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수경 (郭守敬) 은 원나라시기 천문학자, 수학가, 수리기술자이다. 자는 약사이고 중국 하북성 형태(邢台) 출신이다.
그의 조부 곽영은 경서를 통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학, 천문, 수리학에도 연구가 깊었다. 조부의 영향을 받아 곽수경은 소년시절부터 과학에 흥취를 많이 가지게 되였다. 원 세조 쿠빌라이는 북방을 통일한 후 수리건설을 진행하여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이 면의 인재를 널리 구하였다. 당시 선무사 장문겸이 곽수경을 추천했다. 쿠빌라이는 곽수경에게 하천의 물길을 관리하는 직무를 주어 수로 와 수리사업을 맡아보게 했다. 곽수경은 2년 남짓이 조사를 진행한 후 민부들을 동원하여 물길을 다시 빼고 제방을 쌓았으며 물도랑을 팠다. 그 후 일 년 못 되어 900만무의 농전에 완전한 관개망이 이루어졌다. 강남과의 교통운수를 강화하기 위하여 곽수경은 측량, 설계를 거쳐 원유의 운하를 개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도(大都)로부터 통주에 이르는 운하를 새로 건설했다.
1276년 원 세조는 남송의 수도를 공략해 통일대업을 이룬 후 역법을 새로 만들기 위하여 역법 제정을 전문 책임진 기구 태사국을 설립했다. 곽수경은 태사국에서 관측과 계기 제작을 책임졌다.
곽수경은 원래의 천체 관측용 혼천의가 구조가 복잡하고 사용하기 불편하다고 느끼고 구조가 비교적 간단하고 눈금이 정밀한 천문계기를 제작하였다. 그가 제작한 천문계기는 원래의 것보다 정교롭고 정확도도 훨씬 높았다. 곽수경은 높이 12m에 이르는 거대한 고표를 비롯하여 혼천의(浑天仪), 간의등 수십 개 관측계기를 제작했다. 그 후 곽수경은 태사국에 새로운 사천대를 건조하는 동시에 전국적인 범위에서 대규모의 천문 관측을 진행해야 한다는 제의를 내놓았다. 그의 제의를 받아들인 원 세조 쿠빌라이는 전국 각지에 27개 천문 관측소를 세웠다. 곽수경은 각지에서 관측에 의해 얻은 수치에 근거해 2년이란 시간을 들여 역법을 편찬하였다.
곽수경이 편찬한 역법을 "수시력(授时历)이라 부른다. 수시력은 옛 역법에 비하여 정확도가 훨씬 높았다. 수시력은 1년을 365.2425일로 계산해냈는데 이는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에워싸고 도는 시간보다 26초밖에 차나지 않았다. 이 역법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그레고리력(양력)의 주기와 같다. 그러나 곽수경이 "수시력"을 제정한 시간은 유럽인들이 양력을 제정한 시간보다 302년 앞섰다.
곽수경은 천문관측 계기 제작과 천문관측에서 얻은 경험에 근거해 천문학에 관한 저서 백여 권을 펴내 후세에 소중한 유산을 남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