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살 좋은 오후, 창문가에 기대앉은 노인은 눈을 쪼프린채 안경테를 연신 추어 올리며 붓칠에 여념이 없다. 거칠고 투박한 손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가느다란 붓끝에서 굵고 약한 선들이 신비로운 화면을 이루고 있다. 지루한 기다림끝에 노인의 손에서 앙증맞은 양 모양의 흙조각이 완성되였다. 붓칠이 사뭇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노인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예전에는 찐빵이나 밀가루와 바꾸는 생계줄이였지유. 흙조각 수십개를 갖고 나가도 밀가루를 얼마 바꾸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인지라 어른들이 이 놈의 재주는 해를 더할수록 더 가난해진다고 했어요. 오죽하면 겨우 동냥보다 나은 재주라고 했을가요…"
봉상 흙조각 대표전승인 호심
대단한 솜씨라는 평가에 연신 손사래를 치는 그는 올해 85세 고령인 호심(胡深) 옹이다. "중국 흙조각의 고장"으로 불리우는 섬서성 보계시 봉상현 성관진 육영촌(陝西省寶鷄市鳳翔賢城關鎭六營村)에서 호심 옹은 유명인물이다. 그는 중국 민간 흙조각 예술가,공예미술대가,중국 민간 유명 전승인 등 명성을 두루 갖고 있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흙조각 작품은 하루 한두개 정도. 고령의 나이에 눈과 귀는 어두워 진지 오래지만 흙을 일고 모형을 만들며 조각하고 물감을 올리기까지 모든 과정에 호심 옹은 한치의 소홀함이 없다.
호심 옹은 조상들이 별 볼일없는 손재주로 간주했던 흙조각이 현재는 중국의 제1진 국가급 무형문화재보호 프로젝트에 편입되고 연속 두차례 중국 간지 우표에 실린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세세대대 가난을 벗지 못할것이라던 조상들의 예언이 빗나가도 한창은 빗나간것이라고 우스개를 했다.
관중평원(關中平原) 서쪽에 위치한 봉상현은 주진(周秦) 발상지로 영진창패(赢秦創覇)의 곳, 화하구주(華夏九州)의 하나로 꼽힌다.
봉상현 경내에서 출토된 춘추전국시기 및 한당 묘장(漢唐墓葬)에는 모두 순장한 도용(陶俑) 이 들어있다. 이는 현지의 흙조각 공예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20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봉상 흙조각은 "중국 민속문화 4대 흙조각" 중 하나이다. 봉상 흙조각은 붉은색과 푸른색,노랑색 물감을 위주로 하며 검은 선으로 그려 넣는 문양이 이색적이다. 주요 조형들로는12간지 동물 조형을 위주로 하는 장난감과 검보(臉譜),호두(虎頭),팔선과해(八仙過海), 민간 전설과 역사 이야기 속의 인물 조형이다. 봉상 흙조각은 위엄이 있으면서도 귀여운 조형과 선명한 색채,아름다운 곡선, 낭만적이고 신기한 문양으로 유네스코로부터 "아이들에게 선물하기 가장 좋은 선물"로 명명됐다.
봉상 흙조각은 봉상현 육영촌 현지에서 나는 흑유판 판토(黑油板板土)와 백색 봉세토(白色封洗土),질좋은 솜,찹쌀 등 6가지 천연 재료를 주요 원자재로 한다. 모형제작으로부터 물감을 올리기까지 10여가지 절차를 수요한다.
봉상현의 흙조각 말(馬)과 흙조각 양(羊)은 2002년과 2003년 연속 2년간 중국 우표 도안에 올랐다. 봉상 흙조각 발원지인 성관진(城關鎭) 육영촌은 "중국 흙조각의 고장"이라는 명성을 또 한번 세상에 떨쳤다.
"흙으로 빚은 인형이 재부를 창조하는 금인형이 된셈이지요" 호심 옹은 과거 인민폐 5원씩 판매되던 흙조각이 우표 도안에 오르면서 현재는 평균 30원 이상에 판매된다고 말했다.
봉상 흙조각 제 7대 전승인 호신명(胡新明)
호심 옹의 손자 벌인 호신명(胡新明)은 봉상 흙조각 제 7대 전승인이다. 그는 생계살이였던 할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미술에 대한 애착으로 스스로 흙조각 공예를 익혔다. 30여년간 흙조각 공예에 종사해온 그는 봉상 흙조각이 인제 명실상부한 가보로 전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봉상 흙조각은 현재 사회학자와 미술학자들로부터 서북지역 민간예술과 미술을 대표하는 한가지 산업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2008년 제4차 세계 수공예 박람회에서 우리나라의 400여개 참여 항목중 14개가 입상했는데 봉상 흙조각이 유일하게 세계 걸출 수공예 회장 인증을 받았습니다. 봉상 흙조각이 2009년에는 중국 민간문예 최고상인 산화상(山花奬)을 받았습니다. 관광제품 설계대회 1등상 등 근 200여개 상을 수여 받았습니다. 2011년 섬서성에서 두곳이 제1진 국가급 무형문화재 생산성 보호기지로 지정됐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곳 봉상현에 있습니다."
현재 봉상현 육영촌 촌민중300여 가구가 흙조각에 종사한다. 이들 수입은 연간 인민폐 600여만원 이상에 달한다. 가정단위의 흙조각 생산,판매 효과성을 제고하기 위해 육영촌은 또 전업 합작사의 형식으로 주문식 생산,판매 고리를 형성했다.합작사에는 현재 회원이80여명 있는데 이들은 연간 수익200여만원을 창출하고 있다.
호신명은 현재 중국 국내뿐만 아니라 독일,미국,싱가포르 등 나라의 주문량도 해마다 1만여건에 달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봉상현 흙조각이 이같은 명성을 얻을수 있은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것이 아닌 자연적인 문화 내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민간공예 전승과 경제효익의 모순도 피해갈수 없는 문제라고 꼬집었다.
"자고로 적은 물건이 귀한 법이지요. 장인들에 의해 수공으로 만들어지는 봉상 흙조각은 일년 생산량이 10만 여건밖에 안되기에 더욱 귀한것입니다. 공장 생산식으로 수만건씩 복제해 내는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전통문화는 예술과 공예로 구분해야 하며 생산은 통제적이여야 합니다. 경제적 효과성도 좋지만 전통문화에 대한 보호와 전승은 더욱 홀시할수 없는 문제입니다."
호신명은 향후 봉상 흙조각 문화 내실을 풍부히 하고 문화와 산업의 결합 접점을 찾아 무형문화재를 대해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현지 산업을 발전시키며 제3산업발전 관광농업,생태농업건설을 함께 추진할 구상이라고 밝혔다.
중국 우표 도안으로 그려진 흙조각 양
"인민폐 2억원 좌우를 투자해 새로운 산업원을 건설할 전망입니다. 현재 수준으로는 마을에서 관광객 100여명 주숙 접대도 역부족인데 앞으는1000명 주숙 체험 접대, 1만명 관광접대가 가능한 서북지역 민간수공예 집거지, 생산,보호,소매,도매를 일체화한 기지로 건설하려 합니다."
호신명은 현재 원자재 원가가 끊임없이 상승되고 타지로 품팔이를 떠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은 시점에서 새로운 발전 모식을 탐색하는것은 미룰수 없는 과제라고 말한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봉상 흙조각의 지명도가 제고되면서 조상들로 부터 전해진 손재주를 전수 받으려는 젊은이들이 한명 두명 느는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인들에게 쉽게 다가갈수있는 작품 창작에서 젊은이들의 새로운 시각이 도움 될것 같습니다. 세세대대로 물려온 조상들의 흙조각 공예가 진정으로 자손들에게 복을 주는 손재주로 남아야 하지요…"
호신명은 올해 20살에 나는 자신의 아들도 현재 대학에서 미술은 전공하고 있다면서 졸업후 고향에 돌아와 봉상 흙조각 공예를 전승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들에 이어 손주 세대에도 봉상 흙조각 공예를 전할수 있기를 바란다는 그의 얼굴은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글:강옥 / 사진:리창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