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구에는 극히 미소함을 형용하는 창해일속이라는 성구가 있습니다.
중국어로 沧海一粟라고 하는 이 성구는 沧 찰 창, 海 바다 해, 一 한 일, 粟 조 속으로 이루어졌습니다.그러니 이 성구는 큰 바다속에 던져진 한알의 좁쌀과 같다는 말로 되겠습니다.
송나라 신종 때 문인이었던 소식은 도성에서 쫓겨나 황주 단려부사로 좌천되었는데 당시 황주아문은 호북성의 황강에 설치되어있었습니다.
황강부근에는 적비기라고 하는 명소가 있었는데 적벽이라고 하여 사람들은 이곳을 가리켜 삼국시기 <적벽의 싸움>이 일어난 곳이라고 했습니다.
역사에는 오나라 도독 주유가 조조의 80만대군을 적벽에서 격파시켰다고 기재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적벽의 싸움은 이 곳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호북 가어현 동북쪽 장강남안에서 벌어졌다고 전하기도 합니다.
황주의 적벽이 당년의 그 싸움터가 옳든지 아니든지를 떠나서 아무튼 이곳이 유람성지인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하여 소식은 황주에 있을 때 일찌기 두번이나 적벽을 유람하고 두번 다 <적벽부>라는 시를 썼다고 합니다.
바로 이 <적벽부>라는 시에서 <창해일속>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소식은 먼저 쓴 <적벽부>의 첫머리에서 달밤에 달놀이하는 정경을 쓰고나서 친구들과 함께 인생에 대해 논쟁하던 내용을 쓰고있는데 어느 한 친구의 인생타령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습니다.
<조조는 일대의 영웅호걸이었건만/ 지금은 어디 있는고?/…/영원한 천지간에 사람이 산다는 것/ 창해일속과도 같아라>
이와 같이 <창해일속>이라는 성구는 소식이 인용한 어느 한 친구의 인생타령에서 나온것이지만 소극적인 면이 있지만 지금은 개인과 집단간의 관계를 비유하거나 집단주의 정신을 제창하는 등 면에서는 적극적인 의의로 쓰이기도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沧海一粟 창해일속 이 성구는 극히 미소함을 형용할 때 자주 쓰입니다.