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의 유명 경영학자인 조동성 인천대 총장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경영학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중국 난카이(대학의 석좌교수, 베이징대학 광화관리학원 초빙교수에 이어 장강상학원 교수 등으로 활약한 조동성 총장(이하는 조총장으로 약함)을 지금 함께 만나보겠습니다.
기자: 어서 오십시오. 바쁘신 와중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총장: 좋은 기회죠~
기자: 중국에는 자주 오시죠?
조총장: 제가 1990년에 처음 갔었는데 그때부터 제 여권에 찍힌 중국 도장수가 240-250개 될 겁니다.
기자: 최근 한차례는 언제 오셨나요?
조총장: 가장 최근에는 2016년 8월까지는 중국에 살고 있었고 2년 2개월동안 중국 거주민증까지 가지고 살고 있었고 2016년 7월 말에 인천대학교로 오면서 장강상학원과의 전임 교수로 풀타임으로 했었는데 지금은 휴직을 받고 인천대로 오면서 그때부터는 자주는 못가고 다만 기회가 있으면 가고 하는데 제일 마지막으로 2017년 12월에 서안에 가서 공자학원세계대회에 참가했었습니다. 전 세계에 공자학원이 600여개쯤 있다고 들었는데 공자학원을 유치한 대학 총장들이 다 모였거든요. 그때 행사에 참가해 인천대가 추구하고 있는 포커스리서치 집중적인 연구중심대학의 개념을 설명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기자: 그렇군요. 총장님은 1990년부터 중국에 수없이 다녀가셨다고 하셨는데 그동안 중국의 발전변화상을 견증하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조총장: 주마간산으로 본 정도죠~
기자: 올해로 중국은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렇다면 40년간 중국의 발전 변화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가요?
조총장: 중국은 지금 세계 역사를 새로 써내려가고 있다고 봅니다. 영국이 177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약 150년에 걸쳐서 선진국을 만들었고 미국은 184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선진국을 만드는데)100년으로 단축했어요. 일본은 1890년부터 1960년대까지 약 70여년에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이 150년 걸린 것을 미국은 100년, 일본은 70여년 걸렸는데 한국은 1960년대부터 2000년까지 50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중국은 1978년부터 2018년까지 40년만에 이루었습니다. 일인당 소득은 그렇지 않다고 그러지만 중국의 과학기술수준이나 또 국민들의 저력을 나타내는 문화수준, 이런 면에서는 이미 선진국 문턱에 올라갔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국가별 경제발전의 역사가 끊임없이 새롭게 쓰여지는데 그것도 새로운 국가는 선진국에 이르는 기간을 계속 단축해가는데 중국이 이번 40년 기간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자: '이웃이 잘되면 나도 덩달아 잘된다'~는 말도 있고 지금은 또 지구촌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서로 여러 가지로 얽혀 있는데요, 이런 중국의 변화 발전이 한국을 비롯한 인국이라든가 세계에는 어떤 영향을 가져다주고 있다고 보시는가요?
조총장: 지금 중국의 변화 발전상이 겉으로는 경제의 발전으로 보이는데 저는 사실 경제발전의 저변에 안에 숨어 있는 중국 역사의 저력, 중국 문화의 영향력이 얼마나 무서운가하는가를 정확하게 중국이 알려주고 있다고 봅니다. 중국이 부상하는 것이 단순히 등소평,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한 지도자 정책이 훌륭하기도 했죠. 그러나 그와 함께 5천년 중국 역사의 흐름 속에서 중국의 대국 궐기가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또 관운장의 의리로 대표되는 14억 중국인이 공유하고 있는 꽌씨(관계)라는 인간관계 문화가 오늘날 경제와 경영학에도 가장 중요한 덕목--의리, 신의, 이 이상으로 중요한 덕목은 기업경영이나 국가 경제에 더 이상 없습니다. 그것을 어느 나라보다도 정확하게 중국이 우리 모두에게 일깨워주고 있다고 봅니다.
경제나 기업의 경영활동이나 모두 한번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 되지 않습니까… 의리나 신뢰라는 것은 정말 한번 만들기는 어려워도 깨기는 쉽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모든 것을 장기간에 걸쳐서 진행하는 그런 역사적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마부작침이라든가 우공이산이라든가, 모든 현상을 장기간에 걸쳐서 보는 문화, 그런 문화를 지금 우리가 많이 배우고 있고 그때그때 하나 두가지에 환산에 의해 일희일비하지 않는 그런 문화적 깨달음을 우리에게 중국이 주고 있다~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많은 문화적 교훈을 얻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올해로 중한 양국은 수교 26주년이 되었습니다. 그간 양국간 제반 분야의 발전을 어떻게 보십니까, 혹시 사자성어나 간단명료한 한마디로 중한 양국관계발전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짚어주신다면요.
조총장: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공자님 앞에서 문자를 써야 되는데요, 한번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서 사자성어로 본다면 저는 과거, 1592년에 임진왜란이 있었는데 그후부터 1945년에 제2차 대전이 끝나면서 중국이 해방할 때까지 350년 사이의 한중 관계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사자성어, 고사성어는 순망치한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술을 다치면 이가 시러운 관계, 그때 당시는 조선이었는데 조선이 어려울 때마다 중국이 도와주고 그런 면에서 아마 중국도 단순히 도와준다기 보다는 조선이 다치면 중국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대외정책도 있고 또 이 두 나라간에 그 동안 좋은 관계의 의리도 있고 해서 그러한 좋은 관계가 계속 됐다고 봅니다. 그 다음에 1945년부터 수교 전까지는 좀 힘든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 관계는 동상이몽 정도가 될까 합니다. 우리가 같은 지역에서 세상을 보면서도 다른 꿈을 서로 추구했던 시기였던 것 같고 그 뒤로 수교해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는 저는 비익조라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하는, 둘이 함께 날아야 세상을 나아갈 수 있는 비익조, 저는 비익조처럼 한중 양국이 앞으로 커다란 내일을 함께 할 것 같아요. 19세기는 뭐니뭐니해도 유럽이 지배하던 시기였습니다. 20세기는 미국이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21세기는 이젠 아시아가 주도하는 시대가 틀림없이 오구요, 이미 왔구요, 이런한 아시아가 주도하는 세계 경제에서 한중이 함께 하늘을 나는 비익조 같은 관계가 일어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약간 희망적인 관찰이지만 또 우린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기자: 지난 보아오아시아포럼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습근평(시진핑)중국국가주석이 대외개방의 문호를 대폭 확대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하시나요?
조총장: 2001년에 중국이 WTO에 가입한 후 17년이 지났는데 저는 이제 중국이 확실하게 대외개방할 수 있는 자신감이 내부적으로 형성됐다고 봅니다. 이와 함께 대외개방은 세계의 대세입니다. 또 어떻게 보면 전략적으로 미국이 좀 폐쇄적으로 나갈 때 중국이 대외개방을 하면 그 효과는 두배 세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진핑 주석께서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정책을 선언하셨다고 봅니다.
저는 한국도 마찬가지로 이미 상당한 자신감이 갖춰져 있고 또 한국은 상당한 대외개방을 통해서 많은 효과를 얻게 됐거든요. 그래서 저는 중국과 한국이 모두 세계 대세를 따라서 자신감을 가지고 나갈 때가 왔고 또 시진핑 국가주석이 대외개방 정책에 한국도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때가 왔다고 봅니다.
기자: 방금 앞에서 말씀하실 때 미국이 상대적으로 폐쇄적으로 나가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세계 경제가 이미 고도로 융합된 이런 시점에서 일부 나라의 무역보호조치라든가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정책을 내놓는데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가요?
조총장: 저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서 자국민들 중에 상당수가 우려를 하면서 또 일부는 환영하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대통령이 되신 거고…그런데 세계무역이나 세계 역사를 보면 효과보다 위협이 될 수 있는 요소가 크다고 보는데요, 세계 무역을 크게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시대로 나눠서 어느 때는 자유무역이 주도하다가 어느 때는 보호무역이 주도하는 그런 시기를 구분해 볼 수가 있는데…그래서 역사를 보면 세계적인 전쟁이 끝나면서 자유무역이 시작했다가 좀 잘나가던 나라가 힘있던 나라가 어려워지면 보호무역을 슬그머니 꺼내 들고 다른 나라가 동참하면 보호무역이 기승을 부리다가 결국은 전쟁으로 가게 되고 그러다 전쟁이 끝나면 전쟁에서 이긴 쪽이 자유무역을 선언하고…세계 1차 대전, 2차 대전이 전부 보호무역이 강화되면서 두 세력이 부딪히다가 나타난 현상입니다. 지금 자유무역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다가 미국이 주도하는 보호무역이 세계적인 대세가 되어버리면 저는 제3차 대전이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거같아요.
기자: 아주 위험한 신호죠
조총장: 그렇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그런 커다란 역사적인 의식 속에서 우리는 미국이 어떤 정책을 쓰는가에 관계없이 자유무역정책을 유지해준다면 저는 제3차 대전으로 미래를 어둡게 보는 둠스데이 시나리오가 나타나지 않고 전 세계가 보호무역이 전쟁으로 가는 위협을 제거한 상태에서 상당히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구요, 그러기 때문에 트럼프 정부가 보호무역을 주장할 때 중국정부가 우린 아니다~ 우리는 자유무역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중국 뿐 아니라 전 세계를 함께 고려하는 세계 정책을 써주는게 중국뿐 아니라 세계 71억 인구 모두에게 정말 중요한 도움이 되는 고마운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총장님은 재정경제부의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위원부터 시작해서 산업자원부 산업발전심의위원회 위원장, 시청자위원장 등 참 다양한 타이틀을 지니셨는데요, 2014년 6월에는 중국장강상학원 전략전공 교수에 선임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었나요?
조총장: 장강상학원은 중국 북경에 왕푸징과 동단사이에 있는 동방신천지에 있는 대학이죠. 이 대학이 2002년에 만들어진 직후에 대학 총장이 저에게 연락을 해왔어요. 대학에 와서 강의를 해줄 수 있겠냐고~아예 전임으로 와줄 수 있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서울대학 경영대 교수로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고, 그래서 강의를 하겠다~ 그래서 매년 한두번씩 가서 강의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학의 철학이라든지 홍콩의 장강집단의 리가쉰, 그분이 만든 학교인데, 기업 친화적이고 경영자를 양성하는 대학이라는데 매력을 느껴서 개입을 좀 더 조금씩 해서 2006년부터는 전임교수 역할을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서울대학에서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 그쪽에 가서 가르치기도 하고 여러 가지 행정에도 참여하다가 2014년 2월에 서울대학에서 정년 퇴임을 하면서 총장의 초청에 의해 아예 풀타임으로 전임 교수로 그 대학에 옮겨 갔습니다. 그래서 그 대학에서 오래오래 있을 려고 했는데 2년 2개월이 지나면서 인천대학교에서 총장으로 와달라고 요청을 해서…한국은 또 저의 모국이니까, 4년 동안 여기서 공헌을 할 생각을 하고 왔구요, 2020년 7월 말에 임기가 끝나면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장강상학원에서 전임교수로 상당기간 활동하고자 합니다. 맘껏 제2의 인생의 꽃을 피워보고 싶습니다.
기자: 이외에도 북경대학에서도 초빙교수로 활동하신 적이 있고 중국과의 인연이 깊으신 거 같은데요, 방금 또 인천대학 총장 임기가 끝나면 중국을 다시 찾아 제2의 인생의 꽃을 맘껏 꽃피워 보고 싶다는 얘기를 해주셨는데 중국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된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다면?
조총장: 호감을 갖지 않을 수가 없는 나라가 중국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저는 성이 조씨인데, 저희 옛날 선조가 송나라 마지막 황제의 세 아들이 한국으로 옯겨 와서 조씨 성을 시작을 했는데 세번째 왕자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 몸 속에 있는 DNA에 중국의 모든 조씨가 그렇듯이…그런데 거기서 끝나는게 아니고 저는 한국의 5천만에게 있어서 14억 인구의 엄청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중국은 19세기에 유럽의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미국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잖아요. 중국의 13억 인구가 중국의 주인이지만 중국도 한국사람들을 많이 받아들이고 기회를 주고 있는데 13억 중국의 인민들, 저희 친척이나 다름없는 분들과 함께 중국에 가서, 특히 중국은 동남쪽 연해지역은 많이 개발이 되어 있지만 아직도 서쪽, 북쪽은 개발이 많이 되지 않았는데 그런 곳에 가서 중국의 정책에 순응하는 입장도 있고 중국의 젊은이들과 한국의 젊은이들이 아직도 기회가 무한하게 널려 있는 그런 곳에 가서 중국의 발전을 위해서 또 세계의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또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하는 신천지라고 중국을 보고 싶습니다.
기자: 인천대학교에는 중국유학생들이 많은가요?
조총장: 저희 인천대학교에는 1만 4천여명 정도의 학생이 있는데 아직은 중국 학생을 비롯한 외국인이 280명 밖에 안됩니다. 전체의 2%인데요, 저는 여기 제가 4년 있으면서 외국인 학생을 6천명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그래서 1만 4천 한국인, 6천명 외국인, 그러면 2만명 학생이 되고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 대학이 될 수 있겠죠. 건데 물론 6천명이 쉬운 숫자는 아니지만 저는 중국이 상당한 숫자를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희는 전 세계의 제일 많은 나라에서 학생들이 오는 대학으로 자리매김하려고 저희 학교 교정에 우리 학교에 학생으로 와 있는 외국인들을 대표하는 국기를 게양하는 게양대를 만들었는데 현재 46개 외국의 국기가 휘날리고 있는데 전 앞으로 이것을 150개, 200개로 늘리려고 합니다.
그중의 한가지 방법이 우리 나라의 국민인데 다른 나라를 대표해서 명예영사로서 활동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특히 아프리카나 서남아시아, 중남미에 있는 나라에서는 우리 나라에 대사를 보내기 어렵 잖아요, 그러면 한국인 중에 그 나라에서 사업하는 분을 한분 선정해서 명예 영사로 위촉을 합니다. 그런 나라가 148개 국가가 있습니다. 저도 필란드라는 나라의 명예영사를 하고 있는데 그 모임이 있습니다. 제가 모임에 가서 각국을 대표하는 매 영사께서 일년에 한명씩, 학생을 추천해 주시면 그 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졸업할 때까지 주겠다고 그랬어요. 많은 명예영사들이 여기에 찬동을 하셔서 이게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내년, 내후년에는 인천대학에 지금 46개에서 추가해서 148개 국에서 젊은이들이 와서 마음껏 서로 교류하고 국제화를 꿈꾸는 그런 캠퍼스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150개, 200개 국가를 대표하는 학생들이 함께 모이는 대학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기자: 아주 좋은 구상인데요,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한국에서 대학과정을 하고 있는 재학생들 또는 한국에 유학을 가고 있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마디 바람의 말씀을 해주신다면요.
조총장: 저는 아까 우리 한창송 기자님이 제일 먼저 말씀하신게 세계가 지구촌이 되고 있다고 표현했는데 저는 그 말 이상으로 요즘 세계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봅니다. 우리는 지구촌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국경을 갈라서 이 나라 다른 나라하는 것보다는 과거에서 미래로 나가는 시대에 왔다고 봅니다. 지역적인 것보다는 시간적으로 미래로 나가는 그런 시대가 온거죠.
저는 젊은 학생들이 자기가 갖고 있는 희망과 꿈, 포부를 포기하지 말고 정말 맘껏 발산할 수 있는 그런 미래를 설계하길 바라구요, 또 그런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준비를 할 수 있겠습니다만 공부는 그 중의 하납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한테 이렇게 얘기합니다. 학생들이 저한테 와서 미래에 대한 갈 길을 질문할 때가 있는데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 학생이 미래에 대해 확실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고 그걸 버리지 않고 바꾸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면 학교를 떠나라, 현장으로 들어가라, 시장으로 가서 소비자를 만나라, 창업을 해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나 아직 그런 꿈이 여물지 않았고 또 다양한 꿈 속에서 어느 것을 선택해야 될지 확신이 아직 안 서면 섣뿔리 나가지 말고 그것이 확실하게 마음 속에 자리 잡을 때까지 공부를 계속 하라고 얘기합니다. 적어도 공부를 계속하면 시간을 놓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꿈을 좀 더 명쾌하게, 구체적으로 만들어 내고 체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 꿈을 향해 항상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그 꿈을 닮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겠죠.
조총장: 그렇죠. 꿈은 꾸는 만큼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기자: 오늘 여러 모로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조총장: 이렇게 말씀나누게 돼서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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