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장보고 전기관 안내표시)
신라인 장보고, 보통 중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인물이다. 하지만 위해에서는 이름 석자만 대면 모를 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것이 장보고 전기관(张保皋传记管)이 위해 적산에 자리잡고 있는터. 한국에서 민족영웅으로 알려진 장보고의 기념관이 왜 중국 위해(威海) 적산에 세워져 있을가? 이런 의문을 품고 필자는 일행을 따라 위해 적산 풍경구로 향했다.
(사진설명: 장보고 전기관으로 향하는 오솔길)
위해 적산 풍경구는 산동반도의 제일 동쪽끝에 자리잡은 영성(荣成)시 동남부의 풍경이 수려한 석도만 서안에 위치해 있다. 조선반도, 일본열도와 바다를 사이두고 마주하고 있는 석도항만은 산동반도에서 한국, 일본과의 해상거리가 가장 짧은 곳이다.
적산 풍경구에 들어서니 탁 트인 바다와 우뚝 솟은 산이 한눈에 한겨왔다. 그 사이의 올리막길을 지나는 내내 짙은 바다내음이 산바람을 타고 불어와 코를 자극했다.
가이드의 소개에 따르면 이 곳은 적산법화원(法华院)을 중심으로 세계에서 제일 큰 해신상인 적산대명신(赤山大明神), 한국 해장왕 장보고 전기관, 중국북방민속문화박물원인 영성(荣成)민속관, 중국 최대의 수석문화관인 세렴아석관(世廉雅石馆), 삼림공원 천문담(天门潭), 해상낙원 국제해수욕장 등 풍경구가 한데 어우러져 자연, 생태, 종교, 역사, 해양문화, 레저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테마관광지이다.
(사진설명: 장보고 동상)
녹음이 짙은 오솔길 계단을 따라 일행은 장보고 전기관으로 향했다. 전기관에 들어서자 큰 칼을 찬 장보고 동상이 한눈에 안겨왔다. 높이가 무려 8미터,무게가 6톤에 달하는 이 동상은 전기관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장보고의 영웅적 기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굳은 날씨에도 그의 위풍당당한 기상은 전혀 흐려지지 않았다.
장보고 전기관은 부지면적이 1.3평방미터이고 총 다섯개 전시구역으로 나뉘어 장보고의 굵직굵직한 행보를 하나하나씩 풀어주고 있었다.
기원 807년에 장보고는 친구 정년과 함께 적산포(현재의 석도항만)로 와 당나라 무령군에 입대했다. "용맹하고 씩씩해 말을 타고 창을 쓰는데는 장보고를 당할 자가 없었으니" 그는 곧 무령군의 소장으로 임명되었다. 적산포에는 많은 신라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불교를 신봉하고 있었다. 고향 사람들에게 정신적지주를 제공하고저 장보고는 당나라 정부의 허락을 받고 적산포에 법화원을 설립했다. 당시 신라 연해일대에 해적이 창궐하고 신라인이 노비로 팔려가는 행위가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장보고는 돌연 귀국을 결심한다. 귀국한 장보고는 병사를 거느리고 청해에 진영을 설치해 해적을 소탕하고 서남부 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했다. 해상을 안정시키고 나서 장보고는 당나라와 일본을 잇는 중계무역에 뛰어들었다. 그는 신라와 중국, 일본 삼개국을 상대로 해상무역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중심으로 재일신라인 사회와 재당신라인 사회를 연결하는 무역망을 구축하는 한편 조선업과 선박, 선원임대 등을 경영해 조선술과 항해술이 임대한 선원에 의해 아랍 등 지역까지 전해졌다. 아울러 장보고를 "사상 탁월한 해양상업 무역왕"으로 부르고 있다.
(사진설명: 장보고 전기관 전경)
장보고의 활약상은 전시관의 밀랍과 그림, 영상물, 유물 복제품, 장보고 시대의 무역선 복원 모형 등 150점의 유물을 통해 낱낱이 체현되고 있었다. 전시관 곳곳에서 장보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고 장보고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영용무쌍한 기백으로 전장을 누비고 불타오르는 정의감으로 해적을 물리치고 뛰어난 전략으로 중일한 해상실크로드를 개척하기까지 장보고의 일생이야말로 끊임없는 도전속에서 투지로 다져진 삶이 아닐가 싶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장보고를 민족영웅으로 추대하면서 장보고를 기념하기 위해 "장보고 대사 해양경영사연구회",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등 단체를 설립하고 장보고에 대해 전문적인 학술연구를 하고 있다. 장보고를 기념하고저 2005년 한국 KBS에서는 150억한화를 투자해 70부작 대하드라마 "해신"을 선보였다. 현재 장보고 전기관은 한국청소년 애국주의교육기지로 되었다고 한다. 관광구 책임자의 소개에 따르면 2005년 개방한 이래 이곳을 다녀간 관광객 총 800만명 중 한국 관광객이 100만명에 달한다. 한국 이수성 전임총리를 비롯해 13명 국회의원도 이 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사진설명: 당나라로 향하는 장보고(좌)와 정년(우) )
장보고 전기관은 중국 중앙정부로부터 외국인 전기관으로 세번째로 공식 승인을 받고 개관한 것이다. 약 1200년전 중한 해상무역통로를 개척해 우호의 길을 열어준 장보고, 오늘날 중한 양국의 교류를 위해 역사적인 의미를 보태주고 있었다.
전기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중한 교류 및 우호를 상징하는 장보고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 기념비는 세계 한민족연합이 주도해 10만달러를 적산그룹에 투자해 세워졌다고 한다. 특히 이 기념비 정면에는 "장보고 기념탑"이라고 씌여진 한국 김영삼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있어 더욱 눈길을 끌었다.
거친 파도를 가르며 해상의 길을 열어준 해상왕 장보고, 그의 행적은 오늘날까지도 끈끈한 뉴대로 중한 양국을 이어주고 있다. 장보고의 얼이 담겨있는 이곳 적산에서 그의 웅대한 기개를 피부로 느껴본다.
(사진설명: 전장에서의 장보고)
(사진설명: 법화원을 설립하고 있는 장보고 (좌2) )
(사진설명: 1200년전 장보고의 무역선)
(사진설명: 장보고 이야기를 제작한 드라마 "해신" )
(글/사진: 권향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