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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를 다스린 대우
2009-12-29 11:20:15 cri

대우는 성이 사고 이름은 문명(文明)인데 우(禹)라고도 부른다. 전설에 의하면 우는 고대 부족 연맹의 두령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5천년전 수신(â©ãê)이 노발대발하여 하늘을 구멍을 냈다고 한다. 하여 요(堯),순(舜)시대 중원지대에는 늘 홍수가 범람했다. 순의 명을 받고 대우의 아버지 곤은 물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곤은 천신만고를 겪어 마침내 서방의 곤륜산에 도착하여 천제를(ô¸ð¨)만나 홍수를 다스리도록 식양(ãÓå½)을 자기에게 은사할 것을 요구했다. 식양은 신토(ãê÷Ï)로서 바람만 불면 자란다고 한다. 하지만 천제는 그의 청구를 거절했다. 곤은 홍수로 시달림을 받고 있는 백성들을 염려해 몰래 식양을 훔쳐가지고 돌아왔다. 곤은 돌아온 후 그 즉시로 식양을 물에 뿌렸다. 물에 뿌려진 식양은 홍수 수위에 따라 신속히 자라 홍수를 언제 밖으로 막았다.

천제는 곤이 식양을 훔쳐간 일을 알게 된 후 즉시 천병을 출동하여 식양을 거두어들이도록 했다. 그 후로 홍수는 다시 기승을 뿌려 언제를 밀어버리고 농경지를 삼켜버렸으며 많은 백성들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대우의 아버지가 9년 동안 홍수를 다스리려고 애쓰다가 그냥 실패만 거듭하자 순은 그를 참했다. 순은 대우 아버지를 참한 후 대우에게 아버지를 계승해 계속 홍수를 다스리라고 명을 내렸다.

대우는 머리 회전이 빠르고 근면하며 과단성이 있다. 그는 성품은 후덕하고 말 한대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다. 대우는 대순제(大舜帝)의 명을 받은 후 각지 제후들의 백성을 동원해 홍수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널리 알려지고 있는 대우에 관한 이야기 중 홍수를 다스리기 위해 대우가 집 앞을 지나면서도 들르지 않고 13년을 밖에서 보냈다는 이야기는 대우의 대공 무사한 정신을 보여주는 일례로 된다.

집을 떠난 13년간 대우의 발자취는 방방곡곡에 찍혔다. 그는 신주의 적현(赤縣)의 산과 물을 죄다 고찰하면서 풍상고초 겪을 대로 겪었다. 그는 풍찬 노숙하면서 백성들과 고락을 같이했다. 그는 자신의 소유하고 있던 모든 재물을 홍수를 다스리는데 헌납했다. 대우는 천하의 중임을 짊어지고 홍수를 다스려 백성을 구제하는 대업을 이루기 위해 혼신을 다했다. 대공무사하고 풍상고초를 완강한 의지로 이겨나가는 대우의 고매한 정신은 백성들의 존중을 받았다.

대우의 아버지가 홍수를 다스리는데 있어서 실패한 원인은 그가 그저 제방만 쌓아 홍수를 막아보려고만 한데 있다. 대우는 아버지가 실패한 교훈을 받아들여 제방만 쌓지 않고 홍수를 배수하는 물길을 열었다. 대우는 천하를 9개주로 나누고 9개주를 잇는 길을 닦고 9개주에 9개 물길을 여는 어마어마한 공정을 시작했다. 이 거대한 공정은 초인적인 인내력과 불요불굴의 정신이 없으면 완공될 수 없다. 이 공정을 완공하기 위해 대우는 초인간적인 인내력과 불요불굴의 정신을 발휘해 역사의 한 폐지를 장식했다.

13년을 간고하게 분투한 결과 대우는 마침내 홍수를 다스려 백성들로 하여금 편안히 살고 즐겁게 일하도록 했다. 전설에 의하면 대우가 신의 힘으로 용문산을 갈라 황하의 물이 절벽사이로 흘러나가게 했기 때문에 용문협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밖에 대우가 용문하류에서 강 길을 가로 막고 있던 산을 몇 구간 동강내 강물이 동쪽바다로 흘러들게 하여 삼문협을 만들었다는 전설도 있다. 황하의 용문협과 삼문협은 모두 물세가 급하고 풍경이 아름다운 것으로 하여 수천 년간 널리 알려지고 있다. 중국의 많은 곳들에서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때문에 많은 지방에 대우절간과 대우능이 축조되어 있다.

대우는 백성들을 위해 홍수를 다스렸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인 계(啓)가 하왕조(夏王朝) 세움에 있어서 길을 틔워주었다. 대우가 물을 다스림에 있어서 성공을 거두었기에 순은 그를 계승자로 삼았다. 순이 죽은 후 대우는 부락 연맹 두령으로 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황제가 죽은 후 왕위를 이은 전욱 고양씨(高陽氏)는 황제 차남인 창의(昌意)의 아들이다. 전욱은 왕위를 제곡 고신씨(高辛氏)에게 넘겨주었다. 제곡은 황제 장남의 손자이다. 제곡은 왕위를 아들인 제요(帝堯)에게 물려주었다. 제요는 왕위를 제순(帝舜)에게 넘겨주었는데 순은 황제의 제9대 손이다. 상술한 5제 계승관계는 부계씨족사회로의 점차적인 과도를 보여준다.

5제 계승관계는 선양제(禪讓製)이다. 선양제의 기초는 공유제이지만 세습의 기초는 사유제이다. 이 두 가지 정치, 경제 제도는 요와 순, 우 시대에 과도하고 변화하는 단계에 처했다. 요와 순, 우는 왕위를 물려줄 때 우선 아들부터 생각했으나 당시 부족 연맹은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금했다. 아래에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요는 4악(四岳)과 12목(十二牧)에게 물을 다스릴 사람을 천거하라고 하니 12목이 대우의 아버지 곤을 천거했다. 이에 요는 반대했지만 4악과 12목은 자기주장을 견지했다. 요는 하는 수 없이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다른 한 예로는 우가 백익(伯益)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그를 계승자로 삼았지만 실제적으로 정권을 통제하기 위해 자기의 아들 계와 그의 동아리들로 하여금 백익을 보좌하게 했다. 우가 죽은 후 그의 아들 계는 백익의 손에서 권력을 빼앗고 하왕조를 세웠습니다. 요가 순에게 자리를 내주고 28년이란 시험기한을 두었지만 사실상 순은 이미 정권을 장악했다. 요가 죽은 후 순은 형식상 왕위를 아들에게 넘겨주는 의식만 가졌을 뿐이다. 대우가 죽은 후 제후들은 그의 계승자인 백익을 알현한 게 아니라 대우의 아들을 알현했다.

상술한 례를 볼 때 선양제는 일종의 형식에 지나지 않았으며 사유제는 날로 발전해 세습제가 나중에는 선양제를 누르고 그 지위를 공고히 했다. 세습제가 완벽해 짐에 따라 국가정권도 날로 완벽해져갔다. 순 시대 국가의 기구들이 체계적으로 나왔다. 순은 22명에게 교육, 농사, 공정, 사법, 의식, 천문 등 분야를 맡아보게 했으며 3년에 한번 씩 심사하는 제도를 내왔다. 시조황제가 초창한 국가는 요,순 시대에 와서 점차적으로 완벽화 되어 갔다. 최종적으로 세습제를 확립한 것은 대우의 아들인 계였다. 대우의 아들 계는 중국 고대 첫 노예제국가인 하왕조를 세웠다.

대우능은 소흥 동남의 회계산(會稽山) 북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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