에 나서 굉촌에는 늙은이와 아녀자, 어린이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천정은 또 도둑을 막는 역할도 합니다.

MC: 그럼 이 건물에는 창문이 없는건가요? 천정을 통해 흘러내린 빗물이거나 녹아내른 눈물은 어떻게 처리하죠?

기자: 창문이 없이 천정으로 채광통풍하는 것은 휘파건물의 특색인데요 건물안에 오목하고 길게 패인 배수홈이 있어 빗물이나 눈물이 배수홈을 따라 천천히 호수로 흘러갑니다.

MC: 네 그렇군요. 참 고대사람들의 지혜가 돋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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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이 남호서원은 휘파건물의 특색을 다분히 풍기는 고대 건물인데요. 앞에는 잔잔한 호수가 흐르고 뒤에는 높은 건물이 지키고 있는 이 서원에서 옛날 학생들이 평온하게 글을 읽고 있는 모습이 서서히 그려졌습니다. 남호서원에서 나와 우리 일행은 반달모양으로 된 "월소"못에 이르렀습니다. 굉촌의 중앙에 위치한 월소는 풍수가 좋기에 왕씨가문의 가장 중요한 건물인 왕씨 총사당 낙서당을 이곳에 세웠습니다. 월소를 따라 지은 높고 큰 대저택에는 항렬이 제일 높고 덕망이 있는 사람들만 살았는데요. 거울처럼 알른거리는 월소못에 비낀 건물의 벽이며 기와며 느긋하게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노라니 굉촌의 축영같았습니다. 일행은 다음 코스로 승지당에 향했는데요 승지당은 굉촌에 현존한 고대 민가 137채 중 제일 대표성을 띤 고대 민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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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승지당이라면 혹시 민간고궁으로 불리우는 민가 맞나요?

기자: 네 맞습니다. 간단하게 소개드린다면 승지당은 1855년전후에 지어진 건물로 청나라 말기 소금장수인 왕정귀(汪定贵) 주택입니다. 전목구조로 된 승지당은 건축면적이 3천 평방미터에 달하고 나무기둥이 136개, 크고 작은 천정 9개, 방과 문이 각각 60개 있습니다. 전반 가옥은 내원과 외원, 전당과 후당, 동서 사랑채, 서재청, 어당청, 주방 등으로 나뉩니다. 전당은 전반 가옥에서 가장 정수라고 할 수있는데요 대문 뒤에 중문이 위엄있게 세워져 있고 양 켠에 측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MC: 왜 굳이 문을 세개로 나눈 이유는 무엇이죠?

기자: 네 물론 있죠. 전하는데 의하면 왕정귀는 소금장사로 부자가 된 후에 5품벼슬을 샀습니다. 그는 천한 상인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관가위엄이 있는 중문을 설치해 중대한 명절이거나 고관과 귀인이 방문할 때만 열어두었습니다. 일반 손님이 찾아올 때면 옆문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옆문의 상량에는 "장사 상"이란 글자를 그림으로 새겨 이 옆문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상인의 하위에 있다고 자신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MC: 참으로 청나라 때 장사군은 천한 직업으로 여겨졌는데요 그 당시 신분등급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여주네요.

기자: 네 그렇죠. 아무리 부자인 상인일지라도 신분 상승을 위해 벼슬을 사가면서까지 모지름을 썻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건물의 설계에까지 이 념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MC: 그러네요. 승지당도 휘파건물의 대표적 민가로서 어떤 특별한 점이 있나요?

기자: 승지당의 가장 큰 특점은 바로 규모가 방대하고 전조(砖雕), 목조(木雕), 석조(石雕) 조각이 정교하고 생동한 것입니다. 승지당의 앞정원 상량에 있는 조각 "당숙종연관도"(唐肃宗宴官图)에 대한 가이드의 소개 함께 들어보시죠.

[음향 승지당 소개]

"이 건물은 1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승지당의 곳곳을 둘러보면 목조가 비교적 많이 보이는데요 가옥의 전반 목조는 장인 20명이 4년간에 걸쳐 완성한 것입니다. 이 건물을 준공하는데 7년이 걸렸는데요 60만냥의 백은으로 건물의 기초시설을 짓고 황금 100냥을 들여 목조에 도금했습니다. 하여 이 건물이 준공되었을 때 내부가 금빛찬란하고 화려했습니다. 상량에 있는 목조는 은행나무에 조각한 것인데요 5,6센치미터의 간격으로 7,8개 층차를 조각해냈습니다. 이 목조의 내용은 당숙종 연관도인데요 식후에 거문고 타고 바둑 두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네가지 오락활동을 표현했습니다. 첫장의 오른켠 하단에 이발사가 관원의 귀를 파고 있고 관원은 한가로운 표정으로 다리 꼬고 앉아있습니다. 네번째 장의 오른쪽 하단에는 하인이 부채를 들고 물을 끓이고 있습니다. 이는 앞에서 아무리 앞에서 모든 일이 추진되어도 후방의 배합이 따라가야 함을 나타냅니다. 이 목조는 전반 목조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교한 목조입니다."

기자: 가이드의 소개를 따라 목조를 바라보니 조각한 인물도 많고 얼굴

모습이라던가 표정이 다 달랐습니다. 조각에는 귀를 파는 등 자그마한 동작까지도 선이 선명하게 그려냈고 층차가 분명해 높은 예술적 가치를 나타냈습니다. 참으로 목조의 걸작으로 불리우기에 손색이 없는것 같습니다.

MC: 황제에서 하인까지 형형색색의 인물과 활동을 생동하게 조각해내는 옛 사람들의 지혜와 능력에 정말 탄복하게 되네요. 사실 베이징 고궁 같은 경우 황제가 지고무상의 위치에 놓여있기에 목조의 소재가 대부분 용 아니면 봉황이였는데 승지당의 목조에는 많은 민속적인 경관도 담고 있네요. 어쩜 이로써 "민간의 고궁"이라는 미명을 얻지 않았을가요?

기자: 그럴수 도 있겠네요. 승지당이 워낙 고대민가의 대표로 굉촌에 온 관광객들은 꼭 이 곳을 들린다고 합니다. 승지당 앞에서 만난 관광객의 굉촌에 대한 생각 한번 들어볼가요?

[음향 관광객 소감]

"굉촌은 참으로 매력있는 마을인것 같습니다. 특히 수계가 발달하고 휘파건물의 특색이 다분해 굉촌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인문측면에서 보면 외지에서 온 장사군들이 많고 원주민들의 생활상을 보기가 힘들어좀 아쉬운 것 같습니다. 경제의 발전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그런 태초적인 모습을 많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

MC: 굉촌에 애착이 많은 관광객의 소감 잘 들었습니다. 관광업이 발전하면서 현지 특산물 판매와 숙박 등 일련의 경제적 요소가 가미되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입니다. 따라서 원래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는 것은 어렵기도 한데요 관광객의 수요가 있다면 앞으로 이 점에 대해서도 개선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자: 굉촌의 관광산업은 언제까지 관광객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앞으로 이런 바람이 많이 반영되면 굉촌의 원생태의 모습과 관광서비스 요소가 적절하게 조절되지 않을 가 싶습니다.

휘파건물- 중국 건축사상 또 하나의 기적

MC: 자 그럼 휘파건물의 또 다른 대표주자인 패방으로 가볼가요? 우선 패방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죠?

기자: 패방은 봉건사회에서 "충성하고 절개를 지키는" 공훈이 혁혁한 관원이나 조대의 흥성을 위해 "걸출한 기여"를 한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당시 정부에서 고향에 그들의 "공덕패방"을 세우고 많은 사람들의 본보기로 남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제가 다녀온 당월패방군은 안휘 남쪽 흡현 당월촌 동쪽 큰길에 위치해있는데요 명나라 패방 3개, 청나라 패방 4개로 총 7개 패방군을 형성했습니다. 이곳은 환남패방 중 가장 이름난 곳입니다. 아래 가이드의 간단한 소개 들어보시죠.

[음향 패방소개]

"당월촌패방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패방은 포씨 가문의 패방인데요 7개 패방이 시간순서에 따라 배열된 것이 아니라 옛 사람들이 평생 추구하던 네글자 "충, 효, 절,의"의 순서로 되었습니다. 사상 제일 일찍 세운 패방은 약 600년이 되고 제일 늦은 것도 190년 됩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바 포씨가문이 400년간 흥성해 18대 사람들이 여유로운 생활을 누렸습니다."

기자: 당월촌 7개패방에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들어있는데요. 그중 "낙선화시방"에 깃든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공유할가 합니다. 현지 가이드가 전하는 이야기 함께 들어볼가요?

[음향 의자 패방소개]

"네번째 패방은 7개 패방의 중심입니다. "낙선호시방" 인데요. 이 패방은 포숙방과 그의 아들이 베푼 선행을 알리고 격려하기 위해 세운 패방입니다. 당시 포숙방과 그의 아들은 회남 회북일대에서 활발하게 상업활동을 펼쳐 많은 부를 창조했습니다. 황하, 회하에 홍수가 일었을 때 그들이 구해낸 피난민은 10만여명에 달하고 800여리에 달하는 제방을 건설해주었습니다. 이 패방은 7개 가운데서 가장 늦게 축조된 것인데 청나라 가경 25년에 지은것으로 약 19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

기자: 이렇게 패방마다에 감동적인 이야기가 배어 있어 하늘을 향해 우뚝 치솟아 있는 패방들이 더욱 거룩해보이고 경이로웠습니다.

MC: 그럼 이 패방들은 휘파건물로써 어떤 특징이 있었나요?

기자: 당월패방군은 예전의 목질구조 대신 거의 전부 석재를 사용해 패방을 지었는데요 돌과 돌이 교묘하게 붙어서 세월의 세례를 받아도 끄떡없이 한 자리에 우뚝 서있습니다. 명나라 때 패방인 자효리방과 포찬효자방, 포상현상서방은 모두 기둥 4개로 이루어진 세 구간, 삼층으로 되었고 구조, 규격은 기본 비슷합니다. 단 조각내용이 단일하던데로부터 정밀해지고 풍부해졌습니다.

그외 나머지 청나라 때 패방은 충천식 기둥에 구조가 비슷합니다. 명나라 패방에 비해 조각형태가 더욱 정교하고 조각내용에는 우아하고 매혹적인 꽃도 있고 생생한 사자 등 여러가지 동물과 식물이 있습니다. 패방은 고풍적이고도 거룩한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우뚝 서서 그 범상치 않은 기개와 웅위한 자태를 자랑합니다.

MC: 지금까지 굉촌의 민가. 당월의 패방에 대한 소개를 통해서 휘파건물의 풍격과 특성을 알아보았습니다. 모든 건물의 설계가 과학적이고 장식 또한 맹목성보다 깊은 의미가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기계화는 물론 발달된 공구도 없이 축조된 고풍스럽고 화려한 휘파건물은 중국 건축사가 낳은 또 다른 기적이 아닐가 싶습니다. 오늘 휘파건물에 대한 소개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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