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현장일각)
베이징에서 가장 추운 날씨의 기록이 30년만에 깨뜨려졌습니다. 지난 며칠동안 수은주가 연일 떨어져 섭씨 영하 20도에 박근했습니다.
그러나 왕징 교문호텔에서 열린 베이징 조선족 설맞이 모임은 오히려 한여름 같은 뜨거운 열기를 발산했습니다.
1월 23일, 2016년 병신년 새해를 맞아 베이징 각 계층 조선족 대표 20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화합과 친목을 다졌습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베이징시 조선족기업가협회의 이춘일 회장은 모임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소망을 대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음향1 이춘일 회장의 말)
"오늘 행사는 우리 북경조선족사회를 말하면 해마다 한번씩 있는 모임인데요, 이런 행사를 통해서 북경 조선족사회가 더 같이 한맘 되고 단합되고 더 좋은 조선족의 풍토와 문화를 만들어가는 그런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현재 베이징에는 약 10만명의 조선족이 상주하는 걸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 온 다른 듯 닮은 사람들은 이날만큼은 함께 모여 고향의 향수를 달래고 정을 나누는 뜻 깊은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설맞이 모임은 국가 주악, 참석자 소개, 주최측 대표의 인사말과 귀빈 축사, 2015년 10대 뉴스 돌아보기, 기부금 전달식, 감사패 증정, 정음우리말학교 학생대표 감사문 발표와 학생 공연, 축하공연과 오찬, 민속놀이 등 순서에 따라 1,2,3부로 나뉘어 진행되었습니다.
(사진설명: '자선바자회' 현장)
와중에는 사랑과 행복 나눔의 '자선바자회'가 열렸습니다. 책이며 그림 작품이 바자행사의 주종 물품으로 되었습니다. 진행자의 맛 나는 소개와 구수한 조선말이 연회청에 울려 퍼지며 입장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끌었습니다.
(음향2 바자회 현장음)
"우리 함께 사랑의 마음으로 어린이들의 장끼를 격려하는 차원에서 그림을 구매하시기 바랍니다. 그림도 아주 잘 그렸습니다. 어린이 방 장식에도 참 좋을듯 싶습니다. 이런 그림 한폭을 그릴려면 어떤 그림은 몇일 그려야 할 것 같은데요……."
'자선 바자회'의 판매 수익 전액은 정음우리말학교 운영에 기부되었습니다.
정음우리말학교는 조선말 배움터가 없는 베이징의 조선족어린이들에게 민족언어와 문화교육 시설을 마련해주려는 취지에서 설립되었습니다. 초창기 30명 수강생으로 걸음마를 뗀 정음우리말학교는 현재는 120여명 어린이들에게 조선말과 문화를 가르치는 공익성 민족교육기구로 성장했습니다.
정음우리말 학교 중급회화반 채원규 학생은 베이징에서 태어나 현지의 학교에 다니지만 정음우리말학교에서 말과 글을 배워서 지금은 조선말을 구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음향3 채원규 학생의 말)
"처음에는 ㄱ.ㄴ.ㄷ.ㄹ.가 낯설었고 받침도 너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1년 동안 배우고 나니 이제는 글을 읽을 수 있고 간단한 문장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우리말로 일기도 씁니다."
정음우리말교실 중급 2반의 9살 난 윤조영 어린이는 자기 이름의 '유래'를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음향4 윤조연 어린이의 말)
"저의 아버지는 조선족이라는 의미의 조(朝)자에 영원할 영(永)자를 붙여 조선족으로 영원히 존재하길 바라는 의미에서 저의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조영 어린이의 이름에는 고향에 대한 그의 아빠의 그리움이 담겨 있었습니다.
조영 어린이의 아빠처럼, 엄마처럼 많은 젊은이들이 꿈을 안고 이 땅을 밟았습니다. 과연 베이징은 어떤 매력이 있을까요?
(음향5 한국 유학생 임현석의 말)
"베이징은 수도니까 인프라가 넓고 전 세계가 보는 것이 베이징이다 보니까 그만큼 기회가 많다는 것 그거 하나인 것 같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한국 유학생 임현석씨의 말입니다. 실로 베이징은 기회의 땅입니다. 하지만 정든 고향을 떠난 타향생활, 외국생활은 아무래도 힘들기 마련입니다. 가족과 떨어진 낯선 곳에서의 새 출발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또 꿈을 가질 수 있는 이곳, 꿈이 이뤄지는 이곳에 전세계의 사람들이 찾아와 모입니다.
설맞이 모임은 또 수도 베이징에서 살고 있는 남녀노소가 함께 모여 고향의 향수를 달래고 정을 나누는 자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음향6 베이징대학 역사학과 김청미의 말)
"베이징에 와서 제일 불편한 점이라면 가끔 집 생각이 나고 또 어머니, 할머니가 해준 집밥이 그립습니다."
베이징 대학에서 역사학과 과정을 밟고 있는 김청미 학생은 학교 조선족동문회 행사 때마다 꼬박꼬박 참가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모임과 마찬가지로 설맞이 모임은 그에게 향수와 부모의 그리움을 달래는 장소로 되고 있었습니다.
조선족 직장인 김연실씨도 이런 모임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전에 타향생활에서 제일 큰 적은 외로움이었다고 말합니다. 지난해 애심여성네트워크의 회원으로 되면서 남을 돕는데서 오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음향7 조선족직장인 김연실의 말)
"지난해는 사회봉사도 하면서 삶의 가치를 찾는 한해였다고 봅니다."
재중 한국유학생 곽기찬 씨도 이날의 설맞이 모임에서 월드옥타 회원들과 함께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대외경제무역대학에 재학 중인데, 현재 월드옥타 한인무역협회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베이징에 온지 6년된 그는 제2의 고향인 이곳에서 창업을 준비중이랍니다.
(음향8 한국 유학생 곽기찬의 말)
"졸업후 일단 베이징에 남을 생각이구요. 중국정부에서 취업비자나 거주증이 나올수 있도록 해줘서 저처럼 중국에 유학 온 한국친구들이 앞으로 많이 남아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베이징 노인협회 김영옥 노인은 이곳에 온지 1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퇴직을 하고 자식들을 따라 베이징에 온 김영옥 노인은 자신의 두 손으로 손주들을 키웠다며 뿌듯해 합니다. 어릴 때의 꿈이 가수였지만 그 꿈을 가슴에 묻어두다가 오늘 설맞이모임을 계기로 무대에 오른다며 활짝 웃었습니다.
(음향9 베이징 노인협회 김영옥 노인의 말)
"제일 행복할 때는 평일에 노인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 씩 모여서 춤추고 노래하며 또 공연 기회가 있을 때면 재능을 발휘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이와는 달리 베이징 노교수협회의 회원인 박금숙 노인은 노후의 즐거움을 그림에서 누리고 있었습니다.
(음향10 베이징 노교수협회 박금숙 노인의 말)
"그림을 그리면서 예술이라는 것은 이렇게 사람에게 흥취를 주고 기쁨을 주고 성취감을 주는 구나… 그림에서 물소리도 나는 것 같고 새소리도 나는 것 같고 꽃도 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올해 80세가 넘는 박금숙 노인은 몸이 아파 평소에 거동도 불편했었다고 합니다. 며느리의 권유로 그림그리기를 시작했다면서 지금은 건강도 많이 좋아졌고 매일 그림그리기에 몰두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무려 2,300점의 그림을 그렸고 일부는 잡지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박금숙 노인의 옆엔 항상 든든한 응원자인 김창복 옹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원앙새 같은 이 노부부는 모임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사진설명: 베이징 조선족 노인협회 공연)
(사진설명: 애심여성네트워크 코믹 뮤지컬)
(음향11 공연음악 혼합)
한편 민족의 전통예술과 현대 예술의 융합을 이뤄낸 공연은 볼거리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민간여성단체인 애심여성네트워크 회원들의 코믹 뮤지컬 '리허설'은 '유격대의 노래(游击队之歌)'와 '백모녀(白毛女)', '군밤타령', '축배의 노래'로 구성, 공연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며 장내의 분위기를 고조에로 이끌었습니다.
정말로 한파도 녹일 열기로 넘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난해를 마무리하고 희망찬 새해에 뜨거운 소망을 기탁했습니다.
"조선족사회 모든 분들이 새해 모든 소망 잘 이루시고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들이 잘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춘일 회장
"저의 꿈은 2016년 소망이라면 70이 넘은 나이에 신체가 건강하고 온 집안이 무고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꿈입니다."
—김영옥 노인
"회사에서 2016년에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바로 고향의 입쌀판매입니다. 고향의 입쌀이 중국 조선족 제일 브랜드로 만드는 게 새해 소망입니다."
—김연실 회사원
"영감도 지지하고 아들며느리가 지지를 하기 때문에 명화백의 수준에 도달하도록 노력해볼까 해요."
—박금숙 노인
"제가 아는 지인들 다 하시는 일 승승장구하시고 원하는 일 다 이루었으면 하는 게 제일 큰 새해 소원입니다."
—임현석 한국 유학생
취재: 이향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