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시즌3] 복희여와(伏羲女娲)

cri2021-02-17 08:33:39

복희여와
아스타나 복희여와도
만물화생

이 곳은 유구한 땅
지세가 높고 탁 트였다

한나라부터 원나라까지의
고창 옛도시

기원전 48년
서한이 투루판지역에 고창벽을 세웠다
당나라 때
서주와 교하군의 중심인 이 곳에
안서도호부가 두차례나 세워졌다.
800여년간
국경을 지키거나
피란 등 이유로
대량의 중원 이주민들이 이 땅에 모여들었고
이 곳에 정착했다.

진나라부터 당나라까지의
아스타나 고분군

화염산과 고창 옛도시 사이에 있는
사방 10여km 고비사막의 모래언덕 위는
서진부터 당나라시기까지
옛 고창 주민들의 생활터전이었다

오래된 이 하늘에서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별하늘에
화하민족이 공동으로 신봉하는 조상신
복희와 여와가 있다

1959년부터
아스타나 고분군에서
형태가 비슷한 복희여와도
100여점이 잇단 출토되었다
시간은 대체로
기원 6세기부터 기원 8세기까지이다
그림은 비단 혹은 베에 그려졌고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역사다리모양이며
묏등에 내걸어져 있거나
관위에 씌워져 있었다

아스타나 복희여와도
소장기관
신강(신장)위구르자치구박물관
연대
기원6-8세기

하늘은 위에
땅은 아래
사람은 그 가운데 있다
별하늘을 통해
상징적으로 시물레이션해보면
깊숙하고 어두운 무덤방은
무덤주인이 영생 편히 거주할
밝은 우주임에 틀림없다

서왕모와 복희 여와 화상석
출토지
산동(산둥)미산 (웨이산)
연대
한(漢)

복희여와벽화
소장기관
낙양(뤄양)고대예술박물관
연대
한(漢)

복희여와도 탁본
출토지
강소(장쑤) 서주(쉬저우)
연대
한(漢)

복희여와도 탁본
출토지
산동(산둥)가상무량사(자샹우량사)
연대
한(漢)


복희여와의 신앙은
최초 선진
서한시기부터 시작되었다
음양학설의 영향으로
복희여와는
처음 한쌍의 신 형상으로 같이 나타나
음양의 대칭과
영생을 상징했다

사람 머리에 뱀의 몸을 한 복희여와는
하반신이 뱀꼬리 모양으로 되어
나선형구조로 서로 감겨 있으며
허리에는 짧은 주름치마를 둘렀다
두 신은 검은 테두리의 동그란 옷깃에
꽃을 수놓은 붉은 색 바탕의
큰 소매 저고리를 입고 있다
복희는 오른쪽
여와는 왼쪽에서
서로 마주보며 있는데
그들의 용모와 머리장식품으로만도 구분이 가능하다

여와는 오른손에 그림쇠를 들고
왼손에는 계산에 쓰이는
산가지 4대를 쥐고 있다
복희는 왼손에 곡자를 들고
오른 손에는 먹줄을 치는데 쓰는 묵두를 들고 있다
연체교미된 뱀모양의 몸이
생존과 번식에 대한 갈망을 상징하고
천지개벽 후의
만물의 화생을 대표한다면
곱자와 그림쇠, 방원
일월, 음양은
세상이 처음 열렸을 때
한 문명이 미지를 위해 규칙을 정하고
척도로 가늠하는 이성과 의지를 세상에 주었음을 상징한다

아스타나 복희여와도
소장기관
신강(신장)위구르자치구박물관
연대
기원6-8세기

이주민의 발자취를 따라
중원의 문화 코드가
이 먼 곳에 뿌리박았고
사면팔방에서 이곳에 모인 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복희여와의 형상도
다원화된 기억과 이미지로 변해갔다.
문화는 충돌과정에 변화를 거듭하고
융합속에서 자리를 잡는다

하나 또 하나의 복희여와도를 통해
망자는 결국 선조신령들의 비호를 받는
하늘아래 있게 된다
비록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생명은 결국 사그라지지만
이 변화무쌍함속에서
영원하고 빛나는
생명에 대한 추구는
우리 문화의 기억에 자리하고 있다
요원한 옛 날, 옛 땅이라해도
같은 하늘을 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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