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풀이
"不敢越雷池一步" 이 성구는 아닐 불(不)자에 감히 감(敢)자, 뛰어넘을 월(越)자에 우레 뢰(雷)자, 못 지(池)자에 하나 일(一)자, 걸음 보(步)자로 이루어졌다.
뜻풀이
"雷池"는 오늘의 안휘성 망강현(忘江县)에 있는 뢰수(雷水)의 옛이름이다. "한계를 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다. "감히 한계를 넘지 못하다", "조금이라도 계선을 넘지 못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유래
진나라(晋国) 사람인 유량(庾亮)은 동진(东晋)의 원제(元帝),명제(明帝)와 성제(成帝) 재위시기 중요한 직을 맡고있었다.
원제 재위시기, 화일반란(华轶叛乱)을 평정하는데 그 공을 인정받아 도정후(都亭侯)에 책봉되고 훗날 중서랑(中书郎)으로 승급했으며 동궁(东宫)에서 태자에게 경의(经义)를 설명했다. 명제는 동궁에 있을 때 "한비자(韩非子)"를 즐겨 읽었다.
유량은 명제에게 "한비자의 작품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매정하고 의리가 없는 사람으로 잘못 이끌어주기 때문에 폐하께서 연구하시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되옵니다"라고 아뢰었다.
유량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 명제는 유량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당시 대장군 왕돈(王敦)이 무호(芜湖)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그는 병권을 독점하고 있었다. 많은 병권을 장악하게 되자 반란을 일으킬 마음이 생기게 된 왕돈은 수중에 병권을 장악한 기회를 빌어 왕위를 노렸다. 유량은 원제의 명을 받들어 왕돈과 국방 사무를 상의하러 무호를 찾아갔다. 무호에 도착한 유량은 당당하고 차분하게 당시의 전반 형세를 분석했는데 그의 분석을 들은 왕돈은 탄복을 금치 못했다. 유량이 떠나간뒤 왕돈은 자기 부하에게 유량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라며 감탄했다.
명제가 즉위하자 유량은 중서감(中书监)직을 맡게 되었다. 왕도(王导)라고 부르는 사도(司徒)가 유량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는데 그는 겉으로는 유량을 존경하는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를 배척하기 위해 온갖 수를 썼다. 한패가 되기 싫었던 유량은 병을 핑계로 사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왕돈이 반란을 일으켰다. 유량은 명제로부터 "좌위장군(左卫将军)"으로 임명되어 반란을 평정하게 되었는데 우선 왕돈의 부하인 심충(沈充)을 물리치고 이어 군사를 이끌고 동으로 향했다. 반란이 평정되자 군공을 인정받아 개국공(开国公)에 봉되었다.
명제가 중병에 걸려 대신들을 만날 힘조차 없었다. 이때 부군장군(抚军将军) 남돈왕(南顿王) 사마종(司马宗)이 반란을 일으켜 조정은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급해난 유량은 명제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폐하, 지금 황족(皇族)중에 반란을 일으킨 사람이 있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즉시 문무대신들을 소견해야 할 것이옵니다. 이번 일의 실패와 성공은 오늘에 달려있사옵니다"
명제는 즉시 문무백관들을 불러놓고 왕도와 유량이 함께 조정을 보좌하라는 조서를 반포했다. 명제가 죽은뒤 유량은 중서령(中书令)이 되어 조정을 관할했다. 이때 남돈왕 사마종은 보정대신(辅政大臣)들을 없앨 계획을 세우고 천하를 얻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음모를 미리 알아챈 유량은 선손을 써 사마종을 죽여버렸다. 유량은 사마종을 죽일때 그의 패거리인 변함(卞咸)까지 함께 처리해버렸다. 동생이 피살되자 자기의 죄도 피해갈 수 없음을 알아차린 형 변천(卞阐)은 밤새 도망쳐 내사 소준(苏峻)의 집에 숨었다. 소준의 집에 찾아온 유량은 그에게 변천을 내놓으라고 했으나 소준은 오히려 유량을 죽이고 군사들을 동원해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다.
유량은 일찍부터 소준과 조약(祖约)의 배반을 예측하고 미리 군사를 준비시켜뒀다. 유량은 온교(温峤)에게 강주자사(江州刺史)를 맡아 서울의 양쪽을 호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소준과 조약은 반란군을 이끌고 서울인 건강(建康)까지 들이닥쳤다. 서울이 위급하게 되자 온교는 유량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보냈다. 편지에는 "건강(建康)이 위급하게 되었습니다. 강주의 병마와 삼오(三吴)의 수비군을 이끌고 건강을 구하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아니면 서울을 지켜낼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라고 적혀있었다.
그러자 유량은 "서부의 방어선이 력양(历阳)을 훨씬 초과할가 걱정되는구나. 뢰지를 한걸음도 넘어서지 말거라"라고 답장을 보냈다.
소준과 조약의 반란군은 얼마 안되어 전부 섬멸되었다. "뢰지(雷池)"는 훗날 "한계"와 "범위"의 대명사로 되었으며 그 뜻인즉 "한계를 넘지 못하다"는 것이다.
"不敢越雷池一步"는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성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