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정회(故?情?)

만추(晩秋)의 빈 들녘에 서서

고향을 생각합니다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어머니, 어머니도 저를 생각하시나요?

고향의 가을도 지금쯤은 빈 가을이겠지요?

그래요 어머니, 아무리 풍성(豊盛)한 가을도

줄것 다 주고나면 빈 가을이 되는거래요

줄것 다 주고난 빈 내 고향

줄것 다 주고난 빈 나의 어머니

저는 압니다, 빈 속에 가득찬

아름다운 그 충만(充?)을

고향 생각을 하면 진작 겁이 더럭 납니다

그해 가을, 고향 떠나던

덕호네 그 식솔들을 다시 만날가봐섭니다

우리는 몇세대를 뿌리박고 함께 살았는데요?

고향 생각을 하면 마냥 가슴 쓰라립니다

그해 가을부터 페교되였다는

소학교의 빈 교실이 자꾸 눈에 밟혀섭니다

제가 <소, 소나무…>를 배운 교실이 아닙니까?

고향이란 어쩌면 저에게는

아물지 못하는 가슴의 상처인지도 모릅니다

벗어놓지 못하는 어깨의 행장(行?)인지도 모릅니다

정지문 열고 바당에 들어서면

설설 끓는 솥에서 뜬김 서려오르는 그리운 집

뜨끈뜨끈한 그 아래목이 바로 내 고향

등 붙이고 누워서 찜질하며

어머니의 바느질을 지켜보고싶습니다

그제날 골무 그대로 끼신 거쿨진 그 손

이제 바늘귀는 누가 꿰여드리는지요?

그 손끝에서는 별의별 떡이 다 빚어지고

각가지 김치와 장아찌가 다 담가졌지요

된장, 고추장은 지금도 내내 날라다 먹는

어머니의 손맛―고향의 참맛

옛날에는 우리의 육체를 키웠습니다

오늘에도 우리의 정신을 키워갑니다

훈춘강상류의 두메라 산골

시꺼먼 부식질(腐植?)의 부드러운 흑토지

그 검은 흙에 아버지네 피땀이 반죽되여

물동이같은 호박을 빚으면서

베개통같은 감자를 주렁지우면서

강물처럼 긴긴 개척사(?拓史)가 흘렀습니다

저희 또한 그 흙으로 빚어 만든 몸―

흙처럼 못생겼으나 흙처럼 순후(淳厚)한 자손입니다

저의 시이랑(?行) 쑥내음이며 청솔향기를 아십니까?

그 흙에서 피여오르는 내 고향의 체취(?臭)입니다

이 세상 모든것을 울면서 낳고도

이 세상 모든것에게 웃으면서 짓밟히는

나의 흙은 비천(卑?)합니다, 나의 흙은 위대합니다!

저는 가난한 두메골의 첫 중학생

담가대(?架?)에서 촌장이 입고온 국민당장교복을

고쳐서 입혀주고 공부 보내준 고향입니다

제가<죄수>로 몰리던 그 세월에도

저를 믿어주고 보듬어주며, 도리여

문책(??)의 눈길 세상에 던졌던 고향입니다

그래서 고향이란 저에게는 명줄

늘 앞을 가리는 두줄기 감은(感恩)의 눈물입니다

이 저녁도 그 눈물 건너로 저는 지금

고향을 바라봅니다, 어머니를 바라봅니다

어머니, 어머니도 저를 보고계시지요?

낮아서 높으신 나의 어머니시여,

높아서 하늘과 더욱 가까운 내 고향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