령마루가 멀지 않겠지 하며 스스로 위로해 보기도 하지만 반시간이 지나고 한시간이 지나도 피로만 루적된다. 제발 풍설이 잦아들었으면, 인가라도 나져서 따뜻한 방에 들어가 숨이라도 돌렸으면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지만 사위는 찬 안개와 깎아지른듯한 절벽뿐이다. 절망이 엄습한다. 길을 잃지나 않았는지 더럭 겁이 난다. 마지막 한가닥 등불도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캄캄칠야, 만물이 다 죽고 아침은 영원히 오지 않을것만 같은 절망스러운 찰라, 보이는건 사정없이 기승을 부리는 눈보라요, 들리는건 힘겹게 따라오며 딸깍거리는 지친 말의 단조로운 발굽소리뿐.

그런데 이상했다. 절망의 시각이자 힘솟는 시각이였다. 길손은 누군가가 자신을 참을수 없는 이 지경에 몰아넣었다고 질책해본다. 될대로 되라지 하는 배심이 생기면서 그는 증오를 울적한 강의함의 순종으로 바꾼다. 급기야 고난을 포옹한다. 설사 출로가 막히더라도 달가워할 준비가 돼있다. 천신만고로 령마루에 올라선 길손은 홀가분해진다. 광풍도 대수롭지 않다. 보금자리를 찾자고 서둘지도 않고 길손은 말에게 중얼거린다ㅡ

《가자, 가자, 나가쓰러지지 않는한 둘이서 목숨을 내걸고 걸어가자. 나의 일생에서 이처럼 지나온 험준하고 쓸쓸한 령라루가 그 얼마였던가! 재난, 고통, 질병, 련인의 배신과 릉욕당한 우정의 쓰라림이 어두운 밤처럼 짓눌러 나는 다정했던 모든것과 작별하고 할수없이 방랑의 지팽이를 다시금 집어들지 않았던가… 》

꿈결인듯 비틀거리며 길손은 가까스로 걷는다. 날이 밝으면 사람들과 해빛이 또 반겨주겠지, 하지만 그 전에 산속 어딘가에 쓰러질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다, 이 태고연하고 쓸쓸한 령마루의 밤, 그 눈보라속에 영원히 잠들면 그만. 그게 무슨 대순가.

부닌의 글을 대충 간추려보면 이렇다. 독자자신도 산속에 갇혀서 길손과 같이 헤매는 심정이다. 떠났으면 변함없이 가고 또 가면 되는것이라고 부닌은 말한다. 그래야만 하는것이다. 야밤삼경의 산길, 차디찬 안개, 기승부리는 눈보라, 령마루의 쓸쓸한 풍경은 험난한 인생길의 상징이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엄청난 로정과 리치를 함축하고있는 글이다. 이게 바로 인생이요, 인생길이 아닌가.

우리는 천진스럽게도 자주 개인 날씨가 이어지기만을 바라는 경향이 있지만 심술궂은 자연은 늘 우리와 엇선다. 쩍하면 비바람과 눈보라의 세례를 안겨주기가 일쑤이다. 우리는 파쑈가 패망하면 세상이 평온할줄로만 기대하였지만 전쟁과 살륙의 암운은 오늘도 아랍의 하늘가에서 가실줄 모른다. 삼년재해, 문화대혁명이 지나면 개인숭배는 박물관에 들어가고 패거리의식이나 암투, 리권다툼의 구태는 옛말로 될줄 알았었다. 확실히 많이 바뀌였다. 허지만 각종 비리와 패거리의식과 리권다툼까지 완전히 근절된것은 아니다. 조화사회는 우리의 목표이다.

우리는 화창한 봄날과 같은 삶과 우정을 바라지만 모순과 질시의 바람은 멎을줄 모른다. 그게 바로 길손의 운명이다. 려로에 쓸 지팽이를 창고에 넣어두고 녹쓸게 할수가 없다. 눈보라, 쓸쓸함, 고통, 험난함이 앞을 막아선다 해도 지팽이를 동무삼아, 역경을 벗삼아 우리는 가야 한다. 인생의 천애지각을 가야 한다.

로씨야문학이 흔히 그러하듯 부닌의 글은 자연과의 교감이 출중해 그 속에 흠뻑 빠지게 하는 멋이 있다. 그런 령（靈）적인 교감의 멋에 취하며 살고싶다, 걷고싶다. 협곡의 삭풍이면 어떻고 심연의 공포면 어떤가. 그런 길을 가면서 모든걸 잃는다고 해도 령（零）은 남아있다. 령으로부터, 새로운 스타트선상에서 다시 시작하면 되는것이다.

날씨를 장담할수 없는 먼 길이 아득히 펼쳐져있거늘, 길손은 항상 방랑의 지팽이를 잃지 말아야 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