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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성: 중국 최초의 왕도
2014-08-07 14:44:10 cri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적지 9중 여섯번째인 낙양성(洛陽城)유적지는 중국 최초의 왕도이다. 중국 8대 고도인 낙양에는 선후로 천여년에 걸친 10여개 왕조가 도읍을 정했다.

천여년에 걸쳐 10여개 조대가 낙양에 도읍을 정했다고는 하지만 확실하게 몇개 조대인지에 관해서는 정론이 없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구조고도(九朝古都)라 하고 공식적으로는 13개 조대의 도읍이라고 하며 현지인들은 13개 조대의 도읍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은 그보다 더 많은 조대가 낙양에 도읍을 정했다고 한다. 어찌했든 낙양이 중국 최초의 도읍이고 이 곳에 도읍을 정한 조대가 가장 많으며 도읍사도 가장 길다는데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한다.

낙양의 도성은 사천여년전의 하(夏)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때 전설속에만 존재했던 하나라는 언사(偃師) 이리두(二里頭\) 유적지의 발견으로 인해 그 존재가 증명되었다.

이리두 유적지에서 많은 궁궐유적들이 발견되어 이 곳이 하나라의 도읍 짐심(斟鄩)임이 밝혀졌다. 이는 중국에서 고고학적으로 지금까지 발견한 최초의 도읍유적지이다.

하가 멸망한 후 상탕(尙湯)이 하나라 도읍의 옆에 서호(西毫)를 건설했는데 바로 오늘날의 낙양근교의 언사상성(偃師商城) 유적지이다. 그 뒤에야 비로소 정주(鄭州)와 안양(安陽) 등지로 옮기게 되었던 것이다.

서주(西周)에 이르러 오늘날 낙양근교인 낙읍(洛邑)으로 불리운 성주성(成周城)이 도읍은 아니지만 그 위상이 당시의 도읍이었던 호경(鎬京), 오늘날의 서안(西安)근교 버금으로 갔다.

주평왕(周平王)이 도읍을 낙양으로 옮긴후 낙양은 동주(東周)의 유일한 도읍으로 장장 오백년을 지속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모란꽃을 구경하기 위해 낙양에 밀려드는 관광객들은 모란이 이천여년전 동주의 왕성(王城) 유적지에 피어있음을 유의하지 못한다. 근년에 이 곳에서는 또한 동주왕릉(東周王陵)이 발견되어 동주의 찬란한 역사를 재현했다.

한명제(漢明帝)가 사신을 서역으로 보내 불경을 가져왔고 그 불경을 가지고 온 백마를 기념하기 위해 백마사(白馬寺)를 지었다는 이야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안다.

하지만 중국 최초의 사원인 백마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漢)과 위(魏)의 도읍인 낙양고성(洛陽故城)이 있는 줄은 모른다. 흙으로 쌓은 든든한 토성이 아직도 높이 솟아 있고 성안에는 웅장한 대궐 유적이 남아 있다.

고고학 발견을 통해 점점 더 많은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고 있다. 중국 건축사의 기적으로 인정되는 9층 목조탑의 기초와 당시의 최고학부였던 태학(太學)이 발견되어 어젯날 낙양성의 번화를 다시 펼쳐보인다.

동한(東漢)과 조위(曺魏), 서진(西晉), 북위(北魏)의 도읍이었을 때 낙양은 최고의 번성을 누렸다. 그 때 낙양은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대도시었다. 아쉽게도 그로부터 수백년이 지나서 북위후반에 전란으로 폐허로 변하여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점점 사라졌다.

그로부터 수십년 뒤 부지가 더 크고 규모가 더 웅장한 도시가 한위 낙양고성의 서쪽에 새로 조성되었다. 그것은 바로 수(隨)와 당(唐)의 동도(東都)인 낙양이다.

이 때 낙양은 수나라 후반과 무주(武周), 당나라 후반에 잠시 도읍으로 되었지만 많은 인구와 웅장화려함은 당시의 도읍인 장안(長安)과 어깨를 겨룰수 있었다.

도시는 외성(外城)과 황성(皇城), 궁성(宮城) 등 세 겹의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고 성안에는 얼기설기 도로들이 바둑판처럼 펼쳐져 있었다. 번성기에 낙양은 인구 백만명에 달했고 실크로드의 출발지와 운하의 중심지였다.

당조의 여황제 무측천(武則天)은 낙양을 신도(神都)라 부르면서 낙양에 죽 머물었다. 그 때는 낙양의 최고 번성기였다. 당이 멸망한 후에도 후량(後梁)과 후당(後唐), 후진(後晉)의 도읍을 거쳐 송(宋)과 금(金)의 전란에 사라졌다.

한 때 웅장하고 화려했던 낙양고성은 오늘날 낙양시 지하에 묻혀 있다. 하지만 모던한 현대도시가 고대도시 전부를 커버하지 못하고 있다. 낙하(洛河)강을 따라 다섯개의 도성유적이 한 일(一)자로 줄지어 어젯날의 찬란함을 재현한다.

하지만 지난 천여년동안 낙양은 정치 중심지라는 어젯날의 위상을 더는 되찾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성소재지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누가 알랴? 이제 훗날 낙양이 새로운 찬란한 역사를 창조할지를.

설명:

낙양성의 유적은 대부분 지하에 묻혀 있고 지상에서 볼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적다. 오히려 언사상성 박물관과 낙양도성박물관, 천자가육(天子駕六) 박물관에서 더 직관적으로 낙양성의 어젯날을 볼수 있다.

동주왕성과 수당 낙양고성은 도심에 위치해 있지만 한위낙양고성, 이리두유적지, 언사상성은 낙양시에서 언사(偃師)행이나 맹진(孟津)행 버스를 이용해야 도착이 가능하다.

위치: 하남(河南, Henan)성 낙양(洛陽, Luoyang)시

교통: 낙양은 하남성의 서부에 위치, 동쪽으로 하남성 소재지 정주(鄭州, Zhengzhou)와 이웃하고 서쪽으로는 과거의 장안(長安), 오늘날의 서안(西安, Xi'an)을 바라본다. 낙양은 교통이 아주 발달되어 철도와 항공, 도로 등을 통해 편리하게 오갈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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